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0) 방역마저 자급자족해야 하는 사람들

활동 보조 필요한 장애인 13명의 자가격리
대책 없는 방역당국···“그게 현재로선 최선이네요”

15:29

[편집자 주] 감염병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신종 감염병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내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사회의 아픔도 그대로 드러냈다.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1차 대유행이 할퀴고 지나간 대구는 극심한 감염병으로 직접적인 피해만큼 사회과 품은 또 다른 아픔도 명징하게 드러냈다. <뉴스민>은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기획을 통해 이주민과 난민, 학생과 교사,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통해 감염병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아픔을 짚고, 감염병에 대응하는 공공의료체계의 현실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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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슬 씨와 관수 씨가 한시름을 덜 시점, 전근배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정책국장의 시름은 본격화되고 있었다. 주말을 전혀 쉬지 못했다. 이틀을 연달아 동료들과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실에 모였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활동가의 활동보조인 중 1명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센터 활동가 강석호(가명) 씨는 활동보조인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중증장애인이다. 석호 씨의 활동보조인은 감기 몸살 기운이 있다며 19일 하루를 쉬었다. 하필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다음 날이라 석호 씨는 혹시 모르니 진단검사도 받아보라고 권했다. 걱정하던 일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일 보조인은 전화를 걸어와 “시청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다고 자가격리를 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석호 씨는 앞이 깜깜해졌다. 보조인이 자가격리를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불안감을 느꼈다. 언어 장애가 있는 석호 씨는 보조인과 꽤 근접한 접촉을 해왔다. 전화 통화를 해야 할 때면, 석호 씨를 대신해 보조인이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주곤 했다. 컴퓨터로 해야 하는 문서 작업도 보조인이 해주기도 했다. 보조인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 석호 씨도 당연히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어쩌면 그도 확진될 수 있다. 그렇게 됐을 때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책은 들은 바가 없었다.

22일, 전근배 국장과 석호 씨를 비롯한 센터 직원 23명은 대책 논의를 위해 모였다. 검사 후 이틀째이니 진단검사 결과가 나올거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모인 이들은 오전 10시 30분경 보조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확진이라고 했다. 긴급하게 대구시에 사실을 알리고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98명. 2주간 직·간접적으로 확진된 보조인을 접촉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이었다. 이 중엔 장애인만 45명이 포함됐다. 전화로 관할 역학조사관에게 알렸다. “확진자와 같은 층에서 근무한 사람, 4시간 이상 장시간 방문한 사람, 함께 식사를 했거나 음식을 먹은 사람, 마스크 착용 여부도 확인해주세요” 얼굴도 보지 못한 역학조사관은 핸드폰 너머에서 이야기했다.

추리고, 추리고, 추린 인원은 29명. 전 국장의 연락을 받은 역학조사관은 “29명은 일단 자가격리에 들어가 주세요”라고 했다. 명령서는 추후에 발급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게 맞아요?” 전 국장은 불안했다. 역학조사 전문가가 아니라 그들이 추린 명단이기 때문이다. 역학조사관은 통화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빴다. 겨우 통화가 된 역학조사관은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더 있었다. 29명 중 13명이 생활 보조 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었다. 13명 중 8명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생활했다. 2주 동안 그들 혼자 자가격리를 하면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지만, 당국은 대책이 없었다. 기존 활동 보조인들에게 함께 자가격리 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전 국장은 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비장애인 자가격리 대상자 16명 중 일부가 장애인 자가격리자와 같은 공간에서 격리하기로 했다.

▲자가격리 중인 장애인을 방문한 모습 [사진=MBC뉴스 갈무리]
활동 보조 필요한 장애인 13명의 자가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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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팀장 김시형 씨를 비롯한 2명은 보조인 없이 홀로 격리에 들어갔다. 마땅한 동반 자가격리자도 없고, 이들의 주거 공간은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조건도 안 됐다. 전 국장이 일주일에 한 번 두 사람의 집을 찾아가 기본적인 도움을 주기로 했다. 대구시에 상황을 설명하고 대책을 제안했다. “그게 현재로선 최선이네요”라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8년째 자립 생활한 시형 팀장도 격리 생활은 벽이 높았다. 먹는 것도, 씻는 것도, 화장실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체온을 재는 것도 불가능했다. 구청이 보내온 생활 지원 키트에 포함된 체온계는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일정 시간 움직이지 않아야 체온 측정이 됐다. 지체장애가 있는 그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집 안에서 모든 이동은 기어야 가능했다. 발가락이 까지고 무릎은 붉게 달아올랐다.

구청의 지원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하루 두 번 전화 통화를 통해 기본적인 상태를 점검했다. 2주 사이 두 차례 생활물품도 지원했다. 그중에는 조리를 해야 먹을 수 있는 쌀과 야채도 포함됐다. “야채는 안 주셔도 되요” 시형 팀장은 이야기했지만, 전남 진도에서 역병에 고통 받는 대구를 지원한다며 보내온 봄동이 상하는 걸 하릴없이 지켜봐야 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코로나19는 새로운 공포를 이들에게 가져왔고, 정부에는 숙제를 남겼다.

사실 정부는 처음부터 장애인은 코로나19와 상관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1월 20일, 질병관리본부(질병관리청) 브리핑에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홀로 나섰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진 수어통역사가 배치된 것은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2월 4일부터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6명으로 늘어난 뒤다. 보건복지부는 21일에서야 감염병 상황에서 활동지원서비스 대응 지침을 일부 내놨지만, 현실과 괴리가 너무 컸다.

2월 28일에는 49살 발달장애인이 확진됐다. 그는 열감을 느끼고 찾아간 보건소에서 한 번 퇴짜를 맞았다. 보건소는 확진자와 접촉이 확인 안 된다는 이유로 그를 되돌려 보냈다. 불편을 호소하는 그 대신 장애인권단체가 끈질기게 진단검사를 요구했고, 그 결과 확진 판정이 나왔다. 이제는 입원 문제가 대두됐다. 28일 오전까지 대구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1,314명이었지만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는 환자가 680명으로 집계됐다. 27일에는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던 환자가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 역시 입원 병상이 나오기 전까지 집에서 격리해야 했다. 확진자 접촉으로 인한 자가격리 장애인 생활 보조 지원 대책도 부실한 상황에서, 확진 장애인 지원책은 말할 것도 없었다. 2월 29일 조민제 대구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은 “장애인 감염 시 대책이 없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던 차에 일어난 이 상황이 너무나 슬프고 힘들다”고 했고, 김재동 대구시 시민건강국장은 “지금 병원에서도 와상이나 거동 불편한 분들을 받아서 서비스할 수 있는 체계가 없다. 장애인단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1

대구시는 장애인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그를 우선 입원 대상자로 분류했고, 확진 후 24시간을 넘기지 않고 상주적십자병원에 입원 조치했다. 물론, 병원에서 생활 지원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장애인 확진자가 입원했을 때 매뉴얼이 없어요.” 전 국장은 당혹스러워하는 상주적십자병원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전 국장이라고 뾰족한 방안이 있을 리 없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9일 성명을 발표하고,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권영진 대구시장에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현재 발생한 장애인 확진자라도 긴급히 병원으로 후송하여 보호해 주시고, 정부와 지자체가 협의하여 장애인이 실제 보호받을 수 있는 자가격리 대책과 확진자 전담의료병원을 운영해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그렇게 2월이 지나갔다. (계속)

  1. 대구 탈시설 장애인 코로나19 확진···입원대기 지원 체계 부재, ‘20.02.29, <뉴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