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담지 못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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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의사는 선망의 직업으로 꼽힌다. 고수익과 사회 상위계층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수입은 국내 직업군의 최상위권이고, 생명과 건강이라는 일상의 중요한 문제와 맞닿아 있는 전문직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고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할 때 그 ‘훌륭한 사람’의 은유에 꼭 들어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돈에 눈먼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시청률 14.142%(유료 가구 기준)로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좋은 의사’라는 판타지를 시청자 머릿속에 심었다. 그간 국내 의학 드라마는 사명감에 불타는 의사가 생사기로에 놓인 환자를 살려내는 영웅담이나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의사들이 만들어가는 성장담에서 병원 내 권력 암투나 의술의 재현으로 이어졌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사진=tvN)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생로병사가 펼쳐지는 병원에서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담은 휴먼 드라마를 그려냈다. 병원이 배경인 만큼 몸만큼이나 아픈 사람들의 마음속 상처에 주목했다. 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이 가득했다. 이들의 몸을 치유하는 의사들은 마음까지 어루만졌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의사든, ‘싸가지 없는’ 의사든, 병원을 운영하는 재단 이사장의 의사 아들까지도.

특히 재단 이사장의 의사 아들은 병원비 문제로 발길을 돌리는 환자가 없도록 챙기는 ‘키다리 아저씨’이기도 하다. 수익을 최우선으로 여길 것 같은 병원과 그 속에서 권력을 쥐기 위해 다툴 것 같던 병원장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병원 내 모든 인물이 환자를 위해 위악을 떨고 그 안에 쌓인 오해는 금방 풀렸다. 선명한 악역도 없고 막장 전개도 딱히 없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욕심을 버렸다. 대형병원의 상업화나 의료 인력 부족 등 사회적 문제는 지우고 의료진의 일상적 삶에 집중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인 판타지를 담는다는 지적이 따랐지만 큰 인기를 얻었다. 젊고 유능한 의사들이 소소하지만 진정성 있는 태도로 따뜻한 위로와 힐링을 줬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의료진의 헌신이라는 현실과 맞물려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국이 전 세계로부터 방역 모범국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선 의료진의 헌신과 노력, 방역당국의 정책,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 덕분이었다. 이 중 감염병과의 전쟁을 이겨내기 위해 제 몸 돌보지 않고, 자신의 병원 일 제쳐놓고 진료를 자청해 달려와 준 의료진의 역할이 가장 컸다. 현실에서 헌신적 모습을 보여준 의료진과 드라마 속 의료진이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와 더불어 일상적인 책임을 충실히 다하는 전문가다운 모습이 겹치며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드라마와 현실은 간극이 크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에서 불거진 진료거부에 따른 의료 공백에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의료계 집단휴진(파업)에 “환자를 볼모로 협박한다”는 비난이 잇따른다. 코로나19 재확산 시점과 파업 방식에 공감을 얻지 못하고, 고소득 전문직의 파업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의료계는 비난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살인적인 근무환경은 그대로 둔 채 예비 인턴, 레지던트만 늘리면 결국 대형 병원의 배만 불린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그동안 묵묵히 견디다 보건복지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전격 발표하자 가운을 벗어 던져 결국 스스로 문제를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시켰다. 의료계 강경 대응이 한낱 돈과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한 까닭이다.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의 주요 요인은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이해 문제다. 핵심은 지방 의료 문제가 얽혀 있다. 정부는 지방의 의료 인력 부족을 이유로 정책을 펼치려는 것이고, 의료계는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 지방의 의료 여건을 개선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지역 간 의료격차가 인력 부족이 초래한 현상이라는 정부의 판단에 공감하지 못 한 것이다.

사실 지방대 의대 정원을 늘리거나, 공공의대에서 의대생을 선발해 복무시키는 방법으로 지방의 의료 서비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방 환자들은 간단한 진료는 지역에서 받지만, 큰 병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서울의 큰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지방과 수도권의 의료 수준에 격차가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대형병원에 최첨단 의료기술과 장비, 충분한 경험의 인력이 있기도 하다. 전형적인 수도권과 지방의 인재 문제가 따라온 것이다.

지방대 의대 정원을 늘리든, 공공의대에서 의대생을 선발해 10년을 의무 복무시켜도 지방의 의료 서비스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공공의대에 입학해 의무 복무를 마칠 경우, 전공의 후반부가 된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서울로 가서 개원하거나 이직할 수 있다. 지금도 지방대에서 전문의까지 취득하고 서울로 가는 의사가 드물지 않다. 그렇다고 의무 복무를 정년으로 지정할 수도 없다. 임금을 많이 준다는 대안도 있지만, 이미 봉직의 임금은 지방이 더 높다. 지역차등수가제도 명료한 해법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만으로 지방에 최첨단 공공의료 서비스가 제공될까. 다만 의사 수를 늘린다고 지방의 질 좋은 공공의료가 제공될까. 정부와 의료계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하는 문제다. 우선 환자부터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