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살았던 집 중 지금 남아 있는 곳은 두 군데이다. 사실 살았던 집은 세 곳이다. 한 곳은 당시 초가집이었는데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당연히 헐렸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호롱불을 경험했다. 두 곳 중 한 곳은 전주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 맞은편 산기슭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몇 년 전 조카의 결혼식이 있어서 끝나고 그 근처를 갔다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게 신기해 사진에 담아오기도 했다. 더욱이 동네 가운데로 도로가 났음에도 위치가 동네에서 가장 가장자리에 있어서 살아남은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어둑한 집이었다. 산 아래쪽을 바라보지 않고 옆으로 돌아앉은 집인 데다 정면은 앞집의 옆구리를 향하고 있었다. 산으로 조금 올라가면 작은 무덤 하나가 있었다. 학교 끝나고 아무도 없는 집에 온 어느 날은 상수리나무에 다람쥐가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기도 했다. 빛이 들어올 수 있는 방향은 죄다 막힌 꼴인데, 새로 난 도로에서 보면 회를 바른 옆구리만 보였다. 반갑기도 했지만 그 모양새가 예전과 다름없이 허름하고 쓸쓸해서 찾아가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또 한 곳은 삼례의 만경강가 마을 비비정에 있는 집이다. 처음 그 집에 이사 왔을 때는 천장이 없고 바로 슬레이트였다. 그러니까 벽만 세우고 지붕으로 슬레이트만 얹은 꼴이었다. 당연히 다른 집보다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추웠다. 한 해가 지나고 스티로폼을 이용해 천장을 만들었지만 밤이면 쥐들이 올림픽 경기를 하는지 시끄러워서 잠을 자기 힘들었다. 살면서 조금씩 보수해 나중에는 제법 모양새가 잡혔지만, 엉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나는 그 집에서 세 번째 옮긴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심지어 중학교까지 마쳤다. 내게 마당에 대한 서정이 있다면 아마 그 집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집은 그랬지만 마을 앞으로 강이 흐르고 있어서 지금은 그 집보다 강이 집이었던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비비정은 조선시대 때 지어진 정자 이름인데, 내가 뛰어놀던 시절에는 흔적도 없다가 나중에 자치단체에서 복원했다. 지금은 가끔 산책 나오는 사람들이 들르곤 한다.
비비정은 만경강을 벼랑 아래로 두고 있어서 이런저런 개발이 안 되었다면 고즈넉한 풍광이 살아남았을 것이지만, 전라선 철로가 바짝 당겨지는 바람에 옛 풍광도 사라지고 말았다. 비비정이 복원되기 전 그 자리에서 보던 저녁 노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 그 집은 나의 의붓형이 살고 있다. 슬프게도 가까이 살아도 왕래를 하지 못하게 돼서 나도 선뜻 그 집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번 들러볼까 했다가 마음을 접었는데, 돌이켜보니 마음을 접게 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동안 실제 이유를 내가 억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집에 가면 지독한 슬픔이 구렁이처럼 어둠 속에 웅크려 있다가 나를 덮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여기에 길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아직 남아 있는 두 집이, 다른 시인들처럼 향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서울에 뉴타운 열풍이 불던 때, 같은 구역에 모여 있지만 동이 다른 옆 아파트가 리모델링 문제로 심각한 갈등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어떻게 리모델링을 통해 평수를 늘리겠다는지 의아해 알아봤더니 베란다 쪽에 있는 화단을 없앤다는 것이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내가 좀 뾰로통하게 말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집이라고 하면 현관문 안쪽의 내부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집은 베란다 아래 화단까지, 아니 길과 하늘과 아이들의 노는 소리까지···. 아무튼 그런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화단이라고 해서 무슨 꽃밭이 조성된 것은 아니다. 감나무나 목련나무, 대추나무 몇 주가 듬성듬성 서 있고 나머지는 그냥 풀밭이다. 오래된 아파트 나름의 여유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풀밭에 봄이 되면 여러 들꽃들이 피었다. 새삼 꿀벌의 몸이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들꽃에 머리를 박고 꿀을 따는 모습을 보고나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리모델링으로 인한 갈등은 상처만 남기고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몇 해 있다가 우리가 그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었다. 아이들의 몸이 커가면서 살던 집이 너무 비좁아졌기 때문이다. 공간이 부족해지니 남매는 툭하면 다투곤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옮기게 된 것이다. 2~3년 전인가는 단지 내 나무들 전지작업을 한다는 핑계로 가지를 죄 잘라버리고 말았다. 강퍅한 성격을 못 이기고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난리를 피웠는데, 생각보다 주민이고 관리사무소 직원이고 나무 자르는 일에 무감해 보였다. 나는 그게 또 화가 나 한층 극악했던 것 같다. 대는 이유가, 어이없다 못해 억지스럽기까지 했다. 결국 한 2년을 말뚝이 된 나무만 보고 살아야 했다. 이렇게 전지작업을 한다며 나무를 말뚝으로 만드는 일은 근처 다른 아파트로 퍼져 나갔다.
