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바꾸는 시간, 대바시] 대구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대구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차별에 맞서 싸우거나,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거나,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일상의 작은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뉴스민은 2021년부터 대구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민의 이야기를 짧은 강의 형식을 빌려 전하고자 합니다. 내가 꼭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주변의 사람을 추천해주고 싶다는 분들이 있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newsmin@newsmin.co.kr, 010-8585-3648)
세 번째는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의사 김동은입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대구에서 확산했던 때 그는 간호사로 자원했습니다. 그는 “학교를 다니면서 바이러스에 대해서 배웠던 의사들이 제일 앞에 서지 않으면 과연 누가 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최일선으로 달려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메디시티 대구’라고 해서 끄덖없을 줄 알았는데, 하루 만에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제2의료원’을 꾸준히 주장해왔습니다. 근무를 마치면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에 나서고,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 김동은은 2020년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를 펴냈습니다. 의사 김동은이 꿈꾸는 ‘메디시티 대구’는 어떤 모습일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의 김동은입니다. 지난해 1차 대유행을 겪었고 지금도 코로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점들, 그리고 제가 의사로 한 20년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합니다.
당신은 왜 의사가 되었느냐. 어릴 때 장래 희망이 뭐냐고 어른들이 많이 물어보시는데 그때마다 저는 한 번도 다른 직업을 대답하지 않고 의사라고 대답했던 거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어릴 때 귀, 코, 목이 좀 많이 아팠습니다. 중이염은 너무 심해서 결국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고, 편도절제술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이비인후과를 정말 많이 다녔습니다. 저희 동네에 이비인후과가 없어서 시내버스를 한 30분 정도 타고 시내에 있는 이비인후과까지 다녔어야 했는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저 혼자, 그때가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때인데 병원에 갔어야 했습니다. 가면 한참 기다려서 진료를 보긴 했지만, 선생님께서 혼자 왔다고 씩씩하다고 하시고 한 번씩 쿠키나 캔디 같은 것도 주시곤 했는데 그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저 선생님처럼 따뜻한 의사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어릴 때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헤드미러’라고 합니다. 아이들 보고 의사 선생님 그리라고 하면 하얀 가운을 그리고 머리에는 항상 헤드미러를 그리는데 사실은 이비인후과 의사들만 쓰는 의료장비입니다. 그때 참 신기했던 게 제 귀에서 물이 나오고 목이 아프고 콧물이 엄청나게 많이 나올 때 선생님이 저걸 머리에 쓰시고 한 번만 쳐다보시면 귀도 아픈 것이 덜 아프고 콧물도 멎고 이래서 정말 신기했습니다. 저것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제가 이비인후과 의사가 된 다음에 저도 그걸 쓰고 치료를 많이 했습니다.
고3 때 입시를 앞두고 이제 정말 진로를 결정해야 될 때 조금 고민이 있긴 했습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돈을 많이 벌어서 그 돈으로 어떤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까 제가 어떤 경쟁체제에서 살아남는데 좀 재능이 없는 거 같고, 또 돈을 잘 벌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된다면 굳이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제가 부지런해서 열심히 다니기만 한다면 많은 어려운 분들에게 그래도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의과대학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환자 진료를 보고 주말이나 틈틈이 시간 날 때 몇 가지 다른 일을 하는데 그중 한 가지가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입니다. 많은 분들이 당신은 왜 그 오랜 기간 동안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에서 활동하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까 이렇게 심하게 다치는 분이 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오신 이주노동자분이신데 저하고 10여 년 이상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시다가 손가락을 이렇게 심하게 다쳤습니다. 사람이 불법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이분들을 불법 체류자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분들은 항상 “단속될까?”, “단속되어서 돈 벌러 와있는데 추방되지 않을까?” 그런 불안과 스트레스가 상당히 많아서 몸도 많이 아프지만, 마음도 많이 아픈 상태로 지내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해 2월 중순쯤에 늘 외래진료를 보고, 수술하고, 의과대학에 가서 학생들 수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코로나19 환자가 대구에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간호사 한 분께서 달려오시더니 저희 병원 응급실이 폐쇄됐다고 얘기하시고 대구지역 대학병원 응급실 네군데가 동시에 폐쇄되었습니다. 상당히 좀 심각한 상황이어서 제가 진료실에 혹은 연구실에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미지의 바이러스, 많은 분들이 공포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그럼 누가 최일선에 설 것인가. 학교를 다니면서 바이러스에 대해서 배웠던 의사들이 제일 앞에 서지 않으면 과연 누가 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최일선으로 달려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선별진료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저희 병원 간호사 몇 분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간호사들이 일하면서 너무나 힘들어서 많이 운다고 얘기하셨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과로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제가 병동에 가봤습니다. 한 병동에 확진환자가 60여 명이 입원해계시는데 간호사 네 분이 그 환자들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평상시의 두 배 정도 되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평상시와는 다르게 방호복을 입고 계시죠. 