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감염병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신종 감염병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내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사회의 아픔도 그대로 드러냈다.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1차 대유행이 할퀴고 지나간 대구는 극심한 감염병으로 직접적인 피해만큼 사회과 품은 또 다른 아픔도 명징하게 드러냈다. <뉴스민>은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기획을 통해 이주민과 난민, 학생과 교사,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통해 감염병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아픔을 짚고, 감염병에 대응하는 공공의료체계의 현실도 짚어보고자 한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 라울은 왜 인도로 돌아갔을까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2) 우디트는 ‘성실 근로자’로 재입국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3) 훌란은 3월에 넷째를 낳았고, 열흘 만에 참외를 땄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4) 감염병의 시대, 이주민을 위한 국가는 없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살아남았나(합본)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5) ‘특수근로형태근로종사자’로 살아남기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6) 이름만큼 어려운 ‘특고 지원금’ 받기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7) 나만 없는 고용보험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특수근로형태근로종사자, 지원금 그리고 고용보험(합본)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8) 무너지는 신화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9) K방역 밖에 선 사람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0) 방역마저 자급자족해야 하는 사람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1) K방역도 메우지 못하는 공백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2) K방역은 ‘성공’했다지만, 같은 문제는 반복된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성공한’ K방역, 그 밖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합본)
오늘은 국밥집 아르바이트다. 내일은 또 어느 식당에서 일할지 모르겠다. 일할 곳이라도 뜨면 다행이다. 장정연(38) 씨는 지난 2월부터 일당 알바를 시작했다. ‘일당 어플’을 확인하면서 내일 할 일을 찾는다. 평소 택배 알바를 했는데 2월 18일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터지면서, 일당 모집이 없어졌다.
오늘 밤까지도 내일 일정을 알 수가 없는 탓에 약속은 몇 번이나 미뤄졌다. 결국 정연 씨가 일하는 달서구 상인동 한 국밥집에서 잠깐 만날 수 있었다. 10분 남짓 얘기하는 동안에도 정연 씨는 서빙, 계산, 테이블 정리까지 손님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2월은 ‘보릿고개’다. 2월 말까지 수업을 하는 학교가 잘 없다. 수업이 있다 하더라도 겨울방학 기간과 겹쳐 수강 신청 인원이 많지 않다. 보릿고개를 버티는 와중에 신천지 대구교회 사태가 터졌다. 3월 2일 개학이 일주일 미뤄졌다. 정연 씨는 방과 후 학교 수업을 하면서도 부족한 생활비를 채우기 위해 단기 알바를 하곤 했다. 개학이 기약 없이 미뤄진 데다 평소 하던 택배 일자리도 없어졌다. 결국 일당 어플을 깔고, 하루하루 일당 알바를 찾았다.
일주일만 더 조심하면 되겠지. 일주일만 더. 일주일만 더. 개학 연기 문자는 주 단위로 날아왔다. 4차례에 걸쳐 등교 개학 연기 결정 끝에 교육부는 온라인 개학을 결정했다. 학생들은 원격 수업을 시작했고, 교사들은 학교에 출근해서 원격 수업을 준비했다. 학교는 긴급 돌봄 교실만 겨우 문을 열었다. 정상 등교와 정상 수업은 기약이 없었다. 방과후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정연 씨도 연초에 한 학교와 계약을 맺었다.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일당 알바는 언제라도 수업을 나갈 준비이기도 했다.
5월이 되어서야 교육부는 고3부터 순차적 등교 계획을 발표했다. 확진자도 하루 한 자릿수로 줄었다. 정부도 생활방역으로 전환을 준비했다. 대구는 신천지 집단 감염의 여파로 강화된 생활방역 수칙을 안내했다. 등교 수업 역시 다른 지역과 같이 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깔렸다.
“등교 수업과 관련해서 고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실시한다는 교육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대구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방안을 교육청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입니다. 대구 상황을 봐선 개인적으론 고3은 예정대로 하더라도 나머지 학년은 온라인 수업을 연장하는 것이 방역적 관점에서 옳지 않나 판단합니다”
– 2020.5.5. 권영진 대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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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문을 연 가게를 한참 찾아 헤맸다. 어떤 곳은 아예 문을 닫았고, 어떤 곳은 배달만 한다고 했다. 4번의 실패 끝에 겨우 문을 연 가게를 찾았다. 손님은 한 테이블밖에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처음 나왔다. ‘1단계’, ‘2단계’ 이런 말도 없을 때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사회와 격리했다. 문을 연 가게들은 오히려 ‘정상 영업’을 한다고 써 붙여야 했다. 거리를 비추던 간판은 불이 꺼지고, 시간에 맞춰 오가는 버스만 불빛을 냈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마치 새벽 3시 같지만, 이제 밤 9시다. 평소라면 번화가의 밤은 더 빛날 시간이다. 2월 18일 이후, 대구의 하루는 다른 곳보다 짧아졌다.
