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흔한 우리네 이야기 ‘세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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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문소리)은 겉보기에 남부러운 것 없는 삶을 사는 것만 같다. 번듯한 대학교수 남편 동욱(조한철)과 말 잘 듣는 아이들로 이뤄진 가정은 화목하게 보인다. 매일 저녁 온 가족이 한데 모여 기도를 올리며 식사를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는 미연은 가정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면은 다르다. 남편은 성가대원 효정(임혜영)과 바람이 났다. 최근 장만한 신도시 고급 아파트에서 연 교회 모임에 늦은 남편의 옷에 낯선 여자의 향기가 배어있다. 이윽고 성가대 연습에 빠진 효정을 찾으러 간 건물 지하에 남편과 효정의 밀회를 목격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지만 화목한 가정을 깨뜨릴 수 없다. 예민해진 미연은 신경질적으로 자녀들을 훈육한다.

동생 미옥(장윤주)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술주정을 한다.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만 미연은 화목한 가정의 강박을 벗지 못한다. 몰래 효정에게 복수를 하고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에게는 재정적 압박을 한다.

미연의 언니 희숙(김선영)은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인데, 집 나간 남편 정범(김의성)은 가끔 찾아와 아내를 희롱하며 돈을 뜯어간다. 하나뿐인 딸 보미(김가희)는 엄마에게 패악을 부린다. 늘 상처받은 본심을 숨기는 희숙은 자해를 위안으로 삼는다. 그런 그는 기댈 곳이 없어 암 선고를 받고도 괜찮은 척 항상 삭이고만 산다.

막내 미옥은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다. 매일 술에 잔뜩 취해 언니 미연에게 “나는 쓰레기”라며 위악을 떤다. 감정을 숨기는 큰언니, 감정을 누르는 둘째 언니와 다르게 감정을 거칠게 분출한다. 남편 상준(현봉식)에게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휘두른다. 의붓아들 성운(장대웅)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어느 날 아들의 휴대폰에 자신이 ‘돌+아이’로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보곤 술에 취해 학교에 가서 난동을 피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셋은 자매다. <세자매>는 주연이자 공동 프로듀서를 맡은 배우 문소리와 배우 김선영의 남편 이승원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 개봉에 앞서 책 <세 자매 이야기>가 출간됐다. 책에는 최종 시나리오 외에 문소리가 직접 촬영한 현장 사진에 덧붙인 제작기, 세 배우가 함께한 인터뷰, 미공개 현장 스틸이 담겼다. 허은실 시인이 둘째 미연(문소리)의 시점에서 언니 희숙(김선영)을 향해 쓴 편지 형식의 헌정 시 <그 언니, 에게>와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영화평이 함께 실렸다.

자매들은 남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지만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싶을 정도로 속이 망가져 있다.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던 세 자매는 아버지 생신 모임을 앞두고 한데 모인다. 화목해야 할 자리에서 세 자매가 그동안 꽁꽁 감췄던 감정을 터뜨리며 묵직한 메시지가 드러난다. 그나마 여느 자매처럼 속내를 나누는 미연, 미옥과 달리 희숙은 영화 중반부가 돼서야 이들의 큰언니란 게 확연해진다. 이들은 세 자매가 아닌 사 남매다. 뒤틀린 관계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의 외도와 가정폭력에 얼룩진 기억이 상처로 박혀있다.

영화에 그려진 세 자매의 이야기는 어딘가 존재할 듯 생생하다. 불안한 가족의 모습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늘 가족에게 희생하지만 가족 누구 하나 관심 얻지 못하고 마음의 병만이 아닌, 몸의 병까지 생겼지만 속 시원하게 얘기조차 못하는 가족들이 있다. 사랑받는 아내인 척, 착한 남편인 척해도 실제로는 그게 아닌 경우도 있다.

영화는 무언가 해결되지 않고 끝난다. 바다로 간 세 자매의 모습은 불편하고 힘겹게 영화를 보던 관객들에게 묘한 위로를 전한다. 배우 김선영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꼭 뭔가 해결돼야만 인생이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어도 그렇게 웃고 또 살아가는 거죠.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저도 위로를 받게 되더라고요.” 세 자매 이야기는 우리를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다.

세 배우의 연기는 흠잡을 것 없이 훌륭하다. 배우 문소리는 원숙한 연기를 선보이고, 배우 김선영은 섬세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를 펼친다. 배우 장윤주의 생활연기도 놀랍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