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함에 대한 고민은 영역이나 집단을 가리지 않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생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운동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1980년대 학생운동 연장선에서 이어진 시민운동은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운동 1세대인 386세대는 기성세대가 되어왔고, 90년대생, 2000년대생이 몰려오는 오늘에 이르러서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은 어떻게 지속가능할까? 대구시민사회운동계에서도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 지역 22개 단체가 모인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와 대구시 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는 11일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한 2020 시민사회포럼을 개최했다. 포럼 주제는 <활동가, ‘우리’를 말하다 : 활동가, 연대운동 그리고 변화>로 했다. 12월 9일에는 공익활동지원센터와 (사)대구시민센터가 주관·주최하는 두 번째 포럼도 준비 중이다. <변화의 시절, 시민사회는 어떻게 소통하고 활동할 것인가?>가 주제다.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열린 첫 포럼의 첫 발제 키워드는 ‘해산’이다. 올해로 16년 차를 맞는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이야기다.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이 발제를 맡았고, 김예민 대구여성회 활동가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어진 두 번째 발제 키워드는 ‘정체성’이다.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이 발제를 맡고, 김은영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이 토론을 맡았다. <뉴스민>은 포럼 현장에서 확인된 대구시민사회운동계의 고민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해산을 제안합니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는 2005년 구성된 대구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다. 현재는 22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단체 면면도 보건, 복지, 권력 감시, 인권, 장애, 여성 등 시민사회운동의 대부분의 영역을 망라한다. 대구 지역 시민사회운동의 종합적 연대체로 볼 수 있다. 연대회의를 통해 지역 시민사회운동계는 영역을 넘어선 아젠다나 이슈에 함께 대응하고 고민했다. 특히 지난 2016년 겨울 박근혜 탄핵 촛불을 대구에서 준비하고 이끌어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곳도 연대회의다. 그런 조직을 해산하자는 주장이 공식적인 논의 테이블에 오른 것은 그만큼 상징성을 갖는다.
발제에 나선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은 자신과 연대회의에 인연을 이야기하며 운을 뗐다. 그는 2006년 7월 장애인지역공동체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 연대회의 존재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에서 시민운동이 존재하는지 대학생 땐 전혀 몰랐다”며 “2006년 시청 앞에서 43일간 농성하며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투쟁을 할 때 어렴풋이 지역 시민단체가 있다는 것 정도만 인식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때는 연대회의 소속 열성 활동가로 선배들의 부름에 달려갔고, 그 덕에 연대회의에서 주는 으뜸 활동가상도 받아봤다. 으쓱해 하기도 했다”며 “그런 제가 현재의 연대회의가 필요한가? 해산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건 이제는 역동성보다 어떻게든 버티는 조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민제 사무국장은 크게 두 가지를 연대회의 해산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근거로 꼽았다. 첫 번째는 연대회의가 독자젹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2000년대만 하더라도 일부 시민단체를 제외하면 신생 단체로서 역사가 길지 않았다. 각자가 성장하고 자리 잡는데 에너지가 필요했고, 각자의 역량을 모아 연대회의로 힘을 모아 공동 대응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요즘은 각 단체가 영역별로 상설연대체를 구성하고 이를 공고히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상설연대기구가 분야의 핵심 사안을 견인해나가고 있다”며 “한동안 의기소침했던 연대회의 정체성이 반짝 부각됐을 때를 기억해보면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집회가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저는 연대회의라는 조직이 특정 사건이 터질 때 반짝 역할을 하며 수명이 잠깐씩 연장되며 내리막길을 가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덧붙였다.
조 사무국장은 두 번째 이유론 연대회의가 매년 운영위원장 선출에 난항을 겪는 등 일을 할 수 있는 활동가 세대교체를 이뤄내지 못하는 한계를 짚었다. 그는 “연대회의를 열심히 할 때 하나의 재미로 작용한 건 2030 세대가 그래도 있긴 있네 하는 거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젠 선배들만 남았다”며 “새롭게 들어오는 활동가도 있지만 연대회의라는 조직이 매개가 되고 고민을 확장시켜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운영위원장 선출은 매년마다 연대회의 내부에서 부담스러운 논의로 다가오는 것 같다. 운영위원장을 매번 돌아가면서 했고 이제는 중복해서 하지 않는 이상 할 만한 분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연대회, 효용감 높이면 지속가능해
반면 토론에 나선 김예민 활동가는 연대회의 효용감을 높여서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는 “연대회의는 주로 사건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사건에 함께,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행동한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연대회의의 효용 가치이자 설립 목적”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렇지만 연대회의의 필요성을 그것에만 국한하면 굳이 연대회의라는 이름으로 모이지 않아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연대회의로 모인 다양한 단체가 서로의 역할을 확인하고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모아 경계를 아우르는 가치를 제시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연대회의는 사안에 대한 공동 대응을 넘어 장르를 넘나드는 가치를 생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것 아니냐 할 수 있다. 사안에 대응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모여야 하는 필요성과 당위성에 동의한다면 독자적인 사무국이나 집행위원장, 혹은 특정 집행단위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사실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는 왜 연대회의라는 이름으로 모여야 하고 그래서 왜 연대해야 하는지를 우리 모두 잠시 잊고 있거나 미뤄둔 것인지도 모른다”며 “예전엔 연대회의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며 놀기도 잘 놀고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나와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더 많은 가능성과 상상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