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종식될 것만 같았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근 반년 동안 지속된 카오스적 상황에 우리 모두가 지쳐가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만사가 그러하듯 이 사태 또한 언젠가는 끝이 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교수들은 그동안 멈춰 섰던 프로젝트 머신 재가동하느라 정신이 없고 학생들은 스펙경쟁과 알바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부모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 가격과 통장잔고를 번갈아 보며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회복된 익숙한 일상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조차 돌아볼 여유도 없이 또다시 바쁜 삶을 경주하다 문득문득 코로나19 사태를 추억할 것이다. 그때 코로나19 사태를 회상케 하는 추억의 마중물은 무엇이 될까? 개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십중팔구 신천지교회와 그 신도들일 것 같다.
신천지교회, 정확하게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1984년 교주 이만희가 창설한 이래 줄곧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단으로 악명을 드높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공공의 적이 된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대구의 한 신천지교회 신도가 코로나19 슈퍼전파자로 지목되면서 3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신도들이 하루아침에 가공할 공포 바이러스의 숙주로 낙인찍혀 마녀사냥에 가까운 배척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천지교회는 말세와 영생을 설파하는 신흥 밀레니엄 종교로서 기성 기독교에서는 명백한 이단 혹은 사이비로 분류된다. 여기서 새삼 신천지교회가 노정하는 사이비성과 사기에 가까운 신도확장 방법의 가부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신천지교회 신도들 중 유독 가난한 청년층의 비율이 높다는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왜 그렇게 많은 ‘멀쩡한’ 청년들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교리를 설파하는 신천지교회로 달려간 것일까? 무지몽매와 비합리성의 징후일까?
신천지교회는 세상의 종말이 오면 선택받은 신도 14만4천 명이 구원을 받고 재력과 권력을 동시에 가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나는 신천지교회가 말하는 구원과 영생을 누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여러 수준에서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현재 세계의 인구수를 70억으로 어림잡아 계산해보면 종말이 올 때 구원받는 14만4천 명은 그중 0.0016%가 된다. 구원받을 확률이 매우 낮다. 나는 지은 죄가 많아 당연히 그 안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이를 대한민국 로또 당첨 확률인 0.0000123%(1/8,145,060)와 비교하면 그나마 상당히 높은 확률이다. 계산을 한국으로 한정하면 구원의 확률은 더 높아진다. 즉 한국의 인구수를 5천만으로 잡으면 확률은 0.288%로 계산된다. 비교적 높다. 하지만 아직 선뜻 베팅하기에는 불안하다. 이른바 ‘상위 1%’에 포함될 확률보다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신도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천지교회로 계산의 범위를 좁혀보면 얘기가 상당히 달라진다. 신천지교회의 신도수를 최근 추정치인 30만으로 잡고 계산해보면 그 확률은 높아져 48%가 된다. 명색이 과학적 합리성으로 무장한 대학교수인 나도 혹할 수밖에 없는 구원의 확률이다.
이 정도면 ‘흙수저’ 출신에 죄 많은 나도 신천지교회에 귀의하는 ‘도박’을 감행해서 한 번 정도 ‘대박의 꿈’을 꿔볼 만하다. 사정이 그렇다면 그 많은 청년들이 신천지교회로 달려간 이유는 그들의 무지몽매와 몰상식 때문이 아니라 나름의 계산법에 입각한 ‘합리적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정말 세상의 종말이 와서 신천지교회의 14만4천 신도가 구원받아 영생을 누린다면 나머지 6,999,856,000명의 인류는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그 많은 사람들은 버림받아 지옥불에 구워져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신천지교회의 신도들은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건 내 알 바 아니오. 나만 아니면 돼!”
신천지교회의 청년 신도들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70억 명 중에 오직 0.0016%만 구원받는 세상이고,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보다 신천지교회로 귀의해서 48%의 확률로 구원받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나름의 합리적인 계산을 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가족과 미래까지 포기하면서 사기에 가까운 포교활동을 열렬히 수행하는 그들의 행태를 해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극소수의 선택과 구원이라는 신천지교회의 세계상에서 기시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최근 인기 TV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다. 신천지교회의 세계상을 보며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사회, 적자생존의 차가운 경쟁논리가 작동하는 사회, 상위 1%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를 떠올리는 자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 세계상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재연되며 ‘헬조선’의 지옥도를 그리고 있다.
인기 TV 프로그램 <1박 2일>의 주인공들이 저녁 굶기 복불복 게임에서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너스레를 떠는 장면에서, <슈퍼스타 K>, <코리아 갓 탤런트>, <기적의 오디션>, <쇼 미 더 머니>, <마스터 셰프 코리아>, <프로듀스 101>, <미스트롯> 등 이루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수많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상위 1%에게만 허용된다는 강남빌딩의 소유 욕망을 감히 내비쳤다가 검찰의 철퇴를 맞고 있는 전 법무부 장관 부인의 일그러진 뒷모습에서, 심지어 “학문 생태계(알고 보면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가 변화해서 학생들에게 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피 터지는 경쟁과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상을 ‘귄위 있게’ 재생산하고 있는 대학교수의 인자한 얼굴에서도….
이렇게 신천지교회와 그 담장 밖의 세계는 판박이처럼 닮았다. 하지만 이 두 세계는 구원받을 확률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차이 난다. 신천지교회는 적어도 48%라는 매우 높은 구원의 확률을 약속한다. 대충 둘 중 하나는 구원받기 때문에 한 명만 밟고 일어서면 된다. 스스로 신천지교회 담장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도대체 몇 명을 밟고 일어서야 할까?
“로또만이 희망이다!” 서울의 한 로또 판매점 간판에 적혀 있는 문구이다.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이 문구야말로 최근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출판한 어떤 학술서나 논문보다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으로 포착하고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국민 중 대다수는 노력만으로 상위 1%가 될 확률보다 로또에 당첨되어 대박의 꿈을 실현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로 물리적 거리두기가 새마을운동처럼 확산하고 있는 와중에도 로또 판매점만큼은 성황을 이루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땅 투기와 주식투기가 경제를 견인하는 ‘카지노자본주의’ 도박판에서 48%의 승률로 1%도 아닌 0.0016%에 포함될 수 있는 매혹적인 도박에 삶을 베팅하고 있는 신천지교회의 청년 신도들을 과연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의 세계가 그 이전과는 판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뭐 그리 달라질 게 있을까 싶다. 카지노자본주의의 교리가 지배하고 ‘도박’이 핵심은유인 흉흉한 세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신천지교회의 담장 위를 걷고 있었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그 담장 위를 걷고 있을 것이다.
가끔 코로나19 사태를 추억하며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자식이, 내 부모가 그 담장 안으로 떨어질까 조바심하며 신천지교회와 그 신도들을 마녀사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담장 밖에 서 있다고 해서 뭐 크게 다를 바가 있을까? 누가 누구의 얼굴에 침을 뱉고 누가 누구에게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