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청이 청소차 뒷발판을 모두 제거하라는 지침을 내리자 환경미화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6일 새벽 수성구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던 환경미화원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뒤 이런 조치가 내려진 것인데, 노동자들은 뒷발판 없이는 사실상 쓰레기 수거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12일 오전 대구지역 구·군청 환경미화원으로 구성된 지역연대노조는 수성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고로 근본적인 안전 대책과 문제 해결보다 우선 불법부착물인 발판만 제거하라고 한다”며 “저상차 교체 없이 발판만 제거하라는 것은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발판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저상차 도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환경미화원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발판을 이용했던 이유는 쓰레기 수거를 쉽고 빠르게 하기 위해서다. 쓰레기가 있는 곳마다 내려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는데, 높이가 높은 청소차에서 반복적으로 타고 내리면 그만큼 노동강도가 높아진다. 쓰레기가 있는 구간도 촘촘하게 배치되어서 타고 내리는 일이 잦은 탓도 있다.
김대천 지역연대노조 위원장은 “발판이 없으면 일을 못 한다. 쓰레기가 100m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고, 1~2m에 하나씩 있는데 계속 타고 내렸다 할 수가 없다”며 “그렇지 않으면 계속 걸어다녀야 한다는 건데, 수 킬로를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상차는 이른바 ‘한국형 청소차’로 지난 2018년 환경부가 환경미화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개발한 것이다. 청소차에 환경미화원이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360도 어라운드뷰 등도 가능하다.
환경미화원의 안전을 지키는 데는 저상차 도입으로도 한계가 있다. 이번 사고처럼 새벽에 쓰레기를 수거하러 내렸다가 음주운전 차량이 들이닥치면 환경미화원은 속수무책이다. 환경미화원 작업 시간을 야간에서 주간으로 전환하라는 환경부 지침이 있지만, 역시 지켜지지 않는다.
주간에 쓰레기를 수거하면 노상에 차량이 증가해 청소차 진입이 어렵고, 정해진 근무 시간 안에 쓰레기를 모두 수거하기 어렵다. 또, 공휴일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오전 11시에 문을 닫아 새벽에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이들은 용역업체와 오전 5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로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밤 10시께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노조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재 3인 1조 지침보다 더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수성구청은 내년도 원가 조사에 환경미화원 3인 1조 지침을 기준으로 반영하고 있다. 인력 기준은 지자체 조례로 예외규정을 둘 수 있다.
김대천 위원장은 “3인 1조도 발판이 있을 때나 가능한데, 그마저도 조례로 낮출 수 있다. 4인 1조는 돼야 발판 없이도 일할 수 있다”며 “문전 수거 인원이 더 투입돼서 큰 도로에 쓰레기를 한곳으로 모아주고, 상차원은 모인 쓰레기를 싣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성구청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현재 저상차 도입 요구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면서도 “인력 부분은 원가 조사를 통해서 하는 부분이라서 발판 제거와 연관이 없다. 발판 제거는 사고 이전부터 해왔던 부분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6일 새벽 3시 43분 수성구 범어동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던 환경미화원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