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교육해서 N번방 터졌다” 조례 반대 측의 이상한 주장

지난 4일 이진련 대구시의원 대표 발의
기독교계 중심 단체 15일 시의회 집회까지

17:26

“이 조례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교육 현장의 모든 영역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과 폭력을 없애고, 성평등 교육을 통한 교육 당사자의 성인지 감수성 및 민주시민 의식 향상을 통해 성평등 실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 4일 이진련 대구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을 포함한 민주당 대구시의원 5명과 박갑상 시의원(무소속, 북구제1선거구)이 발의한 ‘대구광역시교육청 성평등 교육환경 조성 및 활성화 조례안’의 목적이다.

의원들은 “최근 미성년자 대상 N번방 사건이나 학교 내 성범죄 사건 등 교육 구성원들의 성평등 교육 강화와 성인지 감수성 향상 및 성폭력 근절에 대한 대책 마련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조례안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성범죄를 예방하는 방안으로 학생들의 교육 환경에서부터 성평등 인식과 성인지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조례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12일부터 전화와 문자 수백 통을 받고 있다. 내용은 대부분 조례안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조례안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성소수자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일부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대구시의회 정례회 개회를 앞두곤 집회 참여 독려 문자도 돌았다.

▲성평등 교육 조례안에 반대하는 단체가 15일 대구시의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대구성평등조례반대시민연대, 반동성애 기독시민연대, 건강한 대구시 만들기 시민연합, 대구·경북CE인권위원회, 대구·경북 다음세대 바로세우기운동본부라고 밝힌 이들은 “민주당 시의원들이 발의한 교육청 성평등 활성 조례안을 막아야 한다”며 15일 대구시의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성평등·성인지 교육 10년 한 후 N번방 터짐!’이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이날 오전부터 대구시의회 현관 앞 주차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성평등, 성인지 교육으로 인해 N번방 사건이 벌어졌다는 논리다.

스스로 수성구에 거주하는 두 아이 엄마라고 밝힌 한 여성은 “우리 아이들이 충분히 되지도 않은 성교육을 받고 있다. 성교육이 아니라, 성기 교육을 받고 있다”며 “우리 아들 6학년 때 보건 교과서를 보니 남녀가 섹스하는 내용이 있었다. 교과서에 왜 그런 내용이 있느냐. 성평등 교육, 양성평등 교육은 아이들을 무너뜨리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시의원들에게 보내는 문자도 비슷한 내용이다. 문자 내용을 보면 “우리 아이들은 N번방 같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며 “10년간의 성평등 교육 결과물이 무엇입니까? 극도의 페미니즘이 사회 전반에 퍼졌고, 그들의 요구는 탈남녀, 자기가 원하는 성별을 선택하라고 주장하는 유럽, 미국 사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자는 “양성평등이나 성평등이나 ‘평등’을 법안과 조례로 만드는 시도 자체를 절대 반대한다”며 “서구권에서도 논란이 많은 페미니즘 관련 양성평등, 성평등을 입법화하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 그들 이론상 70여 가지가 넘는 젠더 이론을 유치원 어린 아이들과 초중고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 비정상적인 성교육을 하는 것에 분노하며 절대 반대한다”고 밝혔다.

다른 문자들도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성평등 교육 환경 조례안을 반대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이진련 의원은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분들이 있지만, 반대로 제가 조례를 발의하게 된 것도 학부모님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며 “조례안을 지지한다는 목사님의 연락도 받았고, 고등학생의 문자도 받았다. 대구에서 이 조례가 통과되면 상징하는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성평등 교육 조례안에 반대한다는 이들로부터 시의원들이 받은 문자 일부.

이 의원은 또 “이런 문자나 집회로 인해 조례안이 철회되면 좋지 않은 선례를 또 하나 남기게 된다. 인권을 언급하는 조례를 발의하면 이런 분들이 조직적으로 나서서 무산시킨 사례가 벌써 두 번 있었고, 이것마저 무산되면 세 번째”라며 “저분들이 마음만 먹으면 시의회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대구시의회나 기초의회에서 ‘인권’ 관련 조례를 발의하면 해당 조례를 ‘동성애 조장’ 조례로 딱지 붙여 무산시킨 사례가 여럿이다. 대구시의회에서만 이미 두 차례 있었다. 지난 2017년 ‘청소년 노동 인권 보호 조례’가 시의회에서 발의됐을 때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반대 움직이 일었다. 상임위를 겨우 통과한 조례안은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지난해 이진련 의원이 발의한 ‘민주시민교육 조례안’도 마찬가지다. 이 의원은 “그때도 같은 내용의 문자가 수백 통이 왔었다”며 “내용이 동일한 문자가 많아서 조직적인 문자 보내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민주시민교육 조례안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유보돼 잠자는 조례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