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구시민사회를 응원합니다] (22) 대구 안심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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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코로나19, 대구시민사회를 응원합니다’는 대구시민센터와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그리고 대구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공공영역에서 놓쳤거나 더 소외된 이웃을 도운 대구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번 인터뷰는 대구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의 김영숙 센터장이 진행했고, 대구시민센터의 박서영 인턴활동가가 인터뷰를 정리했다. (/끝)

Q. 대구안심마을공동체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안심마을사람들’은 대구시 동구 안심지역에서 자주적으로 활동하는 마을단체들이 모여서 인권·자치·협동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소속 단체들의 연대를 통하여 공동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더불어 지역과 사회가 당면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응하는 공공적·공익적 활동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2019년도에 창립한 안심지역 마을연대단체입니다. 인터뷰에는 6개 연대단체에서 조윤식(사회적협동조합 사람이야기), 김국향(사회복지법인 한사랑), 권현미(한사랑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류은경 (사회적협동조합 마을애), 박인규 (인권·자치·협동을 지향하는 안심마을사람들), 윤문주 (한사랑 어린이집) 씨가 참여했다.

Q. 코로나19로 인해 2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힘든 시기였습니다. 특히 대구·경북에서 많이 힘든 시기였는데, 대구안심마을공동체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2월 18일 확진자가 처음 나오던 날을 날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혁신도시에서 운영하는 2개의 카페(교육학술정보원, 중앙교육원수원 내)에서 마스크를 쓰지는 않고 있었거든요. 그날 처음으로 마스크를 구매하고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쓰게 했습니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근무하는 공기업 직원의 부인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그분이 카페를 다녀간 적이 있어 3주간 카페를 폐쇄하면서 이 사태를 피부로 실감했습니다. 3주 후 문을 다시 열었는데, 매출액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두 번째 카페가 있던 중앙교육연수원이 경증환자 생활치료시설이 되면서, 4월 말일까지 영업점이 폐쇄되었고 5월 11일에 영업재개를 했는데, 매출이 없어 아주 난감한 상황입니다. 중앙교육연수원은 대구시에서 운영하는 시설임에도, 대구시에는 어떤 지원도 없고 대책이 없어 속상하기도 했고,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봤지만 막막한 현실입니다.

2월의 마을 분위기를 살펴보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은 완전히 거의 폭탄 같은 상황으로 변했습니다. 대부분 영업을 중단했고 동네 커뮤니티공간도 모두 멈추었습니다. 2월 말부터 3월까지를 떠올려 보면 무기력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컸습니다. 동네 기타 동아리활동 등을 거의 4주 넘게 쉬고 5월 중순쯤 되어도 마을의 전체 총회는 올스톱되니 올해는 거의 온라인 총회, 서면 총회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3월 중순에는 문화예술활동 단체 행사가 다 없어지고, 학교로 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도 모두 중단되었습니다. 집단적으로 하는 행사를 나가야 먹고 사는데 말이죠.

그 와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대형마트가 타격을 받았는데, 오히려 동네에는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곳이 등장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마을기업 ‘달밤’에서는 도시락을 시켜먹고, ‘책방아이’에서 책을 사가고, 채소, 과일류를 파는 ‘땅 이야기’ 등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생활 가까이에 있으니 자주 이용을 하게 되면서 로컬 푸드 매장들은 급격히 매출이 다운되지는 않더라고요. 2~3월은 흔히 비수기 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매출은 늘기도 하고 말이죠. ‘아띠 도서관’은 두 달 동안 문을 닫았고, 마을학교 ‘둥지’는 5월 중순부터 아동들이 오기 시작해서 야외 수업만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한사랑’은 장애인 당사자 이용서비스 기관들은 부모들이 안 보내니 안 오고 평소 호흡기 질환 등 지병이 있는 분들은 직장을 못 나가는 등 갖가지 상황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꼭 정리되었으면 하는데, 당사자가 자기의지로 사회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모습, 자립을 위해 자기결정과 자기의지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당시에 보여주었습니다.