밤 9시, 출근한 지 세 시간 만에 겨우 한 콜 들어왔다. 콜이 들어올 때까지 따로 대기할 곳도 마땅치 않아 하염없이 길을 배회했다. 콜을 기다리며 말동무할 동료들도 예전만큼 없다. 손님도 줄고 불안한 마음에 출근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황창현(54) 씨는 마스크를 쓴 모습이 손님에게 불쾌감을 줄까 봐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때만 해도 마스크 쓰는 게 억수로 어색하데요. 얼굴을 가리는 게 좀 그럴까 봐 손님한테 양해를 구하고 운전을 했어요. 그러다가 점점 코로나가 심해지니까 마스크 쓰는 게 일상이 돼서 양해를 구하고 그런 것도 없어졌죠”
오히려 ‘내 차’라고 안심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손님이 헛기침이라도 하면 마스크를 한 번 더 고쳐 쓰게 됐다. 마스크는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르는 신종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유일한 장비였다.
“어떤 손님은 ‘아무래도 한 번 앓고 지나간 거 같아요’ 이러더라고요. 괜히 찝찝하게. 인후통이 심하게 오면서, 열도 막 나고 그게 코로나였던 거 같다고 이야기하는 손님도 있었어요. 겁나죠, 진짜.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100% 마스크를 하잖아요. 그런데 대리운전은 자기 차니까 마스크를 안 끼는 사람이 많아요”
지난 2~3월 대구·경북 이동량은 평소보다 38.1% 줄었다. 대구 서문시장은 6.25 전쟁 이후 처음 문을 닫았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5일까지 8일 동안 신천대로 하루 평균(7시~23시) 통행량은 7만 75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줄었다. 2월 23일부터 3월 15일까지 도시철도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74%나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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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대구도시철도 2호선 수성구청역 2번 출구 학원가. 학생들로 북적이던 동네는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대구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건물 ‘그림’을 찍어가기 위해 모인 거다. 인근 건물들은 속속 문을 닫았다. 같은 건물 1층 신협은 영업을 잠정 중단한다는 안내를 붙였다. 같은 층에 4.15총선 사무소를 마련했던 후보자도 사무소를 폐쇄했다.
이금희(55) 씨도 바로 학습지 수업을 중단했다. 금희 씨는 수성구 일대에서 구몬 학습지 교사로 일하고 있다. 방문하지 말아 달라는 학부모 요청도 있었지만, 스스로의 안전이 불안하기도 했다. 방문 수업은 물론이고 신규 모집도 멈췄다.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 두려웠다. 코로나에 걸리면 당장 완치될 때까지 격리돼야 한다. 완치 후 재확진되는 것도 무서웠다. 가장 두려운 것은 코로나 확진자였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만약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면 나와 우리 아이들은 뭘 먹고 살까.
한 주가 지나도 확진자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하염없이 일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금희 씨는 3년 전 구몬학습에서 출시한 스마트 수업을 시작했다. 스마트 패드로 화상 수업이 가능했다. 오전에 학생들 집으로 직접 교재를 배달해주고, 정해진 시간에 패드로 수업했다. 기계와 익숙해 지는 데만 한참 걸렸다. 화상 수업할 때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얘기하는 거도 영 어색했다.
“패드 산 지 3년 만에 코로나 터지고 처음 해 봤어요. 수업할 때 교재도 보이고 하니까 괜찮더라고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유용하게 사용했어요. 근데 비싸죠. 처음에는 화면 보고 얘기하는 거도 쑥스럽고 살이 바짝바짝 빠지더라. 진짜 힘들더라고요. 애들도 힘들었을 거예요. 학교 화상 수업하랴, 나하고 화상하랴. 눈도 많이 나빠졌을 거고”
평소 금희 씨의 일은 학생들이 학교, 학원을 마치고 오후 6시께부터 시작한다. 교재를 들고 집집마다 방문하는 탓에 관절염을 달고 살았다. 차가 있지만 차로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꺼번에 교재를 들고 다니는 일이 많다. 일 마치고 밤늦게 집에 오면 허기진 배를 채운다. 위장병도 학습지 교사의 만성 질병 중 하나다. 그런데 코로나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이동 시간이 사라지니 수업과 수업 사이마다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평일 저녁을 먹었다.
“수업하러 나가면 보통 10시~11시까지 밥을 못 먹어요. 그런데 집에서 화상 수업을 하니까 잠깐 짬 날 때 애들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일하면서 평일에 애들하고 저녁 먹은 적이 없거든요. 매일 밖에 있었으니까.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별거 아닌데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