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 8,000제곱미터. 대구 중구에서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아파트·주택 건설 현장은 중구 총면적의 11% 이상을 차지한다. 경기 침체 속에도 부동산 광풍은 식지 않고 주택을 향한 열망은 유령처럼 도시를 배회한다.
67만 3,000제곱미터. 이미 원주민이 터를 잡고 살던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예정) 지역. 중구 면적의 9.5%를 차지하는 정비사업 현장. 자갈마당, 인쇄 골목, 공구 골목, 대구 최고령 아파트 따위로 불리던 형형색색의 터전이 회색의 시멘트로 납작하게 눌린다. 이곳은 주택을 향한 욕망이 결국에는 승리하는 현장이자 전시장이다. ‘강제철거’, ‘보상’, ‘투쟁’, ‘조합’, ‘경비용역’, ‘망루’···이곳이 바로 복마전(Pandemonium)이다.
부동산 광풍 밑바닥에는 공포도 깔려있다. 주택 없는 계급에 대한 공포, 파산에 대한 공포. 누구나 주택을 가질 수 있다면 애초에 욕망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결국에는 누군가가 파멸해야 승리할 수 있는 이 복마전을 직시하는 이들이 있다.
대구 북성로에 불쑥 나타난 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HOOLA)는 당초 업사이클링 밴드로 불렸다. 북성로 공구 골목에 있는 쇠붙이를 주워다 연주하며 놀던 훌라는 해를 거듭할수록 도시생태에도 관심사를 넓혀 갔다. 도시 곳곳을 탐사하던 훌라는 북성로를 포함해 대구 각지에서 진행되는 재개발을 마주하고, 절망적인 충격을 받는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파멸한다는 절망. 이들이 북성로, 남산동, 동인동, 명륜동에서 확인한 파멸은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듯 말하는 정치인의 문법으로도, 재개발 갈등을 중개하는 언론의 문법으로도 온전히 표현되지 않았다.
생략된 이야기를 알리는 것을 훌라의 몫으로 여겼다. 그들의 언어로 재개발과 파멸을 표현하려 했고, <PANDEMIC CITY(팬데믹 시티)>에 이를 담았다.
팬데믹 시티 1편 ‘Milord(밀로드)’에서는 러닝타임 내내 파괴된 터전에서 여성이 노래한다. 그는 파괴된 자기 터전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 노래하는 그 모습은 낭창(朗暢)하기만 하다. 여성의 표정에 대비된 풍경은 전후 근대가 아닐까 느낄 정도로 황폐하게 다가온다. 인지부조화의 현장은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돼, 막힘 없이 전개된다.
팬데믹 시티 2편(‘PANDEMIC CITY(팬데믹 시티)’)에서는 주택을 배회하는 유령과 소리꾼이 등장한다. 소리꾼은 파국을 인지하는 자다. 북소리와 창(唱)에는 짙은 슬픔과 불안이 응축돼 있다. 그는 때로 파멸을 경고하듯, 때로는 원혼을 위로하듯 노래한다. 유령은 욕망을 따라 이리저리 부유한다. 그들이 향하는 종착지는 아파트다. 그 아파트는 꿈꾸던 에덴동산의 이미지가 아니다. 잿빛과 핏빛으로 물든 단색의 세계다. 대구 재개발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은 대구라는 특수성을 지우고 보편성을 남겼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수려한 영상미 덕에 몰입도 높게 볼 수 있다.
안진나 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 디렉터는 “2019년 북성로 초입부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5천 평 부지에 있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질 때 존재가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서 이뤄지는 재개발을 피부로 느낄 때 절망감이 컸다”며 “우리가 있는 북성로도 마찬가지지만, 대구에서도 200곳이 넘는 곳에 공사가 추진된다니 이대로 과연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PANDEMIC CITY>를 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안 디렉터는 “재개발을 꼬집어서 얘기했지만 팬더믹 시대의 위기감도 마찬가지로 연결돼 있다. 감염병, 기후 위기, 쌓이는 폐기물 같은 모든 위기가 자연스럽게 파국으로 향하고 있다”며 “그런 파국을 보여 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개발’, ‘아파트’. 누구나 아는 이 명사는 되새길수록 함의가 더욱 깊게 우러난다. 욕망을 전시하는 모델하우스 사이에서 훌라는 ‘재개발’에 생략된 서사를 드러내고, 또 파멸하는 도시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훌라는 2편에서 섣부른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3편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