Q. 한사랑의 경우 복지법인으로 발달장애인 당사자조직, 어린이집이 있었는데, 시설은 어떻게 운영했나요?

모든 시설은 모두 폐쇄되었습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체온계, 소독제는 지급되었는데요. 서비스 기관은 거의 지원 등이 없어 행정이나 보건소 등을 통해서 직접 알아보고 지급을 겨우 받았습니다. 우리가 일일이 전화를 하고 요청을 하고 찾아야 했습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코로나 상황이 되자 지원받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발달지원센터 사업을 하려는 와중에 마스크, 열 체크 등이 필요했지만 물품과 서비스 제공이 없었고, 마스크 수급이 안 되어 대구시에 요청했는데 안 되었습니다. 보건소에도 연락을 했는데 대구시청 주무관을 통해서 연락이 와서 보건소 통해 받아 오라고 해서 대구보건소에 가서 직접 마스크 등을 수급해 왔습니다. 전화로 마스크 등이 있는지 물어보면 마스크는 없고 손소독제만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원센터가 사업을 막 시작하는 시점에 코로나19가 터져서 사업이 모두 중단되니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코로나19로 소외되고 있다고 현장에서 느꼈고, 마을 안에서도 소외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직접 마스크를 제작하고 나누면서 더욱 그러한 현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설에서 이용하시는 분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 지원센터도 사업을 진행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장애아동을 치료, 교육하는 기관은 대상이 장애아동이다 보니 개인위생이라든지 마스크 등 수급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급이 기관으로는 전혀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2월 중에 2주 정도는 기관을 잠시 닫았었다가, 3월 중순쯤에는 40% 정도의 교육생이 왔었습니다. 지금은 또 학교개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아동 수에 비해 50% 정도 감소했습니다. 현재도 운영 중이나 앞날을 준비를 해야 하고 추후 위생관리 등을 특별히 신경을 써야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학원도 아니고 복지시설이 아니라서 대구시에서 지원하는 지원의 지원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비영리조직 성격이다 보니 소상공인 등 각종 지원에서 제외되는 업종이고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Q. 안심은 사실 코로나19 시기에 마을공동체가 가장 먼저 나서서 자발적인 활동을 기획해서 아주 감동이었는데, 이런 활동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 어땠나요?

코로나19 상황이 생기고 다 같이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참여하면서 힘이 났습니다. 안심마을은 그렇잖아요. 누군가가 훅 던지면 하고 싶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오잖아요. 우리도 당시에는 애들도 안 오는데, 그냥 무료하게 보내기보다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까? 라는 생각으로 함께 했고 뭔가라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저 좋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극심한 스트레스로 걱정이 더 많이 생기고요.

Q. 안심에서 있었던 활동을 시간대별로 나열해 본다면?

2월 18일 첫 확진자가 나왔던 주간에는 그냥 지나가고, 이후 일요일에 대구에 있는 이종일 선생이 마스크를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저희가 구경하러 갔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네”하고 카톡방에 박인규님이 훅 제안하니,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습니다. 디자인과 도안도 받아오고 재료 사는 곳도 알아보고 왔습니다. 2월 25일 월요일부터 서문시장 가서 재료 사오고, 대구지역 탈시설에서 생활하는 IH센터 등 발달장애인에게 주자고 각 1인당 3개씩 400개를 목표로 제작하여 나누자고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재료를 사 오는 날, 바로 서문시장 재료 가게도 모두 폐쇄되었습니다. 그날 재료를 바로 사지 않았으면 마스크는 제작하지 못할 뻔한 거지요. 2차 마스크 제작을 할 때쯤도 2주 정도 지나서 다시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재료를 샀어요.

