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로 유학 온 미얀마 학생이 치켜든 세 손가락

미얀마 유학생 에이 씨,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한국 응원, 너무 고맙다"

15:30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에이(24) 씨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의 열렬한 팬이다. 한국을 알기도 전에 K-POP을 먼저 접했고, K-POP에 반해 한국 유학까지 결심했다. 군부 정권 시절에는 유학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지만, 2015년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정당(NLD)이 총선에서 승리하고부터 유학도 자유로워졌다. 에이 씨는 2017년 대구의 한 대학에 입학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중에도 매일매일 가족과 SNS와 전화로 연락하던 에이 씨는 최근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가족들과 소식이 끊어졌다. 전화가 먼저 끊겼고, 이후 현지 인터넷도 끊어졌다. 외신에서는 가족이 있는 양곤에서도 사망자가 나온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에이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족과 연락이 닿길 바라며 휴대전화를 바라보는 일밖에 없었다.

에이 씨처럼 유학생이나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온 미얀마 사람들은 돌연 발생한 쿠데타 소식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들은 지난 7일부터 주중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에 대구 달서구 성서공단 인근에 모여 집회를 시작했다. 현지에 있는 가족과 동료들에게 미얀마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고 알리고 싶었다.

지난 14일 오후 3시, 대구에 거주하는 재한 미얀마인 40여 명이 성서공단역 인근에 모여 군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구의 재한 미얀마인들은 집회 현장에 모여 미얀마 쿠데타 반대 민중가요 ‘어찌 잊으리’를 불렀다. 에이 씨도 이 자리에서 세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재한 미얀마인들이 14일 오후 3시 성서공단역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에이 씨는 “개인적인 일을 보던 중 쿠데타 소식을 듣고 유학생 친구랑 펑펑 울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한국에서 보내는 응원에 미얀마 사람들이 너무 감사하고 있다. 위로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미얀마 이주노동자 웨표(26) 씨는 “부모님 세대의 8888항쟁을 들었고,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한국에서도 응원하고 있다는 걸 현지에 알려주고 싶다. 미얀마 사람들은 한국 사람의 응원에 너무 감동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회를 주최한 재한 미얀마인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권력을 빼앗은 군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군부는 2020년 총선 결과를 존중하고 구금된 모든 사람을 즉각 석방하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웅산수찌와 대통령 윈민, 여당(NLD) 지도자를 가택 연금했다. 군이 민 아웅 흘라잉 참모총장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밝힌 뒤, 미얀마 각지에서 시위·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군부는 일부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강경 진압에 나섰다. 외신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누적 군부에 저항하던 시민들 중 사망한 이가 1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재한 미얀마인들이 14일 오후 3시 성서공단역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