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미나리>와 배우 윤여정의 수상 소식이다. 우리나라가 다시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4관왕에 오른 뒤 한동안 세계 영화제에서 한국 관련 영화의 수상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 거란 생각이 컸다. 그런데 <미나리>가 1년 만에 훈풍을 몰고 왔다. 특히 일흔이 훌쩍 넘은 여배우는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솔직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공감해주는 과거 발언은 이슈가 됐다. 청년층은 배우 윤여정을 존경할만한 어른으로 꼽으며 그의 수상 소식에 찬사를 보낸다.
예전부터 전통적 여성상과 거리가 먼 이미지였던 배우 윤여정은 위선과 가식이 없는 진솔한 면모로 인기를 끌어왔다. 영화에서는 강렬한 캐릭터를 주저 없이 연기하면서도 예능에선 어린 배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세련된 유머를 구사한다. 시들어 가는 무기력한 노년의 이미지를 깨고 나이 먹을수록 전성기를 맞고 있다. 늙는다면 저렇게 늙고 싶다는 노년의 워너비 스타다. 세대 갈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마당에 청년층의 반응은 반길 현상이지만, 마뜩지 않다. 그의 연기와 출연작보다는 인품에 감화돼서다.
배우를 비롯한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잣대는 주로 능력보다 평판에 쏠려 있다. 직업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기부나 봉사활동 등 선행을 하면 호감을 얻는다. 하지만 사회적 물의를 빚지 않아도 특정 행동이 눈 밖에 나면 힐난, 외면당한다. 대개 이런 평판은 신뢰할 수 없는 ‘카더라’나 먼발치에서 지켜본 ‘목격담’으로 비롯된다. 편집된 화면 속 연예인의 모습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사실처럼 그의 꼬리표로 따라다닌다.
이 같은 행태는 연예인을 공인(公人)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방송 무대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을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이유로 공인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건 문제가 있다. 단지 유명인일 뿐인데 사생활 공개가 당연해지고 개인사로 대중의 뭇매를 맞는 것도 가혹한 처사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연예인의 사생활 노출이 당연시되고 있다.
배우 윤여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나이에 주목받는 여배우였는데, 결혼과 이혼 등으로 연기경력에 공백을 겪었다. 생계를 위해 TV 연속극 속 이름 없는 엄마 역할을 맡았다. “‘윤여정은 이혼녀야. TV에 나와선 안 돼.’ 그땐 사람들이 그랬어요. 근데 지금은 저를 아주 좋아해 주세요. 이상하죠. 하지만 그게 사람들이죠.” 언론 인터뷰에서 배우 윤여정이 곧잘 하던 말이다.
그는 이혼했다는 이유로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도로 이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남편은 대중 앞에 당당히 나섰다. 단역과 조연을 이어가던 배우 윤여정은 56세 들어 영화에 다시 출연하기 시작했다. 74세에는 세계 영화제의 수상 후보 명단에 이름이 오르고 있다. 배우 윤여정의 말처럼 이상한 일이다. 과거에 대중이 싫어하던 배우가 지금은 국민 호감이 됐다.
사실 <미나리> 속 배우 윤여정의 연기는 그의 출연작 중 특출나지도 않다. 배우 윤여정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사실 세계 영화제 수상이 놀랄 일은 아니다. 꾸준히 연기 변신을 해왔고, 연기력도 매우 뛰어나다. 쉬지 않고 상업영화부터 독립예술영화도 출연했다. 영화 속 소박하고 여리지만 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미나리가 배우 윤여정의 굴곡진 삶을 투영하는 셈이다.
미국 아칸소주로 이민 간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도 결혼 후 미국으로 넘어간 배우 윤여정의 삶과 흡사하다. 그는 이혼하기 전까지 13년간 낯선 미국 땅에서 아이들을 홀로 돌봐왔다. 배우 윤여정은 척박한 환경을 딛고 자란 미나리처럼 인생의 굴곡을 이겨내고 두려움 없이 도전해 시련과 고난을 이겨냈다.
<미나리>가 미국 안팎에서 받은 100여개 상 중 30여개가 여우조연상이다. “전성기도, 대표작도 없다”는 배우 윤여정에게 위로와 공감이라는 선물을 한 아름 건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할머니 순자(윤여정)는 물만 있으면 잘 자라고 버릴 데가 없어서 “미나리 원더풀”을 외친다. 배우 윤여정도 원더풀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