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도, 이익도 있는데 노동자만 잘리나요?”

희망퇴직 마감 1시간 전까지 문자 '협박'
"외국 자본 '폐업' 앞에 노동자만 속수무책"
노동자들, 1일부터 공장 사수 투쟁

10:38

공장은 지난 6월 26일에서 시간이 멈췄다. 불이 꺼진 공장은 고무 찐 냄새만 가득했다. 작업 중이던 로봇은 고개를 든 채로 서 있다. 검수를 기다리던 벨트도 널브러져 있다. 주간 생산 계획표는 6월 22일 자가 최신이다. 6월 16일에 생산된 ‘현대자동차용’이라는 식별표가 붙은 납품 상자들도 쌓여있다. 이번 주 식단표가 붙어야 할 게시판에는 ‘철야 농성’ 계획표가 붙었다. ‘한국게이츠 폐업 투쟁 승리 철야 농성’.

지난 27일 오후 대구 달성산업단지 한국게이츠 공장을 찾았다. 한국게이츠가 폐업을 통보한 지 28일째 되는 날이다. 직원 147명 중 대부분이 회사가 요구한 희망퇴직을 했고, 27명이 남아 멈춘 공장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평소처럼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한다. 공장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곳은 노동조합(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사무실이다.

▲불 꺼진 한국게이츠 공장

노길현(50) 씨는 지난 6월 26에도 평소처럼 오전 8시에 출근했다. 한참 작업 중이던 오전 10시께 모두 식당으로 모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사측은 그 자리에서 오는 7월 31일 자로 한국공장을 폐업한다고 공고했다. 야간 근무를 하고 이날 오전 6시에 퇴근한 김태현(46) 씨는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들었다.

“일하고 있는데 외국인 몇 명이 와서 공장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아무 생각이 없었죠. 눈물 흘리고, 슬프고 그럴 생각도 없고 앞이 깜깜하더라니까요. 그 얘기를 듣고 계단을 올라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25년 동안 일했던 게 스쳐 지나가니까” – 노길현

“저희는 일상적인 퇴근이었어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쉬려는데 단톡방에 떴어요. 잠도 안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사실 확인한다고 정신이 없었고, 며칠 지나고 진짜 일을 안 하게 되니까 문을 닫는구나 싶어서 멘탈이 나갔죠. 문을 왜 닫지? 회사가 어렵나? 문 닫는다고 하면 그냥 문을 닫는 건가? 황당했죠” – 김태현

사측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구조조정 시기를 앞당겼다”고 밝혔지만, 이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한국게이츠는 2000년 이후 한 차례를 제외하고 매년 순이익을 남겼다. 최근 3년간 순이익은 2017년 77억, 2018년 47억, 2019년 45억 원이다. 더구나 지난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해 사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도 공장이 멈춘 적은 없었다.

희망퇴직 마감 1시간 전까지 문자 ‘협박’
“외국 자본 ‘폐업’ 앞에 노동자만 속수무책”

“희망퇴직 신청 마감이 1시간 남았습니다. 미신청에 의한 불이익이 발생치 않도록 17시 이전에 신청 바랍니다” – 7월 20일 오후 4시 한국게이츠가 보낸 문자

폐업 공고를 내린 한국게이츠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희망퇴직 신청자에 한해 ‘희망퇴직위로금’을 주겠다고 했다. 사측은 업계 모범 사례에 부합하는 퇴직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내놓은 것은 희망퇴직 위로금 뿐이다.

태현 씨는 “희망퇴직은 회사가 존재하는 걸 전제로 회사가 어려워서 희망하는 사람만 퇴직 신청을 받는 건데, 이 말을 저쪽 나라에서는 다르게 쓰는 거 같다”며 “폐업을 때려 놓고 협박용으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 위로금이 없다고 협박까지 해가면서 사인을 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희망퇴직을 할지 말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남짓이었다. 사측은 희망퇴직 마감 1시간 전에도 문자를 보내왔다. 30분 남겨두고 희망퇴직 신청서를 쓴 동료도 있다. 손정원(42) 씨는 “매일 식구들보다 더 많이 보는 사람들이 나갈 때 힘들었다. 저도 사실 갈등 많이 했다. 많이 괴로웠다”며 “한 시간 남겨두고 협박 비슷한 문자가 왔다. 20일까지만 해도 조합원들 대부분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폐업 통보를 받고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사내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달성군, 대구시,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추경호 국회의원(미래통합당, 달성군),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을 만나 상황을 알렸다. 정부에서 나서주길 바라며 청와대 앞 1인 시위도 시작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게이츠 본사에 공장 폐쇄 결정을 철회해 달라고 서한문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국게이츠 폐쇄 결정은 확정되었다”는 것이었다.

