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파도를 걷는 소년”

소년. 제주에서 서핑을 만나다

16:24

1_최창환 감독의 제주도 정착 후 첫 ‘영화’

첫 장편 <내가 사는 세상>(2018)까지 대구를 배경으로 소외된 자들의 노동을 중심에 놓는 작업을 해 오던 최창환 감독은 어느 날 제주로 훌쩍 떠났다. 김녕 바닷가에서 생계를 위한 부업을 해가며 대구와 제주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고,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대표로서 활동 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어떤 감독은 자신의 영화와 궁합이 맞는 최적의 배경 조합이 종종 있다. 최창환 감독은 쉽게 영화하기 어려워 보이는 대구라는 공간에서 끈질기게 작품을 내놓았다는 점, 주류가 포착해내지 못하던 소외된 자들의 처지에 근접도가 높은 작품세계를 보여왔기에 주목을 받았다.새롭게 정착한 제주가 감독의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도 흥미로운 관심사일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대답으로 <파도를 걷는 소년> (2019)이 2020년 5월 14일 극장에서 개봉했다.

<파도를 걷는 소년>은 여전히 감독의 장기인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이 진하게 묻어나는, 감독의 인장이 찍힌 것 같은 작품이다. 전작 <내가 사는 세상>이 본래 중편으로 제작되었던 걸 확장했기에, <파도를 걷는 소년>은 감독이 마음먹고 처음부터 장편영화의 호흡으로 출발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 꾸준히 등장했던 요소들, 불안정노동, 주변부 청년세대, 이주민 등 한국사회에서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층위들이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묻혀있는 배경들을 감독은 이번 신작에서도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감독의 장기인 재료에 바뀐 것은 제주라는 새로운 그릇이고 그에 따른 조리기법의 변화가 뒤따른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함의 탈색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세계관의 확장으로 다가설 부분이다.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

2_’Mr. Nobody’, 무국적 인간 김수

‘김수’는 속칭 ‘조선족’, 중국동포 자녀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부재하며 어머니는 중국 최남단 하이난섬으로 돌아간 상태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불안정한 정체성을 가진 그는 같은 중국동포이자 동네 선배인 ‘갑보’의 사무실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취업과 숙소 브로커로 일하며 사채업 행동대원으로 일하며 방황하는 중이다. 이런 일에 종사하면 따라오는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상태다.

친하게 지내는 같은 처지의 동생 ‘현목’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던 그에게 해변 쓰레기 수거라는 임무가 미션 수행을 확인하는 대행처로 블루웨이브라는 서핑샵을 들러야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블루웨이브샵의 ‘똥꼬’와 ‘해나’는 김수와 길거리에서 부딪히던 사이다. 블루웨이브샵 사람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등쳐먹는 브로커 노릇 그만하고 서핑이나 배우러 오라고 시비인지 권유인지 모호한 이야기를 던진다. 하지만 김수에게 서핑이란 배부르고 할 일 없는 놈팡이들의 전유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밤길을 가던 그에게 쓰레기통에 버려진 부서진 서핑보드가 눈에 띄고, 뭔가에 끌린 듯 김수는 스쿠터에 한쪽이 날아간 보드를 싣는다.

그리고 애써 부서진 보드에 스티로폼으로 어설픈 수선을 시도한다. 방황하며 사기와 폭력이 일상이던 무국적 청년이 쓰레기통에서 애써 버려진 서핑보드를 끄집어내 고쳐보려 하는 순간은 최창환 감독이 연출의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이 바뀌는 과정”의 시작을 상징한다. 물론 사람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김수는 사회봉사명령을 성실히 수행할 생각은 애초에 없어서 동생 현목에게 떠넘기고 막걸리를 부어대다 그가 수선한 보드를 타고 남들처럼 근사하게 보드를 타보려 파도에 들어간다. 물론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보드 끝자락은 금방 떨어져나가고, 블루웨이브샵의 ‘해나’가 그를 만류하다 충돌한다.

