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달 26일 공포됐다. 시행은 공포 후 1년 뒤 부터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을 처벌할 수 있게 된다. 법이 내년부터 시행되면 중대재해로부터 노동자를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 <뉴스민>은 지난해 대구·경북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를 통해 법의 실효성을 미리 살펴보기로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한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업재해 중 ▲1명 이상 사망, ▲2명 이상이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 부상, ▲3명 이상이 1년 이내 동일 유해요인으로 급성 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이 발생하는 재해를 말한다. 다만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뉴스민>은 지난해 대구·경북에서 1명 이상 사망한 산재 사고 현황을 통해 법 적용 여부를 파악했다. 고용노동부는 2020년 한 해 발생 산재 사망 현황을 집계 중이다. 노동건강연대가 언론 보도를 통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대구·경북에서 일하는 노동자 약 90명이 현장에서 숨지거나 과로사로 생명을 잃은 거로 추정된다.
현재(21년 2월) 기준으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까지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제공하고 있다. <뉴스민>은 고용노동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난해 9월까지 대구·경북 지역 산업재해 현황을 확인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대구·경북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는 모두 60명이다. 재해유형은 떨어짐이 22건으로 가장 많고, 끼임 15건, 부딪힘 7건 순으로 많았다. 이 세 가지 유형은 ‘재래형 재해’로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다.
9월까지 발생한 사망 사고 60건 중 법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19건이다. 남은 41건 중에서도 법 공포 후 3년 뒤부터 적용하기로 한 5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면 9건만 남는다. 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는 곳이 9곳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뉴스민>은 좀 더 구체적인 재해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정의당을 통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대구·경북에서 발생한 재해조사의견서를 확보했다. 이 보고서는 재해 유형, 사업장 규모는 물론 구체적인 발주처, 원·하청 관계, 재해 원인, 재해 발생 업종까지 파악할 수 있다. 단, 수사 등이 진행 중이 사건은 빠졌다.
사망사고 51건 중 10건만 법 적용 대상
공공기관 발생 또는 발주도 14건···8건은 안전조치 미이행
재해의견서를 분석해보면 이 기간 대구·경북에서 발생한 사망 산재사고는 51건이고 52명이 숨졌다. 숨진 노동자 중 일용직 노동자가 28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정규직 노동자가 23명(알 수 없음 1명)이었다.
재해조사보고서를 기준으로,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13건이 발생했고, 5인 이상 49인 미만 사업장에선 34건이 발생했다. 규모만 확인했을 때 법 적용 대상은 4건 뿐이다.
법률상 건설업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이어도 공사대금이 50억 이상이면 3년 유예 대상에서 제외된다. 50인 미만 사업장 34건 중 6건이 공사대금 50억 이상 건설업체에서 발생한 사고로 51건 중 10건이 법 적용 대상이 된다. 고용노동부 자료상 60건 중에서도 9건 외에 비슷한 사례가 일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51건 중에서 9건(17.6%)은 하청업체에서 재해가 발생했다. 5인 미만인 원청이 더 작은 사업장으로 하청을 준 경우도 2건 있다. 지난해 6월 대구 동구에서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였던 A(39) 씨는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없이 5m 높이 전주에서 떨어져 숨졌다. 원청(건설업) 상시 근로자는 4명, 하청 상시 근로자는 2명이었다. 원청 공사 금액은 32억 가량인 데다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법 적용 대상은 안 된다.
또 다른 2건은 하청업체가 다시 하청을 주는 이른바 ‘재하청’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한 건은 사고가 난 재하청업체는 물론이고 원청, 하청업체 모두 50인 미만 사업장이다. 또 다른 한 건은 원·하청업체 규모를 파악할 수 없었고, 공사 규모는 8억 가량이다.
전체 51건 중 14건은 공공기관에서 사망 사고가 나거나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에서 사고가 났다. 지난해 11월 수성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B(52) 씨가 새벽 근무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청소차 뒷발판에 올라타 작업하는 것은 불법이고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작업 편의를 위해 노동자도 사업주인 수성구도 묵인해왔다.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에 중앙행정기관장, 지방자치단체장, 지방공기업장 등을 포함하고 있다. 수성구청은 1년 후부터 중대재해법을 적용 받는다. 수성구는 사고 발생 후에 뒷발판을 제거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이후 환경미화원 3인 1조 작업 규정에 예외를 두는 조례를 개정하면서 의회 반발을 샀다. 당시 수성구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용노동부로부터 안전보건개선계획을 수립할 때까지 사고 차량에 대한 부분 작업 중지 명령을 받고, 관련 법령 위반으로 약 2천만 원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 13건은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설/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이중 11건은 50인 미만 사업장이 수주했다. 중대재해법 적용 3년 유예 대상에서 제외되는 공사 금액 50억 이상인 사례는 5건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5건 중 2건은 하청업체로 재발주하면서 공사 금액이 낮아졌다.
지난해 7월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79억 규모로 울릉도 도동항 방파제 보수 공사를 발주했다. 공사를 발주받은 전문건설업체는 수중공사를 위해 21억 규모의 공사를 하청업체에 넘겼다. 사고 당일 첫 출근한 일용직 노동자 C(49) 씨는 안전 교육을 받지 못했고, 작업 내용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크레인으로 인양되는 65톤 테트라포드(방파제 비복제로 사용되는 블록)가 다가오자 대피처를 찾지 못하고 결국 끼여 숨졌다. 이 업체는 작업계획서를 작성했지만 현장에는 계획서에 따른 작업지휘자가 없었다. 이처럼 공공기관 재해 14건 중 8건은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나머지는 안전 수칙을 지켰는지 알 수 없다.
재해 유형은 역시 ‘재래형 재해’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끼임이 19건으로 가장 많았고, 떨어짐 16건, 부딪힘 7건 순이었다. 건설업(공사 포함 25건)에서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했고, 제조업(13건)이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