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 ‘20.10.26 17시 30분
역사관 측에서 게시물 감수를 한 위원회 구성이 사학과 교수가 아니라 역사학 전공자라고 26일 다시 설명해 와 기사를 수정합니다.
경북대학교 역사관이 5·16군사정변을 5·16’혁명’으로 표기해 논란이다. 역사관 측은 5·16군사정변을 당대에는 혁명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당대의 표현을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국립대 교육기관으로서 일반 상식을 벗어난 표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5·16군사정변을 5·16혁명이라고 적은 문구는 경북대학교 역사관의 1970년대를 설명한 게시물에 나온다. 게시물에는 70년대 당시 대학 상황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당대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해당 문구의 영문 번역에도 5·16은 ‘revolution’으로 표기됐다.
“1960~70년대는 민주주의가 혁명과 격동의 과정을 겪으면서 자율적 민족역량을 함양하던 시기이다. 4·19의거, 5·16혁명, 한일회담이 계기가 된 6·3사태 등 새로운 정치 문제에 대한 대학의 민주화 요구는 계엄령, 휴교령 등으로 대체되면서 1971년 12월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될 때까지 되풀이되었다. 1974년 여정남(정치외교학과 62)은 유신헌법 반대로 이듬해 사형이 집행되었다. 우리 대학은 규제와 자유와의 갈등 속에서도 이 시기를 대학교육의 쇄신과 질적 향상을 위한 내실외전의 계기로 삼았다.”
경북대학교 역사관 측은 ‘혁명’이 당대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당대적 표현을 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북대학교 역사관에 따르면 ‘5·16혁명’ 표기는 역사관 설립 과정에서 역사학 전공자 3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검토를 거쳤다. 경북대학교 역사관은 경북대학교 박물관 내부에 지난 6월 개설했다.
김유경 경북대학교 박물관장은 “명칭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명칭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혁명’은 당대적인 표현이고 당대인들이 어떻게 얘기했는지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학에서 만든 기념관으로서 교육적 요소를 고려했을 때 현대인이 보는 가치 평가적 기술을 삼가기로 했다. 혁명이라 불러도 좋고 쿠데타라고 해도 좋다. 그 사태가 한국사에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대에 5·16을 ‘혁명’이라고 부르고 전두환, 노태우 정부 아래 역사 교과서에도 5·16을 ‘혁명’이라고 미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1996년 제6차 교육과정부터 교과서에는 5·16은 ‘군사정변’으로 굳어졌다. 또한 2011년 국민보도연맹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판결에서 대법원은 5·16을 ‘쿠데타’라고 판시하기도 했다.
군사정변을 혁명이라고 적는 건 사실관계부터 잘못됐으며, 국립 교육기관으로서도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논리라면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적겠느냐는 물음도 제기된다.
또한 5·16 ‘혁명’ 게시물이 여정남 열사 관련 전시품 바로 옆에 게시된 것도 비판받고 있다. 여정남 열사는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으로서 박정희 정부 시절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선고 다음 날 사형집행까지 당했다.
채장수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16이 쿠데타인 건 반론의 여지가 없다. 혁명이란 건 특정 정치 세력의 주장인데 공적 게시물에 별다른 설명 없이 혁명이라고 쓴 건 이론적으로도 상식적 관점에서도 옳지 않다”고 짚었다.
채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통치가 가장 극단적이던 유신시대에 경북대 학생인 여정남 열사가 사법살인을 당했다. 경북대가 평가나 판단 없이 단순히 과거에 이런 일도 있었고 저런 일도 있었다면서 전시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가. 역사에도 정의라는 게 있고 명분이 있다”며 “(쿠데타까지 혁명으로 미화하는 건)박정희를 무결점의 신으로 받드는 신학이자 종교다. 쿠데타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는 팩트의 문제”고 지적했다.
오택진 여정남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은 “당대 표현이 그렇다고 한다면 5·18에 대해서는 폭동이라고 쓸 건가. 제주4·3은 반란이라고 쓸 건가. 잘못된 표현에 대한 구차한 변명밖에 안 된다”며 “역사 전공자로서 할 말이 아니다. ‘혁명’이란 표현이 가진 의미를 정말로 모르나. 지금도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정남 선배처럼 사법살인을 당한 유가족과 피해자 입장에서는 5·16은 쿠데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꼬집었다.
‘혁명’ 표기를 수정할 의사가 있느냐는 물음에 김유경 경북대 박물관장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를 보는 눈도 달라진다. 우리 시대 감각에 맞추는 게 좋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