영화는 청년물의 정석대로 흘러간다. 싸우면서 소통하고 교감한다. ‘제주’라는 지역성은 감독의 전작 <내가 사는 세상> 등에서 묘사된 대구의 지역성과는 사뭇 다르다. 감독의 전작들에서 묘사되던 ‘지방’ 광역시 대구의 삭막함과 대비되는, <파도를 걷는 소년>에서 드러나는 지역성은 이웃집 숟가락 숫자까지 다 꿰고 있는 향토 풍경에 가깝다.

수와 현목은 해나가 열혈청춘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캐릭터, ‘전설의 선배’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고분고분해지고, 티격태격하면서도 블루웨이브샵의 서퍼들에게 서핑을 배우기 시작한다. 기초부터 모래사장에서 배워나가는 과정은 수가 가게에서 영상을 보고 감탄하며 ‘나는 얼마나 하면 저렇게 탈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설명들과 맞물리면서 동화 속 판타지가 아닌 수가 자신의 삶을 의식하건 의식 못하건 바꿔보려는 시도와 조응한다. 블루웨이브의 서핑 동료들, 형 누나들과 어울리며 수는 이전에 갖지 못했던 공동체에 슬금슬금 끼어들고프다.

물론 시련이 없을 리가 없다. 블루웨이브 식구들도 다양하다. 외지인과 토착민이 섞여 있기도 하고, 첫인상이 불량하다 보니 수를 받아들이는 게 못마땅한 이들도 존재하지만 서핑이라는 문화 속에서 대도시의 경쟁 틈바구니가 아닌 이 공간은 비교적 따스한 편이다. 수와 현목은 그들이 속했던 세계와 너무나 다른 블루웨이브의 환하고 밝은 풍경에 매료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와 현목은 갚아야 할 빚, 모아야 할 목돈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며 수족처럼 부리던 갑보는 중국동포의 처지를 설파하며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일갈한다. 갑보는 단순한 악역이라기보단, <파도를 걷는 소년>에서 주요한 갈등 유발자, 반동인물에 가깝다. 여러 독립영화에서 인상적 연기를 보여준 강길우 배우가 분한 ‘갑보’는 수가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조건을 환기시켜주는 캐릭터다. 동네 친구 ‘해나’가 서핑 문화와 함께 큰 욕심 없는 삶을 택했지만, 갑보는 한국사회에서 소수자/열외자인 수나 자신 같은 존재들은 살아남기 위해 돈과 힘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갑보의 제안은 영화 중후반 클라이맥스로 수와 현목을 이끈다.

김수는 중국동포 2세라는 정체성에 속박되어 있다. 딱히 특출한 재능이 있어서 한국사회로 편입될 기회를 받지 못한 채 아마 인터넷 공간이라면 ‘중국으로 돌아가!’ 같은 혐오에 시달릴 전형적인 존재다. 하지만 정작 그는 중국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중국말을 할 줄은 알지만 어머니가 있는 하이난섬으로 돌아갈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가 나고 자란 제주도는 물론 한국에서 자리 잡고 살 대책은 부재한 상태다. 한국뿐 아니라 이민자나 빈곤층 청소년을 다루는 동서양 각국의 영화에서 수와 같은 인물들은 대개 구조적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파멸하거나 주저앉는다. 비극의 주인공 혹은 미래에 대한 희망 없는 나날을 반복하는 주변인물이 되기 딱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수의 길지 않은 인생에서 서핑이란 선물이 찾아오고, 그는 길을 찾아보려 한다.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의 한 장면

3_‘Surfin’ Korea’, 한국적 서핑문화

그런 수에게 서핑이란 어떤 의미일까? 물론 제주에서 살아가는 그가 요즘 국내에서도 레저로 주목받기 시작한 서핑 풍경을 안 봤을 리가 없다. 하지만 블루웨이브 식구들과 거리에서 맞닥뜨렸을 때나 이후 현목과의 대화를 통해 짐작해 보면, 수에게 서핑이란 주변에 있되 다가갈 수 없는 존재에 가깝다. 여유 있는 자들의 여가생활로 비싼 서핑보드 등 장비를 갖추고 폼 잡는 행태로 인식했을 것이다. 수와 현목은 동네 식당에서 술을 퍼마시는 게 여가의 거의 전부로 묘사되고 다른 취미는 드러나지 않는 부분과 대조된다. 하지만 <파도를 걷는 소년>은 이제 한국에서 제주와 속초 양대 근거지를 중심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서핑 문화에 대해 영화 속 수는 물론 많은 이들이 갖고 있을 서핑에 대한 선입견, 즉 부정적으론 있는 자들의 폼 잡는 행태로 비치는 부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상당 부분 의도한 흔적이 보인다.

