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1일 4시 30분. 대구시 북구 복현동에서 배송업무를 하던 택배기사 권철현(40) 씨가 쓰러졌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아침부터 유달리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평소처럼 배송지로 향했다. 고객에게 택배 상자를 건네던 중에 갑자기 시야가 흐려졌다. 의식도 옅어졌고,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이상하다고 느꼈다. 권 씨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에 누운 채였다.
만약에 그때 혼자 있었다면···지금 저는 여기에 없겠죠.
권 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4개월 동안 병원에 있었고, 퇴원했어도 바로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 집에서 두 달 정도 요양을 하면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산재보상) 신청을 했다. 권 씨는 택배기사가 아프면 그만두던 때라 다시 택배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 산재 신청은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두 달 정도 걸렸다. 그 사이 그는 다시 병원에 입원해 재수술을 받았다. 2020년 4월 기다리던 산재 신청 결과가 나왔지만, 기대와 달랐다. 산재신청 기준과 조사 결과 등이 빼곡하게 A4 3장에 걸쳐 적혀 있었지만, 한 마디로 ‘불승인’이었다.
기준 시간 미달로 산재신청 ‘불승인’
장시간 근로 외 업무 강도‧스트레스 고려됐어야
권 씨의 정확한 진단명은 ‘급성대동맥박리증, 혈심낭증, 지주막하 뇌출혈’이다. 전국택배노조가 정리한 2020년 11월 이후 과로사고 현황에 따르면, 13건 중 7건이 권 씨와 같은 심뇌혈관 질환이다. 나머지는 과로사로 분류만 되고 구체적 질병은 기재돼있지 않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뇌심혈관 질병이 업무상 질병이 되기 위해서는 업무와 관련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도의 급격한 업무 환경 변화로 생리적 변화가 생긴 경우 등 몇 가지를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인정기준은 근로시간이다.
2012년 9월부터 대구질병판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양선희 계명대 동산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승인 여부를 판단할 때 근로시간이 주 52시간 이상인지, 단기간 30% 이상 업무가 증가했는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살핀다”면서 “일단 시간이 못 미치면 승인 확률이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권철현 씨는 발병 1주 전 업무시간이 52시간 21분이었다. 발병 전 12주 동안은 1주당 49시간 21분으로 계산됐다. 당시 출퇴근 시간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아서 택배에 스캐너를 찍는 시간을 기준으로 추산했다. 이 무렵 택배노동자들이 통상해오던 분류작업 시간은 포함되지 않았다. 또 이 시기 권 씨는 통풍으로 통원 치료를 받느라 출근시간이 늦었다.
권 씨는 왜 12주를 기준으로 두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보통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8시~9시까지 하루 300개 정도의 물량을 담당했고,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주 6일을 일했다”며 “시간에 쫓겨 점심은 거르거나 대충 때우고, 퇴근 후 밤늦게 밥을 먹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권 씨 설명에 의하면, 그가 맡은 구역은 대학가라 성수기와 비수기 차이가 컸고, 12주에는 방학 기간인 7~8월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권 씨가 받은 산재불승인 결과서에는 질병판정위원회 논의 중 택배 작업의 육체적 강도와 업무 내용이 영향이 있었을 거라는 소수의견도 기재됐다. 양 교수는 “소수의견이 명시된 건 당시 판정위 의원들의 토론이 있었고, 승인 여부에 고민을 했다는 뜻”이라며 “근무 중 스트레스나 업무상 강도, 환경 여건이 구체적으로 더 설명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한인임 노동환경연구소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두고 다투어야 하는 현재 상황을 두고 ‘잔인하다’고 표현했다. 또 산업재해 입증 책임이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있어야 하고, 보다 폭넓은 재해 인정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 사무처장은 “노동자 개인이 산업재해를 입증하기 위해 아우성 쳐야 한다. 기본적으로 회사 책임으로 하고, 반대로 산업재해가 아님을 회사가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며 “게다가 질병판정위 면면을 살펴봤을 때, 노동자의 근로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위원들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노동 환경을 맥락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노동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택배업계 산재 승인 높아졌다곤 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회사에 산재 입증 책임 맡겨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임종성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광주시을)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택배노동자 산재율 및 업종별 산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준 산재율은 1.27%로, 전체 산재율(0.28%)의 4.53배에 이른다. 산재율은 산재보험 가입자 중 산재로 인정받은 경우만 해당하기 때문에 특수노동고용직인 택배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과 산재승인율을 감안하면 드러나지 않은 산재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김광석 전국택배연대노조 대구경북지부장은 “최근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이슈화가 되니, 실제로 산재 승인이 높아진 분위기가 있다. 택배노동으로 다치고 아플 확률이 높은데,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지속적인 근로환경 개선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또 개인이 산재 입증을 위해 뛰어다니고, 관련 데이터는 회사에서 잘 안주려고 하는 상황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돌아왔지만, 수입은 반토막
근로복지공단이 현장의 노동자를 살펴주길
쓰러진 지 약 10개월 만인 2020년 7월 1일, 권철현 씨는 일터로 돌아왔다. 권 씨가 병원을 오가며 요양하던 동안 권 씨가 일하던 구역과 물량은 신규 입사자와 기존 동료들이 나눠 맡았다. 노조를 통해 대리소장을 만났지만 원래 담당하던 물량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출근했을 때 한 일주일은 물량도 없어서 레일만 보기도 했었어요. 조금씩 물량이 돌아오나 싶었는데, 물량은 한정적이니까 수입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반토막 났죠. 안 되겠다 싶어서 대리소장 앞으로 내용증명도 보내고, 1인 시위도 하고 4개월간 이래저래 뛰어다녔어요. 건강상 문제없는지 증명하라고 해서 의사 소견서도 냈고요. 그런데 그냥 택배기사들끼리 해결하라고 하더라고요.
‘물량을 회복하게 해달라’는 요청은 지난 4월 이후로 접었다. 권 씨는 무엇보다 같은 택배기사끼리 싸움으로 비춰질까 그게 부담스러웠다. 다른 지점에 비는 물량이 있으면 아르바이트를 자처하고, 적은 임금에 맞춘 생활을 하고 있다. 4개월간 노력한 결과, 예전 물량의 60% 정도인 하루 100~150개 정도로 돌아왔다.
제가 군대 제대하고, 다른 일 잠깐 한 것 빼고 택배일을 15년 했어요. 한 5년 전쯤인가 그때 자동분류기(휠소터)가 나오고, 복직 하고나니 분류도우미가 생겼더라고요. 택배 산업의 발전사를 함께했죠. 노조가 생긴 지는 2년이고, 산재보험 가입도 몇 년 안 됐죠. 이번에 저는 못 받았지만, 다음에 누군가 비슷한 상황에는 받았으면 좋겠어요.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현장을 더 꼼꼼히 살펴서 사각지대가 없었으면 합니다.
장은미 수습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