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 당장 경북 경산에서 40도 고열과 호흡 곤란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발생한다면, 이 환자는 어디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답은 ‘글쎄’다. 동네 병·의원에선 코로나19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국민안심병원이나 감염병전담병원으로 가라고 할 것이다. 경산에 두 곳 있는 국민안심병원을 가면 별도 마련된 외래 진료 공간에서 간단한 처방을 받고 퇴원 조치된다. 선별진료소를 통해 코로나19 진단검사는 진행되겠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 환자는 집에서 대기하거나, 자동차로 최소 1시간 거리에 있는 경북 감염병 전담병원이나 대구의 대형병원으로 가야 한다.
지난 3월 급성 폐렴 증세로 숨진 정유엽(17세) 씨 사례가 바로 이랬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났지만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 다시 경산에서 정 씨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한다면, 그가 정 씨와 달리 성공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4일 오후 경산농업인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의료공백으로 인한 정유엽 사망사건 진상규명·재발방지를 위한 토론회’에선 여전한 지역의 의료공백 상황이 확인됐다.
“지금 정유엽 사례가 발생한다면, 경산에서 갈 수 있는 병원은 없는 건지, 그렇다면 대책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안경숙 경산시 보건소장은 간단한 질문에 장황한 답변을 이어갔다. 안 소장은 “지난번에 유엽이 아버님도 저한테 물으셨다. 제 딸이 만약 그러면 어떡할 거냐. 지금, 그때 상황이었다면 유엽이 경우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진상조사를 떠나서 (사건을 정리하면) 유엽이가 아팠는데, 코로나가 아니었고 병원에 입원하지 못한 것, 이렇게 단순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차 “그러니, 지금은 없다는 말씀이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안 소장은 “대구의 동산병원이나 경북대병원 수준이 없다. 그래도 경산은 좋은 조건이다. 응급상황이 생겨도 중앙병원에 가라, 세명병원에 가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지만, 경북 북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이 없다”며 “의료가 이렇게 취중되어 있다. 대구시 중심, 아니면 서울 지역으로. 그러다 보니 전국적으로 국가가 거시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경산은 경북 다른 시·군에 비해 조건이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명확하지 않은 답변이 다시 이어졌고, “없다는 말씀이죠?”라는 물음도 재차 나왔다. 그제야 안 소장은 “지금도 코로나19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입원 못한다”고 말했다. 진단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6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환자는 의료공백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의미다. 국가지정안심병원이 있지만, 코로나19 의심 환자도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B 유형 병원은 경산에 없다. 대구와 경북 통틀어도 3곳뿐이다.
정유엽 사망사건 진상규명, 재발방지 토론회 열려
국민안심병원인데도 왜 입원 치료 못 받나?
선별진료소는 왜 24시간 운영 안 하나?
‘코로나19 의료공백으로 인한 정유엽 사망 대책위원회(정유엽대책위)’는 7월부터 경산시 보건소 측 협조를 통해 진행한 의료공백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권정훈 대책위 집행위원장,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의 발제와 안경숙 경산시 보건소장,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 토론 순으로 이어졌다.
권정훈 집행위원장은 정 씨 사망 당시 공백으로 확인된 다섯 가지 의문을 제시했다. 권 위원장이 제시한 다섯 가지 의문은 ▲경산 선별진료소는 왜 24시간 운영하지 않는가 ▲국민안심병원에서도 왜 코로나19 의심 호흡기 환자는 진료를 받을 수 없는가 ▲콜센터는 제대로 운영되는 것인가 ▲왜 정 씨에게 구급차는 제공되지 않았나 ▲코로나19 검사 소요 시간은 너무 긴 것이 아닌가 등이다.
패널 토론에 나선 최규진 인의협 인권위원장(인하대 교수)은 이 중에서도 24시간 선별진료소 미운영, 국민안심병원의 응급 대응 실패가 정 씨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정 씨는 3월 12일 저녁 7시를 조금 넘겨 국민안심병원이면서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경산중앙병원을 찾아갔지만, 선별진료소 운영은 종료됐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항생제와 해열제만 처방받아 귀가했다.
대책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앙병원은 2월 24일까지 24시간 선별진료소를 운영했지만, 29일부터는 저녁 6시까지만 운영하기 시작했다. 정 씨가 저녁 7시 무렵에 중앙병원을 찾았기 때문에 선별진료소 운영은 종료한 상태였다. 다만, 2km 떨어진 세명병원이 저녁 8시까지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병원은 별도 안내를 하지 않고 귀가 조치하면서 다음날 다시 찾아오라고만 했다.
최 위원장은 “경산중앙병원은 당시 고열이라는 걸 안 이상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선별진료소라도 안내했어야 했다. 세명병원을 안내하거나 최소한 응급실은 선제적으로 격리해서 입원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했다. 이때 한 번 정유엽 군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정 씨는 다음 날 오전 다시 중앙병원을 찾아 진단검사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병원은 정 씨를 병원으로 들이지 않았다. 정 씨의 어머니 이지연 씨는 “열을 내리기 위해 링거라도 놓아줄 것을 요구했더니 병원 안에서는 안 된다 했고, 차 안에서라도 맞을 수 있도록 부탁해 맞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렇게 차 안에서 링거를 맞고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병원 측은 이날 오후에서야 재차 확인 전화를 한 정 씨 부모에게 심각할 수 있으니 영남대의료원으로 가라고 했다. 이후 과정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정 씨는 영남대의료원에서만 13차례 진단검사를 했고, 사망했다. 방역당국은 정 씨 사후에서야 정 씨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게 아니라고 확정했다.
최 위원장은 정 씨 사례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허점을 꼬집었다. 그는 “국가지정안심병원이 열나는 호흡기 환자를 진료조차 제대로 않고, 앰뷸런스조차 제공 안 하면 지역민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며 “정유엽 사례는 1339와 보건소의 지역의료 파악 수준 문제에서부터 안심병원 문제, 선별진료소 운영의 문제, 민간병원의 방어적 행태 문제 등 코로나19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이 망라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