그리고 바로 마을에 ’재봉틀을 구하자‘고 통신망에 올리자 금세 5대가 구해졌고 당시 재봉을 배우면서 동네사람들, 어린이집 선생님, 새로운 동네 주민도 자원봉사를 하러 하루씩 오시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마스크 도안을 자폐성 발달장애인이 직접 도안에 참여하여 그렸는데 빈틈 하나 없이 꽉 채워서 500개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재단팀, 디자인팀, 실밥 뜯는 팀 등으로 나누어져서 공장처럼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2월 25일부터 시작해서 4일 만에 400개 마스크를 다 만들어 나누고, 2차로 추가로 만들어 500개 이상 제작하여 배포하였습니다.

남은 마스크를 100개를 쪽방에 가져다주러 갔다가 3주 정도 화요일, 목요일마다, 쪽방에 물품을 나누는 자원봉사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동네사람이 함께 가서 물품을 포장하고, 거리에 가서 나누었습니다. 마을에서 한번 갈 때 5~10여 명이 가서 계속 작업에 함께 했고, 3번 이상은 발달장애 당사자들이 현장에 직접 가서 작업을 도왔습니다.

3주간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에 또다시 마을주민들이 중앙교육연수원 경증치료센터를 지원하자는 제안이 나와서, 동네 모금을 해서 초기 50만 원을 모았습니다. 현수막을 만들어 ’힘내세요‘라는 문구를 붙이고 현장에 있는 행정팀에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으니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해서, 치료센터에 드립커피를 나누자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드립커피 업체인 ’오월의 커피‘도 직접 후원해서 1,000개를 동네 사람들과 같이 만들어서 보내고, 이후 두 번째로 전국 모금액으로 1,000개를 현장 지원했습니다.

Q. 타지역에서 나눔의 손길도 많이 있었습니다. 후원물품이나 후원금 등 나눔의 손길이 어느 정도 있었나요? 그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나요?

2차로 마스크를 만들어서 나누자고 준비하고 있을 때, 전남의 여러 지역 마을공동체에서 각자 특산품 등을 만들어 보내온 <행복상자> 물품 꾸러미 120박스가 5톤 트럭에 실려서 안심마을로 왔습니다. 또 마침 ’김제동과 친구들‘에서 후원한 화분도 120개가 마련되었고, 한사랑에서 준비한 마스크와 몇 가지 구호물품 등을 합쳐서 제법 풍성한 후원물품 꾸러미가 만들어졌어요. 이 꾸러미는 대구발달장애인연대 당사자 회원들과 한사랑 직원들, 마을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안심지역에 거주하는 독거 발달장애인 가구 80여 곳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전달하였습니다. 40개의 꾸러미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지원이 필요한 다문화가정에 전달하였습니다.

전남지역에서는 이후에도 2차례 더 후원물품이 왔습니다. 신안에서 보내온 튤립을 온 마을에 배포하기도 했고 송편도 한 차례 와서 지역에 같이 나누기도 했습니다. 또 한사랑 어린이집의 부모님 한 분의 소개로, 한 인터넷 동호회에서 전국의 회원들이 십시일반 만들어서 보내준 수제 천 마스크 2,000개 정도를 안심마을로 보내왔습니다. 이 마스크도 끈을 달고 낱개로 개별 포장하는 작업을 진행해서 쪽방상담소에 750개 정도를 후원하고 나머지는 성서와 경북의 이주노동자단체 등에 후원물품으로 전달했습니다.

Q.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거나 애틋한 사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신안에서 온 꽃 같은 경우는 무작위로 로컬 푸드 가게를 통해서 마을주민들에게 나누었는데 너무들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전남에서 주민들이 대구 주민을 생각해서 꽃을 멀리서 나누었다고 생각하니, 사람들이 물품보다도 집에 온 꽃을 보면서 너무 고마워하고 감성적으로 위로가 많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물품 꾸러미도 종류가 다양하고 공동체가 직접 나누니 사람들이 반응이 좋았습니다. 물품을 나누고 1~2주일 뒤에 어르신이 전화 와서 ‘우리 딸이 장애인인데 물품이 와서 보니 전라도에서 직접 만들어서 다양하게 보냈더라. 이런 물품을 대구까지 보내니 고맙다’하는 인사를 전해주셨습니다.

