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쪽방신춘문예] 다시 희망을 말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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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대구쪽방상담소는 지난 11월부터 12월 12일까지 제1회 쪽방신춘문예를 열었습니다. 쪽방신춘문예에 당선된 글은 12월 22일 대구 2.28공원에서 열린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에서 작은 책으로 묶여 발표됐습니다. 뉴스민은 대구쪽방상담소와 글쓴이 동의를 얻어 29일부터 1월 2일까지 당선작을 싣습니다.

박정수(가명)

코끝에 한기가 느껴진다. 잠에서 깨어나 늘 버릇처럼 리모컨을 든다. 희미한 티브이 화면에 눈을 돌려 오늘도 하루가 또 시작되는구나 생각한다. 늘 허리통증에 한참을 천장만 바라본다. 문득 생각한다. 예전에 난! 이런 삶을 생각했을까? 무의식중에도 내 손은 약통으로 향한다. 이젠 버릇이 되어 버렸나 보다. 약을 먹고 베란다 창문으로 하늘을 본다. 아! 캄캄하다.

새벽 5시 정도 수면제를 먹어도 4~5시간 자는구나! 세수를 한다. 그러다 문득 아! 오늘 병원 가는 날이구나! 마음이 편해진다. 아니 마음 한편으론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니까!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병원은 9시지만 아직도 어두운 새벽 집을 나선다. 한기가 온몸을 쓸고 지나간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어딘가를 갈 수 있어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동네를 거닌다. 어두운 새벽길을. 어둠이 좋다. 마음을 숨기듯 내 몸도 어둠 속에 숨어서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

버스정류장, 병원 갈 버스를 기다린다. 출근길 사람들이 많다. 어색하다. 멀찍이 떨어져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늘 그러하듯 어색하다. 타인의 시선이 날 숨 막히게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난 왜 숨이 막힐까? 언제부터인지 내 모습을 감추려 한다. 무의식적으로 아니면 버릇처럼 그리된다.

병원에 왔다. 마음이 편하다. 자주 보던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와 인사를 하고 웃는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놀라곤 한다. 내가 웃는 모습에 순서를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예전 기억 저편 아픔으로 남아 있는 나 자신을 본다. 가물거린다. 처음 아픈 날을 기억한다. 여인숙 같은 쪽방생활을 할 때 나름 건강하고 남들한테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쉬는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눈을 떠보니 머리와 양손만이 움직인다. 몸을 뒤척인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온다.

혼잣말로 ‘금방 나을 거야’ 하며 통증을 참는다. 하루 이틀. 낫질 않는다. 주인아주머니가 물어본다. (어디가 많이 아픈 거야?) 난 괜찮아요. 나아지겠죠. 대답한다. 돌아서는 아주머니에게 부탁한다. 생수 한 통과 우유 한 통만 사다 달라고. 생수와 우유를 사다 주고 가신다. 물을 마시려 몸을 트는데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아!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향도 아닌 타지에서 혼자 이러면 안 되는데, 눈물이 핑 돈다. 너무도 아픈 통증에도 생각한다. 살고 싶다고.

시간은 흘러 6개월이 갔다. 몸은 말라갔다. 이틀에 생수 한 통과 우유 한 통으로 버틴다. 병원에 가보려 몸을 일으켜 보지만 일어설 수가 없다. 이대로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무서워진다. 죽음이 무섭진 않다. 남겨둔 아이들 얼굴도 못 보고 가는 게 두려워서다. 버티면 살 수 있을까? 걸을 수 있을까? 그 무렵 주인아주머니가 저기 쪽방상담소가 있는데 한번 가보라고 하신다! 난 처음 들어본 말이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쪽방상담소 문을 두드려본다. 처음 날 맞아준 사람은 전인규 팀장. 어떻게 오셨어요? 물어본다. 선뜻 말이 안 나온다.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니 조용한 상담실로 둘이 들어가 이야기하게 된다. 지난 시간들, 아프고 배고픔을 이야기한다. 인연은 그리 시작되었다. 어느 날 전인규 팀장이 ‘아저씨 지하에서 박스라도 접으면 생활은 될 거예요.’ 이야기한다. ‘아픈 몸이라 다른 일은 못 하고 그거라도 하면 생활은 될 거에요’ 한다! 지하에서 박스를 접으며 일을 시작했다. 어느 날 전인규 팀장이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진료소가 있으니 거길 한 번 가보라고 한다. 진료소를 찾아 엠병원을 갔다. 병원 2층 작은 방 한 켠에 진료소가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병원을 가는 것 같다.

공보의와 박남건 팀장이 반겨준다. 병원을 안 다녀본 나로선 어색하다. 이런저런 이야길하고 진료를 받았다! 얼마 지나 박남건 팀장이 ‘아저씨 큰 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아보자’고 한다. 돈 걱정 말고 검사를 받으란다.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거저 진료를 받게 하나? 그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남건 팀장의 권유로 동산병원에 입원했다. 검사를 하기 위해서다! 검사를 마치고 병명을 알고 한숨만 나왔다. 퇴원할 때쯤 전 팀장과 박 팀장이 찾아왔다. 병원을 나서며 박남건 팀장이 말한다. ‘우리 점심 먹으러 가요!’ 다시 또 어색하다. 주머니에 단돈 만 원도 없는데. 박남건 팀장이 ‘나 만 원 있어요, 우리 먹으러가요’ 한다. 세 명이 앉아 수제비와 칼국수를 먹었다. ‘내 평생 이런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실은 병원에서도 거동이 불편해서 병원밥을 못 먹었다. 옆 환자분 보호자보고 제 거 드시라고 부탁했다. 생수와 우유 좀 사다 달라고) 그러니 병원을 나와서 먹는 칼국수 맛은 얼마나 맛이 있었겠는가!

병명도 알고 약도 타서 먹으니 걸을 수 있게 됐다. 허리통증은 여전하지만, 수급자 신청을 하라고 한다. 난 그 말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수급자 신청을 하라고 여러모로 신경을 써준다. 날 보면 아저씨 집에 쌀이 없으면 언제라도 이야기하란다. 말만으로도 고맙다. 괜스레 눈가가 붉어진다. 누군가에게 이런 관심과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리 시간이 가고 몸도 여유가 생길 즈음. 쪽방에서 나와서 원룸을 들어가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다. 난 “당장 들어갈게요.”라 한다. 그리 산지 3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아픔과 좌절, 고통의 시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니다. 비록 몸은 아직 아프지만, 마음만은 여유롭다. 작은 불씨가 큰불을 만들 듯 마음에 온기가 남아 있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항상 누군가를 살피고 돌보는 그들. 한여름 따가운 햇살에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는 그들 눈보라 치는 매서운 바람에도 따뜻한 난로 같은 존재인 그들이 옆에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살짝 번진다. 나도 모르게 나에게 웃음을 짓게 하는 존재 그들이다. 난 그들이 있어 웃는다. 난 그들이 옆에 있어 타인의 시선과도 맞선다. 그런 그들이 난 좋다.

자원봉사능력개발원 대구쪽방상담소. 낯설기만 한 글에 친숙한 사람들이 모인 곳. 난 생각한다. 그들이 있어 어두운 밤길을 비추는 불빛이 되고 외로운 삶에 한 가닥 희망의 줄이 돼주는 그들이 있어 난 외롭지 않다. 항상 그들은 어두운 곳에 빛이 되어줄 거니까. 그 작은 빛이 커져 온 세상을 밝혀주는 큰 빛이 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