내가 선뜻 찾아가지 못한 전주의 집도 집 자체만 보면 블록으로 지은 오두막에 불과했지만, 집을 빠져나가면 전주천이 흐르고, 뒷산에서는 칡을 캐 먹기도 했다. 물론 그 집은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는 수모와 상처를 준 곳이기는 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것들이 지금의 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전주천변에 지천으로 피던 토끼풀꽃도 눈에 선하고 전주천에서 다슬기를 잡던 일이며, 동네 형들을 따라 어항을 가지고 피라미를 잡던 일도 기억난다. 어머니가 두 살 더 먹은 내게 맡긴 어린 동생을 비록 전주천에 떠내려 보내고 말았지만 가끔 내가 시라는 것을 쓰게 된 것도 그 시간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주천에서 뒹굴던 꼬맹이는 소년이 되어 만경강을 가슴으로 흐르게 했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한다고 할 때, 그게 그렇게 화가 나고 그랬던 것은 전주천과 만경강에서 보내며 얻은 물의 영혼 때문이 아닌가 했다. 어느 하루는 만경강이 우는 꿈을 꾸기도 했는데, 일어나 그게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울었다. 마당에 가득 찬 강의 울음에 꿈에서도 울고 일어나서도 울었던 것이다. 오늘날 집이라고 하면 고작 부동산에 지나지 않아서 평수로나 논하고 교통의 편의나 인근의 학군까지 따지지만 집은 우리에게 영혼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물론 그 영혼은 밝고 따뜻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천국’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고, 심하게 말하면 존재해서도 안 된다.
영혼은 무엇보다도 물질이 만들어준다. 그것도 살아 있는 물질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거기다 살아 있는 물질 곁에서 함께 존재하는 무기물질이 거들어준다. 프쉬케(psyche)가 에로스(eros)의 연인인 것은, 에로스는 프쉬케(숨, 영혼)와 결합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으로서의 프쉬케는 그러나 몸을 아우르는 뜻을 가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영혼을 몸, 즉 생명과 같은 것으로 봤다. 몸이 없으면 영혼은 홀로 설 수 없기 때문일까. 결국 우리의 영혼도 몸과 함께 있고 몸은 다른 몸과 연결될 때만 그나마 가까스로 살 수 있는 것이니 영혼이란 개체 단위를 넘어서는 무엇일 게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것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사람의 몸-영혼이 불구 상태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 된다. 집과 집을 에워싼 살아 있는 물질이 없는 ‘부동산’은 사람들과 함께 영혼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부동산’은 사람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영혼이 망가진 사람들은 부동산을 더욱 탐닉하게 되어 있다.
다음 기회에는 아직 남아 있는 ‘두 집’을 찾아갈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찾아간다면 나는 무언가를 왈칵 쏟아내고 텅 비어버릴 것만 같다. 프쉬케는 아프로디테의 질투 때문에 에로스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시간을 견디지 못한 옛집을 만나면 도리어 나의 프쉬케는 손상될 것만 같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예감만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프쉬케를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일 게다. 집은 사라지고 부동산만 넘쳐 나는 현재를 말이다. 현재가 부동산만 넘쳐난다고 해서 프쉬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무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프쉬케는 버려지고 은폐되어 있는데, 이 가여운 존재를 찾으려 헤매는 일도 또한 시의 몫이 아닌가, 하고 서쪽 하늘에 노을이 번진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술집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