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이 최종합의를 발표하면서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 합의와 비교했을 때 진전된 내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3번의 합의에서 모두 빠졌다.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일본 외무대신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사항을 각각 발표했다.
기시다 대신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책임 통감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지원 재단에 10억엔 일본 예산 거출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 자제 등을 합의했다며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윤병세 외교부 장관 역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며 “일본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고 밝혔다. 또,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덧붙여 소녀상 철거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에 정신대할머니를위한시민모임(시민모임) 등 시민단체는 “굴욕외교”라며 반발했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았고,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인순 시민모임 사무처장은 “이번 합의는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가 지원한다는 돈은 ‘배상’이 아닌 ‘보상’이다. 아시아여성기금 합의 내용과 다른 게 없다”며 “한일청구권협약(한일협정) 때도 피해 할머니들 의견은 소외되고 배제됐다. 어제 협의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말 굴욕적인 외교다. 조금도 진전된 내용이 없는데 정부가 다시 거론하지 않기로까지 못 박은 것에 대해 매우 분노스럽다”며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배상과 진상규명, 일본에서 역사 교육 등 재발방지 노력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이날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길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을 찾은 송영은(23, 인천) 씨는 “정부는 최종 합의라고 하지만 해결됐다고 보기 힘들다”며 “피해자 할머니들이 당사자인데 정부가 이들의 입장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합의한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나 일본이 법적인 책임을 인정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정현령(24, 울산) 씨는 “이전에 하시마섬 강제동원 문제나 한일협정 문제에서도 일본은 항상 우리와 해석을 다르게 했다”며 “이번에 일본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은 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딴소리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일본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은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일본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국제소송을 담당해 온 최봉태 변호사는 “(이번 합의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기 때문에 개인이 소송을 청구할 권한은 있다. 이번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피해자들은 재판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만 이야기되고 있지만, 원폭 피해자, 사할린 등 강제 징용 문제가 여전히 있다. 일본 정부가 성의 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진보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국가 차원의 사죄와 법적 책임은 없고 일본 정부의 범죄에 면죄부를 내준 ‘제2의 매국적 한일협정’을 맺었다”고 비판했다.
한편, 1965년 ‘한일협정’은 한일 간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박정희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무상 차관 3억, 유상 차관 2억, 상업 차관 3억을 받았다. 그러나 3억 달러 무상차관은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 ‘배상’이 아닌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원조’였다. 이에 시민들은 ‘굴욕외교’라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6.3시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은 1993년 ‘고노담화’ 발표 후속 조치로 1995년 발족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도의적 책임”을 밝히면서 일본 국민 모금으로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문에는 ‘도의적’이라는 단어마저 빠졌다.
아래는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 발표 전문이다.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 발표 내용
-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는 기시다 외무대신과 회담을 갖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비롯한 양국간 현안 및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는 협의를 가졌습니다.
- 먼저 연말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외무대신께서 오늘 이 회담을 위해 방한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 정부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여 양국간 핵심 과거사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해 왔습니다.
- 특히, 지난 11.2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님과 아베 총리께서 “금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라는 전환점에 해당되는 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조기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자”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주셔서, 이후 국장급 협의를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양국간 협의를 가속화해 왔습니다.
- 어제 있었던 12차 국장급 협의를 포함하여 그간 양국간 다양한 채널을 통한 협의 결과를 토대로 오늘 기시다 외무대신과 전력을 다해 협의한 결과, 양국이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결과를 여러분들께 발표하고자 합니다.
- 우선, 일본 정부를 대표해서 기시다 외무대신께서 오늘 합의사항에 대한 일본측의 입장을 밝히시고, 이어서 제가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 기시다 대신 언급내용
먼저 일·한 국교정상화 50주년인 올해 연말에 서울을 방문하여 윤병세 장관과 매우 중요한 일·한 외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일?한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해 왔습니다. 그 결과에 기초하여 일본 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합니다.
①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합니다.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②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前 위안부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합니다.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합니다.
③ 일본 정부는 이상을 표명함과 함께, 이상 말씀드린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합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합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 예산 조치에 대해서는 대략 10억엔 정도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은 일·한 양 정상의 지시에 따라 협의를 진행해 온 결과이며, 이로 인해 일한관계가 신시대에 돌입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이상입니다.
- 다음은 오늘 합의사항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제가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일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를 해 왔다. 그 결과에 기초하여 한국정부로서 아래를 표명한다.
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 정부가 앞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한다.
②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③ 한국 정부는 이번에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
- 이상으로 한국 정부 입장을 말씀드렸습니다.
-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올해를 넘기기 전에 기시다 외무대신과 함께 그간의 지난했던 협상에 마침표를 찍고, 오늘 이 자리에서 협상 타결 선언을 하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 앞으로 금번 합의의 후속 조치들이 확실하게 이행되어, 모진 인고의 세월을 견뎌오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아울러 한·일 양국간 가장 어렵고 힘든 과거사 현안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이 마무리되는 것을 계기로, 새해에는 한·일 양국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