앞서 외국의 프로 서퍼들 영상을 보면서 감탄하는 수에게 블루웨이브샵 식구들이 설명하는, 저건 국내에선 시도할 수 없는 조건과 최고 수준의 프로 선수들이 조합된 것일 뿐이라는 점, 자신들 또한 서핑을 위해 번듯한 직장이나 대도시의 편리함을 버리고 뭔가에 미쳐 빠져 있으며 서핑이 주는 자유와 쾌감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하거나 서핑을 즐기는데 삶의 방식을 맞춰내고 있음을 드러내며 단순한 유한계층의 레저 스포츠가 아니라 힙합이나 펑크처럼 대중문화의 한 방식이라는 점을 영화는 잊을 만하면 끈덕지게 설파한다.

감독 자신의 제주도 정착 경험과 연결되는 지점일 테다. 또한 수와 현목이 근사한 파도타기가 아니라 백사장에 배를 깔고 기초 연습에 투덜거리는 순간이나 해변 청소 등의 일반인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는 환경 보전에 대한 서퍼들의 실천, 서핑 동료들의 공동체 이미지 등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최창환 감독은 그가 이주하면서 경험하고 푹 빠지게 된 서핑 문화에 대해 온전하게 알리고픈 의지를 영화 내내 감추지 않는다.

또한 한국사회 내 이주민에 대한 관심은 감독 자신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컷과 영화 속 엑스트라로 출연한 난민과 이주노동자 섭외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그저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블루웨이브 공동체가 ‘서핑’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한다면 큰 차별이나 경계심 없이 구성원으로 편입하는 개방적 면모와 결합되어 영화 외적으로 난민과 이주노동자 현안에 대한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면, 수가 변화를 꾀하려는 결단에 이르는 과정은 단지 레저 스포츠로서의 서핑이 아니라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서퍼들의 삶과 문화가 그가 바라던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에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헬조선’이나 ‘흙수저’ 담론이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의 길로 나아가는데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기능에서 이탈하는 순간 ‘환경결정론’으로, 즉 체념과 냉소의 기운만 남을 때의 순간이 <파도를 걷는 소년>에선 갑보의 세계관으로 기울어지는데 영화는 최창환 감독의 전작 <내가 사는 세상>에서 두 주인공, 민규와 시은이 영화 막판에 처하는 절망의 기운과는 다른 결말로 전개된다. 이 대목은 감독이 오랜 시간을 활동했던 대구에서 제주로 무대를 옮기면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고 상상해본다.

4_‘Fantastic Island’, 제주도

<파도를 걷는 소년>의 주 무대인 제주도는 특이한 땅이다. 물론 이 영화는 제주의 토착성을 극대화하는 오멸 감독의 작업들에 비해 제주의 역사성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어도 소화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영화 초반, 수가 세 들어 사는 집주인과의 대화하는 장면은 자막이 없다면 대부분 알아듣기 힘들 것이다. 그저 제주의 이국적 풍광을 배경 이미지로 소비하곤 하는 영화들이 상당수 있는데 반해 <파도를 걷는 소년>은 이제 갓 자리를 잡은 이주자의 눈높이로 제주라는 공간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의 한 장면

우리에게 제주란 어떤 지역인가? ‘탐라’는 유배자들의 땅이자 몽골 제국이 말을 키우던 변경이었고, 헨드릭 하멜과 동료들이 표착했던 곳이자 이재수의 난과 4.3항쟁이라는 비극적인 근현대사의 무대이기도 했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국제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너무 좋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강정마을의 투쟁과 함께 지역을 넘어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압축판이 되었다.

