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모임. 빅토르(다니엘 오테유)와 마리안느(화니 아르당)는 25년 차 부부다. 수십 년 동안 같이 살아온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에 조소가 섞여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남편이 한심한 탓이다. 마리안느는 빅토르의 절친 프랑소아(드니 포달리데스)와 바람을 피며 답답한 남편과 보내는 일상을 견딘다.
남편의 눈에 비친 마리안느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괴물 메두사다. 모임에서 빅토르는 아내의 초상화에 머리카락을 뱀으로 바꿔 그린다. 은퇴한 만화가인 빅토르는 왕년에는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며 이름을 날렸다. 시대가 바뀌고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이 줄고, 신문 한켠을 장식하는 삽화도 사라졌지만, 그는 향수에 젖어 연필, 물감을 여전히 좋아한다.
부부는 오랜 세월이 무색하게도 전혀 딴판이다. 마리안느는 전자담배를 피우지만, 빅토르는 연초에 불을 붙인다. 집에 돌아와 VR기기를 착용한 채 잠자리에 드는 마리안느와 달리 빅토르는 책을 꺼내 든다. 둘은 끝내 다툼을 벌이고 마리안느는 진저리를 치며 남편을 집에서 쫓아낸다.
빈털터리로 쫓겨난 빅토르는 아들이 선물로 준 ‘시간 여행권’을 들고 이벤트 업체를 찾아간다. 이 업체는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그대로 재현해준다. 아들의 친구이자 과거 자신이 책을 선물한 앙투안(기욤 까네)이 이곳을 설계한다. 시대에 맞게 무대 세트장을 꾸미고, 배우들이 고객 맞춤으로 연기한다. 원한다면 헤밍웨이와 술 한 잔 마실 수 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로 돌아가 히틀러의 뺨을 때릴 수도 있다.
빅토르가 돌아가고 싶은 시간은 ‘1974년 5월 16일’이다. 아내 마리안느를 처음 만났던 때다.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났던 카페 벨에포크로 회귀한다. 눈 앞에 펼쳐지는 74년은 가상의 세트이고,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들은 그저 배우일 뿐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자신이 고이 간직했던 기억들이 눈 앞에 펼쳐지자 청춘의 설레임이 다시 일렁인다. 딱 하루만 느끼려던 시대의 낭만은 일주일을 넘는다. 40년 전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웠던 아내의 젊은 시절은 눈이 부실 정도로 매력적이다.
빅토르는 젊은 마리안느를 연기하는 마고(도리아 틸리에)를 만날 때마다 활기를 되찾는다. 은퇴 후 연필을 놓은 빅토르는 어쩐지 마리안느를 닮은 듯한 마고를 그리고, 마고와 시간을 보내는 자신의 허한 마음을 채워나간다. 반대로 빅토르를 내쫓은 마리안느는 빅토르의 부재를 느끼며 그를 그리워한다. 시대에 발맞춘 자신과 달리 과거에 집착하던 모습이 지겨웠는데, 이제는 빅토르의 존재를 되새긴다.
<카페 벨에포크>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프랑스 영화다. 소재는 흔하지만 연출은 흥미롭다. 판타지를 가미한 여타 영화나 드라마와 달라서다. 앙투안은 시간여행을 위해 배우들과 세트를 총동원해 과거를 재현한다. 빅토르는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내 역을 맡은 배우 마고에게 사랑을 느낀다. 영화는 노년의 사랑을 보여주면서, 젊은 연인 앙투안과 마고의 이야기를 또 다른 한 축으로 다룬다. 완벽주의자인 앙투안은 연인 마고를 사랑하면서도 가학적인 말로 상처를 주고서는 용서를 구한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연인을 통해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린다.
영화 제목 ‘벨에포크(19세기 말~20세기 초 풍요롭던 파리의 황금기)’는 영화 속 리옹의 카페 이름이자 ‘좋았던 시절’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카페 벨에포크>는 ‘인생의 황금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옛날이 좋았지”라며 노스탤지어를 강요하지 않는다. 빅토르에게 필요한 건 과거의 꿈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다. 빅토르는 시간여행을 통해 차분하게 자신의 내면을 둘러본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과거 그때 그 장소가 그리운 건 그 시절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그 시절이 좋은 건 지금의 나와는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삶을 살던 내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무력감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과거를 꿈꾸게 만든다. 영화는 진정 아름다운 시절은 어쩌면 지난날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자유와 꿈이 다시 살아나는 날이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카페 벨에포크>를 보고 자신의 리즈를 과거에서 찾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의 리즈는 지금 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