거기다 고글 쓰고 N95 마스크 호흡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훨씬 더 많은 환자를 보고 계셔서 힘들 수밖에 없었고, 너무 힘들어 보여서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제가 간호사로 좀 자원을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병원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달 반 지나니까 환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오신 어르신도 많이 좋아져서 퇴원하셨고, 환자 발생이 줄어서 이젠 제가 병동을 떠나야 되겠다고, 오늘까지만 하고 저는 가겠다고 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내려오는 데 간호사 한 분이 다가오더니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다고 얘기를 해서 그때는 그 뜻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너무나 힘든 시기에 힘들어하는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힘이 되었다는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대구에서 있었고 그 이후에는 계속 환자는 발생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1차 대유행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저희들이 반성을 해야지 또 대비를 할 수가 있고 이런 감염병 대유행은 앞으로 더 짧은 주기로 반복될 것이 예고되기 때문에 되짚어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공공의료 강화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대구에 제2의료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을 하고 다녔습니다. 2월 18일에 첫 환자가 나왔고 그다음날 10명 그다음 23명, 50명, 70명 그러더니 2월 29일 날 741명이 확진이 됐습니다. 3월 1일부터 환자가 좀 줄게 해 달라는 기도를 저절로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때부터 환자가 줄기 시작해서 대구가 의료 붕괴까지 가진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초반에 상당히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 75명이 사망했을 때 분석한 결과를 보면 23% 정도의 환자분께서 병실이 없어서 확진을 받고도 댁에서 대기하시다가 병실이 나기만 기다리다가 입원도 못 해보고 돌아가셨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럼 대구에 정말 병상이 부족할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대구는 상당히 병상이 많은 도시 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민간병상이었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어떤 방침에 따라서 빨리 병원을 비우고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그런 병원은 사실상 대구의료원 하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공공의료 강화입니다. 많은 지자체에서 지금 공공의료를 확충하려고 하고 공공병원을 새로 짓기 위해서 정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공병원도 공공병원은 수익을 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고 팬데믹 상황에서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면서까지 새로 건립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근데 대구는 저희들이 계속 요구했지만 계속 제2의료원보다는 기존의 대구의료원을 강화하는 것이 되겠다는, 그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심지어 대구의료원의 내년 예산안을 오히려 삭감하는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모습이 전혀 맞지 않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서 좀 안타까웠습니다. 최근에 와서 제2대구의료원을 검토하겠다고 대구시에서 얘기하고 있어서 늦었다고 생각이 되지만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좀 빨리 진행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앞으로 어떤 모습의 의사로 살아가고 싶은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제 생각을 한번 나눠 보겠습니다. 제 고3 때 모습입니다. (그때) 선생님 생각이 나서 찾아뵀습니다. 저한테 딱 한 가지 당부하겠다고 하셨는데 그때 하신 말씀이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힘든 인턴 생활, 레지던트 생활, 전공의 시절을 보내면서 너무너무 힘들 때 그 선생님 말씀이 여러 번 생각이 났고, 그 말씀 때문에 좀 힘을 낼 수가 있었습니다. 병원 생활하면서도 과연 제가 주치의를 맡은 그런 환자분들이 저를 만날 때 저 사람에게서 인간미를 느끼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반성을 하는 날이 상당히 많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의사로 살아가는 마지막 날까지 다른 건 모르겠고 환자들이 인간미를 느끼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지금 우리 의료 현장이나 병원이나 우리 사는 세상이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생명이 돈보다 너무나 소중한데 오히려 돈이 생명보다 더 우선시되고 더 중요한 것처럼 이렇게 여겨지는 그런 세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돈 보다 생명이 더 귀하게 여겨지고 어떤 이윤보다는 우리 시민들의 안전이 더 존중받는 그런 의료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제가 미력이나마 힘을 좀 보태고 싶습니다.
메디시티 대구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구에는 코로나19가 와도 끄떡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봄에 그렇게 의료의 메카라고 얘기하고 의료특별시라고 얘기하는 우리 대구가 하루 만에 두 손을 들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시에서는 이후에 대처를 잘했다고 얘기를 하고 심지어는 D-방역이라고 하는데 그 이후에 대처를 잘한 측면도 있다 생각이 됩니다. 많은 공무원들, 많은 분들이 고생하신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그런데 소 잃고 외양간을 잘 고치는 것보다는 소를 잃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은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고 반성을 하고 반복될 것이 예상되는 감염병에 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이 됩니다. 처음엔 메디시티가 뭔지 몰랐는데 알아보니까 의료관광을 통해서 부를 창출하고 의료산업을 육성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그런 거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몸이 아플 때 치료받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입니다. 기본권이기에 때문에 그 사람의 기본권을 가지고 이윤을 창출하는 돈을 벌겠다는 거는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디시티를 통해서 대구에 부를 창출하겠다는 걸 무조건 탓할 수는 없지만 그걸 하더라도 동시에 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구시민들 특히 우리 소외계층, 저소득층이 건강권을 누릴 수 있도록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거였는데 과연 메디시티 대구가 수 천억이 되는 돈을 그동안 써왔는데 그동안 공공의료에 맞춰서 많이 확충을 해 왔느냐. 짚어 보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정말 진정한 메디시티 대구는 의료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많이 하는 그런 도시가 아니고 이런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오더라도 시민들이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그런 도시가 진정한 메디시티 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변화가 대구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고 그런 대구의 변화를 유도하고 이끌어오고 또 같이 끌고 가는 데 있어서 저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촬영=천용길, 여종찬, 권지해
편집=권지해
출연=김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