태현 씨는 “퇴직금은 당연히 저희가 받아야 할 돈이고, 희망퇴직 위로금을 주겠다는 이야기다. 결국 ‘너희 정도가 움직여서는 공장 가동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며 “폐업이라는 말 앞에 정부나 기관에서는 대책을 논의할 게 없다. 뒤에서는 말이 안 되는 희망퇴직을 받아도 폐업이라는 말에 다 튕겨 나간다. 그 안에 있는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길현 씨도 “외국 자본이 진짜 골때린다. 대구시장이고 대통령이고 무시하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 한국 사람으로서 자존심도 상한다”며 “우리가 미국 식민지도 아니고, 이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국게이츠 25년차 노길현(50) 씨

납품도 있고, 이익도 있는데
노동자만 잘린다
“제2 한국게이츠 나올 수도”

태현 씨는 이번 폐업 통보가 마치 ‘살인’과 같다고 했다. 한국게이츠 생산공장은 폐업하지만 판매 법인인 게이츠유니타코리아(GUKC)는 여전히 영업 중이다. 게이츠 본사가 한국에서 사업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한국게이츠와 게이츠유니타코리아 모두 지분은 미국 게이츠(51%)와 일본 니타(49%)가 갖고 있다. 미국게이츠 최대 주주는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다.

“저희가 만드는 똑같은 제품이 중국게이츠에서 들어와요. GUKC를 통해서 (현대자동차로) 납품은 계속 이뤄지고 있고 게이츠는 영업이익이 계속 나는데, 저는 잘려야 한다는 사실이 상당히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충격이 아니죠. 그냥 살인 같은 느낌이었어요” – 태현

▲한국게이츠 19년차 김태현(46) 씨

이들은 원청 대기업인 현대자동차가 이번 폐업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게이츠에서 생산된 제품은 GUKC를 통해 현대자동차에 판매해왔다. 사실상 현대자동차가 중국게이츠 부품을 사용하겠다고 묵인했다는 것이다.

길현 씨는 “현대자동차에 서운한 게 많다. 그동안 중국 제품과 우리나라 제품을 이원화했었는데, 이 공장이 문 닫으면 100% 중국 제품이 들어간다. 부속은 중국 제품을 쓰고, 국산차라고 팔아먹는다”며 “한국 고유 브랜드인 현대차에 중국 제품이 계속 들어간다. 한국게이츠가 무너지면 다른 부품도 중국 거로 대체될 거다. 그러면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 공장은 다 무너진다”고 꼬집었다.

태현 씨도 “정말 단순하게 현대자동차에서 중국 부품 못 받겠다고 하면 끝나는 거 아닌가. 자기 문제가 아니라서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건가”라며 “부품의 질은 상관없고 납품 지연만 안 되면 된다는 건가. 이런 식이면 제2의 한국게이츠는 또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오는 29일 금속노조와 함께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한국게이츠 공장 정상화를 위한 대구지역범시민대책위원회’도 이날 오전 현대자동차 대구판매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청춘을 바친 내 공장 지킬 것”
노동자들, 1일부터 공장 사수 투쟁

▲한국게이츠 공장 입구, 입고를 앞두고 그대로 쌓여있는 물품들

한국게이츠 노동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20년이다. 길현 씨는 올해로 25년 차, 태현 씨는 19년 차, 정원 씨는 12년 차다. 이들은 모두 한국게이츠에 “청춘을 바쳤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전기차가 주목받기 시작할 때, 사측에 전기차 부품 생산을 제안하기도 했다. 내 공장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태현 씨는 “시대가 바뀌면 게이츠 그룹이 맞춰서 변화해 나가야 하는데, 그게 경영진이 할 일이다. 그런데 오로지 수익만 내고 몰래 빠지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업 확장성이 안 보였다”며 “전기차는 더 늘어날 테고 환경 문제로 내연기관을 등록하지 못하게 할 때, 우리 사업은 축소될 게 뻔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게 투기 자본, 먹튀 자본의 본질이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게이츠 본사는 한국에서 사업 전환을 하는 방법보다 손쉬운 폐업을 택했다. 사측의 쉬운 결정에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만 남아있다. 한국게이츠와 관련된 협력업체만 전국에 51곳, 6천여 명이 일하고 있다.

사측은 오는 8월 1일부터 공장에 출입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노동자들은 공장 사수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당장 공장 안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얼마나 긴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16년을 일했는데 사실 아까워요. 20년 채웠으면 몰라도. 바로 내일 끝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체력을 완비해서 가야죠. 저는 아직 싸울 체력이 돼요. 한국게이츠 사태를 막아야 다른 부품 산업에도 좋은 본보기가 될 거 같아요. 8월 1일부터는 해고자에요. 해고자 이름을 지우도록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사측에서 용역을 쓸 수 있고, 오만 생각이 들어요 사실. 그래서 대구시나 정부에서 좀 나서줘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정원

“제가 19년을 일하고 청춘을 바쳤잖아요. 그런데 미안한 마음도 없이 쓰고 버렸어요. 아이가 셋인데 앉혀 놓고 얘기했더니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하고 묻더라고요. 제가 해 줄 말이 없더라고요. 한국 아빠들, 노동자들에게 직업은 생계에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죠. 외국 자본이 흑자가 나는데도 더 좋은 수익을 위해서, 기분 나빠서 손 털고 나갈 수 있다면 노동자만 갑자기 다 죽는 거에요. 노동조합이 있는 한 우리 권리를 얘기하는 투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태현

“25년 동안 일하다가 갑자기 집으로 해고통지서가 날아왔잖아요. 지금 저보다 저희 와이프가 더 놀란 상태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장을 가동시켜야죠. 이렇게 무너지면 한국에 자동차 부품 공장은 다 죽는다는 각오로. 대구시내 온 천지가 자동차 부품 공장이에요. 대구는 완전 박살 나는 거죠. 멋지게 한 번 싸워 보려고요” – 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