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근로자’ 실론(가명, 33)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무직 상태다. 남아시아 출신인 그는 2012년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처음 한국에 들어와 4년 10개월을 성실히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아 재입국했다. 이주노동자가 성실 근로자로 국내에 재입국하는 건 전적으로 ‘사장님 마음’에 달렸다고 한다.
실론 씨는 사장님 마음에 들기 위해 4년 10개월을 노력했고, 그 결과 재입국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11월부터 무직인 이유는 그해 2월 근무 중 입은 부상 때문이다. 그는 대구 북구의 낚시용품 제조공장에서 일했다. 그날, 그는 한쪽에 고정돼 회전하던 길이 1.5m, 무게 8kg의 쇠봉에 오른쪽 손목을 강하게 부딪쳤다.
실론 씨는 “손목 부위가 부어올라서 사무실에 있던 과장님과 대리님에게 말했더니, 얼음찜질을 하라고 했고, 2시간을 지나 붓기가 빠지는 거 같아서 괜찮을 줄 알았다”고 기억한다. 그 후, 잊을 만하면 손목이 시큰거렸다. 그때마다 회사 사람들은 얼음찜질 주머니와 파스를 건넸다. 막연히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수 개월을 일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할 통증으로 뒤늦게 찾은 병원,
산재 신청했지만 불승인 통보, ‘기왕증’
기대와 달리 실론 씨의 손목은 나아지지 않았다. 통증은 점차 심해졌고, 임시 처방은 잠시뿐이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해 손목을 쓰기 힘들 때가 되어서야 결국 병원을 찾았다. 그게 11월이었다. 12월에는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의학적 용어로는 ‘우측 척골 골절 후 불유합 상태, 우측 삼각섬유연골판 파열’이라고 했다.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기왕증(과거에 경험한 질병)’이라는 이유로 불승인됐다.
그는 2013년 당시 유리공장에서 일을 하다 유리에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을 다쳐 치료 과정에서 X-ray 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근로복지공단 자문 의료진은 당시 촬영한 X-ray에서 이미 ‘우측 척골 경상돌기 골절이 나타났다며 이를 기왕증으로 보고, 삼각섬유연골판 파열 역시 마찬가지 판단을 내렸다.
실론 씨는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7년 동안 뼈에 이상이 있는 지도 몰랐고, 아프지도 않아서 병원에 간 적이 없다. 또 해당 부위가 철판에 부딪혀 손목이 붓고 통증이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 손목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제일 답답하다. 물건을 들지 못하니 일도 못 하고, 치료비로 돈이 자꾸 나갔다. 안타까운 그의 사정에 알고 지내던 이주노동자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았다. 실론 씨가 매달릴 수 있는 건 산재승인을 받는 길뿐이라는 생각에 다시 근로복지공단 문을 두드렸다.
두 번째 신청 때는 ‘우측 삼각섬유연골판 파열의 경우 외상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치의 소견을 받아 첨부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사고 직후, 바로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치료 받은 기록이 없던 것도 실론 씨에게 불리했다. 주치의 소견에도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는 우측 삼각섬유연골판 파열 역시 퇴행성으로 판단하고, 당시 사고와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봤다.
병원 방문에 심리적 거리감
사업주에 아픔 표현하기 힘들어
이주노동자 특수성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의 특수성이 겹쳐 재해 인정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2012년부터 대구질병판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양선희 계명대 동산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이주노동자들은 병원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 최초 산업재해 당시에 바로 병원에 갔더라면 관련 기록이 제대로 남아서 승인 받을 확률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짚었다.
양 교수는 “관리자들이 제공하는 찜질팩과 파스를 붙이면서 참을 수 있는데까지 참았을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며 “질병판정위원들이 어릴 때 골절됐던 흔적을 발견하고, 과거 질병이 아니냐고 해서 불승인 판정 근거가 됐다. 그런데 수부(손목) 정형외과 선생님은 현재 통증과 움직임 제한이 부상에 기인한다는 소견을 준 만큼 증상과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선희 대경이주연대 집행위원장도 “이주노동자 산업재해는 죽거나, 신체 절단 정도로 극단적인 케이스가 많다 보니 그 외의 경우는 별로 주목도 못 받을 정도”라며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다치고 아파도 ‘일만 하게 해주세요’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 신청을 할 때 특별히 정부 시스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며 “산재 신청 시, 사업주에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산재신청은 문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해고통지서가 날아왔다
해고사유는 ‘산재보험 부당신청’ 여덟 글자만
첫 번째 산재 신청은 당시 실론 씨가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어서 회사 동료가 신청서를 대신 작성했다. 11월에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CT 촬영 등으로 소요된 50만 원도 회사가 지급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불승인이 나고, 회사는 입장을 바꿨다. 12월 28일, 그의 집으로 해고 통지서가 날아왔다.
제가 거짓말로 산재신청을 했다면서, 저를 잘랐어요. 그 종이를 받고 너무 힘들고 슬펐어요. 산재도 인정받지 못 하고, 일도 못하고, 치료비로 돈은 계속 나가는데···.
실론 씨는 지금도 매주 2회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간다. 그렇지만 손목에 박힌 철심 제거 수술은 경제적 부담으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실론 씨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친구에게 소개받은 행정사를 통해 세 번째 산재 신청서를 얼마 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
일도 못 하는 막막한 상황이라서 여기에 매달리는 거예요. 장담하기 힘든 것도 알고요. 3차 불승인 나고는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어요. 소송까지는 돈이 없어서 못 해요.
실론 씨는 한국에서 유리공장, 자동차 부품공장, 낚시용품 공장 세 곳에서 일했다. 그의 첫 일터인 유리공장에서만 6년을 일했다. 그때도 유리에 베여 봉합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이후 자동차 부품 공장과 이번 낚시용품 공장에서도 오른손을 다쳐 그의 오른손에 봉합 자국을 추가했다.
실론 씨는 한국에서의 지난 삶은 한마디로 ‘힘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일했던 모든 공장은 늘 다칠 위험이 있는 곳이었다. 일하다 죽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며 늘 조심했지만, 그래도 이주노동자들은 사장님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의 ‘코리안드림’은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가 한국을 떠날 땐 울게 될까, 아니면 웃게 될까?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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