[기고] 별거없는 헌법 별일없는 우리 /최미나

09:30

살면서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물음을 중심으로 학습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 12월부터 헌법읽기모임을 시작했다. 여러 연령과 성별,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였고 1기는 책 『내생에 첫 헌법』을, 2기는 『별거없는 헌법 별일없는 우리』를 출간했다. 올해 4월 25일(법의날) 출간한 『별거없는 헌법 별일없는 우리』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가고 안가는 사람은 없다’는 광고 카피처럼 ‘헌법을 아예 안 읽어본 사람은 있어도 헌법 읽기의 맛을 알고 그만두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왜 헌법을 읽었을까? 헌법에서 무엇을 보았나?

헌법 읽기를 마친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바로 “(헌법)읽기를 잘했다.”는 것이다. 『별거없는 헌법 별일없는 우리』에서 한 멤버(저자 이은지)는 헌법을 호신용 무기로 비유한다. 사용법을 모르는 호신용 무기는 쓸모없으며 역으로 위험한 사항에 처할 수 있으니 헌법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헌법에는 별게 다 있었다. 국회, 정부, 사법부 등 국가 구조의 축소판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헌법을 통해 인정하고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권리들이 있다. 즉, 국가가 우리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조항을 우리가 직접 인용하든 하지 않든 그 줄기는 얽히고 얽혀 우리 삶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헌법을 읽으면서 그런 것들을 눈치챌 수 있다.

정부는 매년 예산안을 편성한다. 대부분의 예산 집행을 정부가 하니 예산을 짜는 것도 정부의 권한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예산을 짤 수 있는가? 아니다. 돈의 주인이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매년 국민 허가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회의 의결을 받아 집행한다. 정부의 폭주, 재정 낭비, 재정 횡령 등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인 것이다. /인사권을 살펴보자.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을 임명하여 국무회의를 진행하고, 국정 운영을 한다. 국정 운영의 중요한 역할을 국무총리 포함 국무위원들이 하는데 이들이 대통령 임명직이다. 우리가 대통령을 뽑으면서 임명권까지 주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대통령이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있을 때는 국민을 대표해 제재를 가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제63조 ①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제86조 ①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 권한대행 1순위인 국무총리는 임명 시부터 국회의 동의를 얻는다.

『별거없는헌법 별일없는우리』 “견제 장치가 숨어있다” 중

흔히 들렸던 다른 말은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법에 대해서 어렵고 지루한 것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은데 기존 헌법읽는모임도 다르지 않았다. 막연히 어려울 것이라 짐작했고, 그래도 헌법이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모인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헌법을 읽고 시험을 칠 일도, 외워서 취직준비를 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별일 다 있는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27조 4항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범죄 영화에도 흔히 나오는 대사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근현대 법치국가 형사법의 근간을 이루는 대원칙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 권리이기도 하다.

2016년 나는 형사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남한테 피해만 안 끼치고 평범하게 살면 죄짓고 교도소 갈 일은 평생 없으리라 생각해 왔는데,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더니 전과자를 이해 못 했던 내가 전과자가 될 뻔했다. 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형사는 명확한 증거도 없었다. 그런데도 형사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만 보고 걸음걸이가 영~ 범죄자 걸음걸이 같다며 나를 지갑 도둑 취급한 것이다. 담당 형사는 다짜고짜 고소인이 별다른 처벌을 원하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지갑을 돌려주면 괜찮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마치 범죄자인 나를 회유하는 듯 말했다. 매우 어이가 없어서 나는 왜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냐고 따졌다. 그런데 그 형사는 본인이 더 역정을 내면서 ‘그럼 수사를 할 때 모든 사람을 다 범죄자라 생각하고 수사하지 그게 아니면 어떻게 수사하냐’며 나에게 따져 물었다. 만약 이 당시 내가 법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면, 나를 지켜주는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활용할 수 있었다면 형사의 부적절한 언행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잠깐의 억울함으로부터 나를 지키지 못했음에 늘 분하다. 그때 당시에 나는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몰랐고 그저 혼자 억울함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형사의 마지막 말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만약 내가 진짜 범인이 아니면, 지금 그 말 어떻게 책임지실 거예요?”
“범인이 아니면 좋은 거 아닙니까?”

『별거없는헌법 별일없는우리』 “유죄추정의 DNA” 중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던 아르바이트 현장 이야기, 코로나로 인해 더욱 커져 버린 (지역, 종교 등)혐오와 차별에 대한 체감, 미성년자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선거권에 대한 의문, 국회의원의 최소 자격에 대한 간곡한 바람, 국회 예결산 의결권에 대한 의문, 국회의원을 비판하는 행위에 대한 돌아봄, 미처 관심을 두지 않았던 국무위원에 대한 이해 등 별일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는 헌법읽는모임을 통해 사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였고, 내가 이 나라에서 어떤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체감했다. 그리고 헌법읽기를 통해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더 튼튼해진 주권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별거 없는 헌법”을 함께 읽을 “별일 없는 그대”를 찾는다. 헌법읽는모임 3기는 10대부터 30대까지 자유롭게 참여 가능하며 헌법 읽기가 하나의 트렌드가 될 때까지 꾸준히 읽기 프로젝트는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상상의 개정안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개정안은 베이직커뮤니티에서 투고 받아 전자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지금 이 기사를 보고 있는 당신은 아마 헌법이라는 키워드에 눈길이 가서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베이직커뮤니티] 다음카페로 들어가 [헌법]을 검색하거나, 카톡 suwoomin으로 연락주길 바란다.

헌법읽기&개정안만들기프로젝트
https://cafe.daum.net/campaignmeeting/qQBH/425?svc=cafea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