물품을 통해 마을에서 사시는 분들과 직접적인 교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추가로 나눔 물품이 있어 6단지에 사시는 주민들 중에 장애인과 노모가 계신 가정에 방문했는데, 물품 꾸러미를 보면 편지도 쓰여 있고 직접 만들어서 주는 정성이 들어가 있으니 받으시는 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성보재활원이란 시설을 퇴소해서 나와 자립하고 계시는 청년 장애인 한 분이 예전에 있었던 시설 사회복지사한테 자기가 받았던 물품 꾸러미 사진을 보냈는데요. 사회복지가가 저희한테 전화를 했어요. 동네 사람들이 챙겨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교회 한 곳에도 연락이 왔는데, 교회 신도가 물품을 받고 교회 와서 자랑을 했나 봐요. 목사님이 고맙다고 인사를 주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힘들 때, 타 지역에 있는 단체들과도 연결되는 것이 좋더라고요. 특히 대구쪽방상담소 등의 단체들과 관계가 끈끈해져서 서로 술 한잔하면서 서구- 동구 공동체가 교류하는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차후에도 뭔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요. 또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쪽방에 가서 자원봉사를 많이 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많이 주고받았고 서로 교감과 감동을 주고, 서로 친해지는 과정이 생겼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Q. 재난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취약계층 어려움은 더 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재난상황을 대비하여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가 있을까요?

현장에서 생활 물품 꾸러미 전달을 하면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독거 장애인이 안심 1·2동은 80가구, 3·4동에는 40가구가 있었는데, 안심1·2동의 행정팀에서는 80가구에 직접 전화도 다 돌려서 안내해 주시고 많이 협조해주셨어요. 그런데, 안심 3·4동 행정은 개인정보를 제공하기 힘들다고 주지 않고, 그럼 물품을 드릴 테니, 행정팀에서 직접 독거 장애인에게 배달해달라고 요청하니 협조가 잘 안 되었습니다. 몇 번을 요청했는데 거부하셨어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사자 주민들한테 가는 것인데 말이에요. 뭐 때문에 그런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됩니다. 요즘은 협치 거버넌스 등을 이야기하는데 위기시기에 행정이 오히려 거부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는 위기시기에 주민들의 입장에서 어떤 일이 필요한지 주도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행정 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어떤 일이 생길 것이라는 염려 속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발생시켰습니다. 결국 안심 3·4동 물품 꾸러미는 다문화 지원센터 회원들 중에 40가구에 물품으로 지원되었습니다.

물품 꾸러미를 만들어 배달하면서 느낀 것은 행정이 최소한으로 민간이 하는 일을 연결만 하더라도 마을공동체가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마음을 내는데, 우리가 동네에 누가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초기에 행정의 도움을 받아서 시작을 할 수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동네에서 서비스를 받아야 할 장애인 당사자를 발굴하는 계기로 이어질 것이고, 차후에 어떤 지원이 가능할 것인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꽃 배달을 하면서 직접 봤는데, 정말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동네에서 살고 계시고 상황도 안 좋더라고요. 안심1동에 많은 장애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더 많은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서비스를 더 받아야 할 분들이기도 할 텐데, 정부에서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커뮤니티 정책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 안에 살고 있지만, 커뮤니티가 안 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겨우 행정의 서류 안에 가지고 있는 연락처로 관리되는 대상일 뿐입니다. 행정에서는 외부에서 물품이 들어오면, 바로 복지관에 줘 버리면 끝이거든요.

