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2019년)>은 웅장한 영웅의 서사나 장렬한 성장담이 아니다. 비참한 회고(回顧)다. 비정한 범죄 세계에서 끝내 살아남은 이는 행복할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무겁다. 그리고 묻는다. 무엇을 위해 친구와 동료를 배신하고 수많은 이를 해쳤냐고. 영화는 20세기 미국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알려진 ‘지미 호파 실종’을 소재로 한다. 미국 델라웨어주 전직 수사관이자 작가인 찰스 브랜트의 논픽션 <당신이 페인트공이라고 하던데(I heard you paint houses, 2004년)>가 원작이다. 페인트공은 벽에 붉은 피를 흩뿌리는 청부살인업자를 뜻하는 마피아의 은어다.
지미 호파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미 트럭운수노동조합(팀스터) 위원장이었다. 그는 1975년 7월 30일 오후 디트로이트 외곽 블룸필드힐스의 한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실종됐다. 뉴욕 마피아였던 앤서니 프로벤자노와 디트로이트 마피아인 앤서니 자칼로네를 만날 예정이었다. 아직도 그의 사체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사건의 실체도 밝혀지지 않았다. 법원은 1982년 지미의 사망을 선고했다. 그가 활동한 1930년대 후반 무렵의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흔들렸고, 노동자의 처우는 열악했다. 뛰어난 언변과 협상력을 가진 지미는 노동자들의 우상이 된다. 그는 조합 이익을 위해서라면 협박이나 폭력도 서슴지 않았고, 마피아와도 거래했다.
영화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청부살인업자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의 시점에서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재구성한다. 그는 실존인물(1920~2003)이다. 이야기는 요양원에서 지내는 80대 노인 그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프랭크는 1975년 마피아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길을 떠난다. 제2차 세계대전 퇴역군인인 프랭크는 1950년대 트럭 운전사로 일하다가 운반하던 고기를 빼돌린다. 이 일로 고소를 당하고 필라델피아의 마피아 러셀의 도움을 받은 것을 계기로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입이 무겁고 시키는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프랭크는 마피아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된다.
어느 날 러셀은 프랭크에게 지미를 소개하고 프랭크는 지미를 돕고 지미는 프랭크가 노조 간부가 되도록 돕는다. 반면에 가족과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막내딸 페기(안나 파퀸)는 아버지와 의절한다. 마피아 조직에서 신임을 얻게 된 프랭크는 장년에 들어 위기를 겪게 된다. 러셀과 지미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우정과 배신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러셀은 프랭크에게 지미의 살해를 명령하고 프랭크는 지미를 살해한다. 프랭크가 자신을 믿고 의지하던 친구를 죽인 날, 자신이 애정을 쏟았던 딸도 그의 곁을 떠난다.
죽고 죽이는 삶의 말로는 허망하다. 복잡한 동기가 한데 뒤엉켜 온갖 범죄를 저지르던 마피아들은 모두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피로 물든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의 끝에서 당연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결과다. 유일하게 생존한 프랭크는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은 말년을 보낸다. 범죄 집단의 충직한 하수인으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던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까? 영화는 노인이 된 프랭크를 한참 동안 묘사한다. 종교에 귀의한 그는 뒤늦게 딸을 찾는다. 그리고 말한다. “다 너희를 위해서였다.”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온 프랭크의 입장에서 자식들은 자기처럼 고생 안하고 순탄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총을 들었고 그 덕분에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일굴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페기는 아버지가 잡화점 주인의 손을 짓이긴 이후 아버지가 두려워졌고, 그런 아버지가 새벽 일찍 집을 나갈 땐 공포가 엄습한다. 다음날 늘 뉴스에서 살인사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페기는 무서운 아버지의 친구들 중 유일하게 지미에게 살갑게 대한다. 노동운동가는 범죄와 거리가 멀 것이라고 믿어서다.
그가 만든 성공은 친구, 가족, 사랑, 우정, 믿음 모든 것을 다 잃고 자신이 죽어 들어갈 고급 관을 고를 재정적 여유만 남긴다.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프랭크는 누가 찾아올까봐 문을 열어둔 채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영화는 초로의 노인에게 일말의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프랭크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가 정당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랭크의 삶은 묘하게 다가온다. 한국 현대사의 모양새가 닮아서일까. 프랭크의 일대기를 보면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쥔 뒤 학살을 벌이고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말년의 노인이 떠오른다.
<아이리시맨>은 드라마와 액션이 없다. 으레 기대하는 극적 반전도 없다. 209분 러닝타임에서 이따금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에 다다를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서사의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