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는 국립대구박물관을 제외하고 대구시에서 직영하거나 위탁 운영하는 공립박물관 여섯 곳이 있다. 그런데 여섯 곳의 운영 방식이나 대구시에서 관리하는 부서가 제각각이고, 직영 운영하는 박물관 3곳이 문화예술회관 산하 조직으로 운영되는 등 위상도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박물관 정책이 사실상 부재해서 생기는 맹점인데, 대구에서 처음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27일 오후 2시부터 대구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는 ‘박물관 정책 문제점 진단 및 개선방안’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대구경실련) 등이 시민 서명을 통해 정책토론회 개최를 청구한 결과다.
토론은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의 발제 후 함순섭 국립대구박물관장으로 좌장으로 한 패널 토론 방식으로 진행됐다. 패널에는 조광현 처장을 포함해 박호숙 계명대 겸임교수(사학과),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이상민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장, 천종관 대구시 섬유산업팀장이 참여했다.
기형적인 대구 박물관 운영 방식
예산도, 조직도 부족한 실정
“박물관 운영 주체 일원화 필요”
조광현 처장은 발제를 통해 대구의 박물관 현황을 “박물관인 듯 박물관 아닌 박물관 같은 대구시 공립박물관”으로 정리했다. 조 처장은 현재 운영되는 박물관에 배정되는 ▲예산과 조직 규모, ▲조직 편제상의 문제, ▲민간위탁 중심의 운영 방식, ▲조례 등 제반 제도의 부실 등을 꼽으며 “대구시가 박물관에 사실상 관심이 없다는 걸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조 처장은 “직영 박물관이 문화예술회관 산하에 있는 건 참사”라며 “공공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문화예술회관은 같은 급으로 평가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두는 건 참사일 뿐 아니라, 박물관을 모욕하는 것이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도 모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이어 “답은 있는데 안 해서 문제인 것 같다. 왜 안 하느냐? 시장이나 대구시의 의지가 없어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고, 우리 시민들이 관심이 없는 측면도 있다”며 “3개 박물관은 회관 밑에 있고 다른 3개는 위탁으로 박물관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여러 가지로 박물관에 대한 상이 그려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걸 잡기 위해서라도 운영 주체라도 일원화해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함순섭 관장은 대구가 박물관 정책이 부재한 이유를 역사에서 찾았다. 함 관장은 “대구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공립박물관을 건립한 곳이다. 인천이 1번이고 대구가 1947년에 개관했지만 1957년에 문을 닫았다. 대구시가 스스로 문을 닫았다”며 “그 트라우마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박물관이란 이야길 꺼내지 않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 관장 역시 공립박물관이 문화예술회관 산하 조직으로 있는 건 “기형적인 상황”이라고 짚으면서 대구시가 박물관을 개관해온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함 관장은 “대표적인 게 방짜유기박물관인데, 누가 기증을 하면 덜렁 건물을 만드는 식은 안 된다. 사실 그런 점에서 대표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구는 대표관이 있었지만 스스로 닫다 보니까, 정책의 유지라든지 이런 게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박물관, 문화유산 정책 담당할 과 신설 필요”
“시립박물관건립이 전환점 될 것”
“섬유박물관, 전담 부서 관리에 동의”
오동욱 연구위원은 대구시의 박물관 정책이 부재하다거나 일원화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정책적 컨트롤 타워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 연구위원은 “대구시 공립박물관, 국립박물관 뿐 아니라 사립박물관도 20개 정도 있다. 이런 박물관들이 나름대로 전문적인 성격을 구현하지만 대구라는 큰 공간을 놓고 포괄하고 있다고 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발제자께서 정책이나 많은 부분이 산재되어 있고, 부서도 일원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일원화되면 네트워크도 잘 되는 부분에서 공감한다”며 “종합형 컨트롤 타워가 되면 너무 좋겠다. 국립박물관도 연계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다만, 현재의 기존 부서는 본연의 업무도 못 하는 상황으로 새로운 기능을 하긴 어려움이 있다. 합의를 이룬다면 박물관 정책과 문화유산 정책을 하나로 하는 과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구시에서 문화예술정책을 담당하는 이상민 과장은 대구시립박물관 건립이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단편적인 인력 충원이나 예산을 늘리는 방안으론 한계가 있다. 대대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전환점이 필요하고 전환점은 시립박물관 건립”이라며 “시립박물관이 없는 광역시도 대구가 유일한 것으로 아는데, 시립박물관이라는 컨트롤 타워가 생기면 전반적인 역량 상승이 가능할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구시가 위탁하는 3개 박물관 중 섬유박물관을 담당하는 천종관 섬유산업팀장은 박물관 관리 부서가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섬유박물관을 박물관 정책 전담 부서로 이전하는 것도 필요한 방안이라고 동의했다. 천 팀장은 “6개 박물관 중 섬유박물관은 좋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다”면서 “토론회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박물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전담 부서로 넘기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