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 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을 내던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추모벽 조성사업. 28일 사업 결과를 선보이는 제막식에서도 의전 문제·유족 간 다툼이 불거졌다.
28일 오후 5시, 2003년 참사 당시 화재가 벌어진 1호선 중앙로역에서 추모벽 ‘기억의 공간’ 제막식이 열렸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지난 2003년 2월 18일 화재로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15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고다.
오랜 불협화음 속에 겨우 마련된 추모벽 제막식은 대구시가 유족 대신 ‘귀빈’을 가장 앞줄에 의전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시장과 시의장, 대구도시철도공사 사장 등 ‘귀빈’을 가장 앞줄에, 유족 대표는 뒷줄에 자리가 지정됐다. 이날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처음 두 번째 줄로 안내를 받았으나, “제막식 주최는 희생자와 유족”이라는 생각이 들자 앞줄로 자리를 옮겼다.
윤석기 위원장이 옮긴 자리는 이동희 대구시의회 의장 자리로 지정한 곳이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윤석기 위원장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청했고, 윤 위원장이 응하지 않자 이동희 의장 자리가 앞줄에 따로 마련됐다.
이후 피해자 대표로 윤석기 위원장은 단상에 올라 “이동희 의장자리라며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라고 말하자, 다른 피해자 단체인 대구지하철화재참사 비상대책위원회 박성찬 비대위원장이 윤석기 위원장을 향해 “이 새끼”, “윤석기는 유족이 아니다”라며 고성을 내질렀다.
이 소동으로 제막식은 몇 분간 진행되지 않았다. 윤석기 위원장이 인사를 마치자 잠시 퇴장했던 박성찬 비대위원장이 단상에 올라서자 참가자 일부가 반발했고, 주최 측은 박성찬 비대위원장 발언을 제지했다.
이후 지하 2층 ‘기억의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제막식이 진행됐다. 제막식을 지켜보던 윤석기 위원장은 <뉴스민>과 인터뷰에서 “192명의 영혼과 유족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자리에 아무도 유족 대표에게 앞자리를 주지 않았다. 애국가 제창 도중 담당 과장이 이동희 의장 자리라며 비키라고 했는데 예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추모벽 사업 결과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추모벽 조성사업은 2005년부터 추진됐으나 피해자 단체간, 그리고 대구시 당국과의 갈등으로 지연됐다. 특히, 대구시가 2014년 8월 관련 예산 5억 원을 편성하고 같은 해 12월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사업 추진 업체 선정에 나섰는데, 추모벽 디자인을 선정 업체가 전담하며 “시민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지적을 제기한 김기수 추모벽 설치위원은 항의 뜻으로 추모위원에서 사퇴했다. (관련기사: 대구지하철참사 추모벽은 언제쯤…일방적 추진 진통)
윤석기 위원장은 “추모벽이 밀랍인형이 되면 안 된다. 진행 과정에서도 유족과 정서적 교감이 없었는데 추모벽이 의미를 가지려면 고통받는 당사자와 대화했어야 한다”며 “공청회든 공개적인 자리가 있었다면 사업이 더욱 잘 됐을 것인데 당국은 토목공사를 진행하듯 사업을 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박종률 대구시 사회재난과장은 “유족 단체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서 뒷줄로 배치했다”라며 “사업 과정에서 공청회는 없었지만,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유족들도 와서 지켜봤다. 공청회를 했으면 좋기는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권영진 대구시장은 “피해자 가족에게 (추모벽 사업이) 또다시 고통 안기는 것일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비통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아픔을 드러내고 다짐해야 한다”며 “제막식까지 어렵게 마음을 모았다. 추모벽은 기억의 공간, 안전교육의 장소,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구지하철 참사 관련 단체는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2·18대구지하철화재참사유족회, 지하철참사부상자대책위원회, 대구지하철화재참사비상대책위원회 4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