지역에서 복지관이 지역복지를 제공하는 최전선인데 문을 다 닫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모든 서비스 기관이 문을 닫으면 지역복지라는 측면이 전혀 가동이 되지 않게 됩니다. 정말 지역복지체계가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서이긴 하지만, 지역복지서비스를 받아야 되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복지관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럼 누가 지역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비유가 이상하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인 상황에서 ’굶어 죽으면 내 책임이 아닌데, 코로나 걸려 죽으면 모두 다 곤란해지는 상황’이 되는, 모두의 사고가 마비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행정도 이러한 광범위한 전염병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직접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계속 밑에 있는 현장에 ‘상황보고 하라’, ‘일보 써내라’고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일보를 써내면 ‘집에 있음, 집에 있음, 문자 보냈음’ 등 계속 같은 상황만 보고하게 됩니다. 이번에 소상공인 지원이나, 교육서비스 업체의 지원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지원 기준이 굉장히 제한적이었고, 적극적으로 알려주지도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행정이 지원하는 모든 단체는 올스톱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긴급하게 움직여야 할 시기에, 소위 세금을 줘서 움직이는 조직은 손발이 묶이고, 공직 지원을 받지 않는 단체들이 가게 문 닫고, 직장이 폐쇄되니 오히려 민간단체와 일반 시민들이 마을에 모여서 그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나아지고, 좀 더 협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이런 재난이 또 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재난상황에 대비하는 대구시민사회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상의 거버넌스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을공동체가 스스로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여 역량을 키우도록 준비하는 네트워크가 영남지역에서는 전혀 없습니다. 행정에서 이 모든 영역을 ‘정치’로 환원시켜서만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민·관 거버넌스활동을 매개하는 행정의 역량이 지금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이번에 물품 꾸러미를 나눌 때 적극적으로 협력해주었던 안심1·2동 같은 행정은 상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일 년에 두 번만 안심1동 행정과 면담을 하거나 협력하면, 동네에서 민관협력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이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이죠.

이번에 느낀 게, 소상공인 지원제도는 많잖아요. 첫 번째는 인원수로 4인 이하(음식점), 10인 이하(제조업) 등 규모인데, 업체의 규모나 매출에 따른 조건이 아니고 인원수에 따라 적용되니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업체가 직원 3명이 월급 500만 원을 가져가는 구조라도 소상공인에 들어가는 거죠. 그다음에 매출이 연 10억 이하인데, 10명이 일을 하는데 50만 원씩 월급을 가져가면 이건 소상공인이 아니고 중개업인 거예요. 실질적인 지원을 하려면, 소상공인 기준을 매출규모로 얼마 이하라든지, 특수한 상황에서는 지원체계를 바꾸어야 하는데, 이번에 저희는 뭘 지원해도 다 안 되는 거예요.

교육 서비스 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원내용이 있더라도 전화가 안 되거나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제한적입니다. 우리는 바우처 사업을 하는 곳인데 바우처는 공적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서 지원에서 제외되는 업체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아예 서비스 제공을 미루고 있었는데, 완전히 문을 닫아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특수업종으로 학원도 아닌 바우처 기관이다 보니, 구청에서 점검을 받는데, 사업에 대한 지원은 따로 없다. “기관별로 손 소독제 1병 받아 가세요”가 끝이었다. 특히, 바우처 기관은 교육청과도 연관이 있으니 교육청에 여러 가지 불만도 많이 쏟아졌는데, 어떠한 지원에 관한 안내조치도 없이, ‘문 닫았나? 안 닫았나?’정도로 주기적으로 전화해서 관리만 하려고 했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하지 않더라고요.

정책이라는 것이 시민이 일상적 상황일 때는 잘 모르다가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그렇다면, 뭘 해봐라 정도가 아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이 알아서 찾아봐야 하다 보니 평소 아는 사람은 잘 찾아가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이번에 이런 일을 겪으면서, 동네 안에 이런 일을 설명하는 해설사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이런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행정기관에 요구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기관을 운영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행정하고 처리하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민관협력이 우리와 다른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참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를 생각하면, 지금은 끝나고 더 괴로운 상태입니다. 두 달은 어떻게 흘렀는데, 지금은 심리적인 고통이나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고, 언제 끝날지 모르니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개인자영업자는 지원하는데, 사회적 협동조합들은 안 된다고 하니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