국내외를 넘어 외지인들의 부동산 열풍과 난개발 문제, 이로 인한 환경파괴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무사증 제도로 인한 예멘 난민 문제가 한국사회의 차별과 혐오 논란이 벌어진 곳이기도 했다. 감독이 카메라로 조명한 제주는 딱 그런 혼란이 일상화된 풍경이다. 거리에는 다양한 사연으로 도착한 외지인들이 쏟아지고 있고, 이미 원주민과 외지인의 경계는 허물어진 것처럼 보인다. 제주 출신이 아니라면 현지 원주민의 시각에선 섬 바깥의 한국인들 또한 외지인이 아닐까. 예멘 등 중동계로 보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과 중국계가 어우러진다. 사실 이 영화 속에서 현지 주민은 셋집 주인아주머니밖에 없기도 하다.

감독에게 제주라는 환경은 위에서 거론한 혼란의 도가니이기도 하지만 정체되지 않고 역동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관객이 영화 속 인물과 배경을 상상하던 것과, 관람과정을 거쳐 영화 속 내용과 전개를 통한 제주도에 대한 인식 변화는 감독의 이전 작업에 비해 확장된 세계임은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감독의 주제의식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재상이었던 이사가 외국인(당시 진을 제외한 육국 출신)들을 내쫓으라는 왕족과 귀족가문의 ‘축객령’에 답으로 내놓았던 “간축객서”의 명문장과 통하는 듯 보인다.

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 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아 그 높이를 이루었고, 황하는 한 줄기의 시냇물도 가리지 않아 그 깊이를 이루었다’

벽을 만들고 국적을 따지면서 내국인/외국인, 원주민/외지인을 구분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취할 것 취하고 교류하는 게 이득이 된다는 함축적 표현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영화에서 유일하게 제주를 벗어나는 풍경이 펼쳐지는 엔딩 크레딧 이미지는 감독이 전하려는 이야기를 영상 메시지로 관객에게 옮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마무리는 꽤 근사하다.

5_‘작가’로 ‘굴기’하려는 전환점의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

영화를 보다 보면 기묘한 순간들이 발생한다. 감독은 전작 <내가 사는 세상>의 적외선 필터를 거친 흑백 톤은 물론, 이전 단편들에서 만만찮은 촬영테크닉(최창환 감독은 촬영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에도 불구하고 음울한 색채감을 선보여 왔는데, 제주라는 공간, 특히 서핑이 펼쳐지는 남국의 바다는 너무 환하고 밝다. 분명 같은 한국인데도 차가운 대도시의 풍경과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의 풍경은 영화를 보는 이는 물론, 영화 속 인물들의 생각이나 태도에도 영향력을 드리웠음이 느껴진다.

자연환경이 온난하고 여유로울수록 좀 더 낙천적인 사고와 문화를 가질 개연성은 충분하다. 애초에 블루웨이브의 서퍼들 또한 대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땐 <파도를 걷는 소년>에서 보이는 표정과 여유로움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존재들이었을 테니. 그들은 한국자본주의 첨단에서 ‘탈주’해 숨 쉴 틈을 찾아 제주로 망명하거나 이주한 이들이며 감독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는 셈이다.

대구라는 (바깥에서 보는 편견과 사실 크게 다르지도 않은) 척박한 영화작업 환경에서 어떻게든 영화를 생산해내는 것만으로도 작은 주목을 받던 데에서 벗어나 근작 장편 두 편이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극장 개봉을 성사하는 위치에 오르기 시작한 대기만성 독립영화인으로 최창환 감독의 위상이 변모한 지금, <파도를 걷는 소년>이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평가는 아마 감독의 차기작 완성을 목격하는 순간 정해질 것 같다.

최창환 감독의 작업속도는 그리 느린 편은 아니다. <파도를 걷는 소년> 이후 이전부터 끌어왔던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단편을 추가로 완성했고, 본 영화가 이제 갓 개봉하는 상황에서 이미 느와르 물로 전해지는 차기작 촬영을 준비하는 중이다. 무협 장르 작품도 도전할 예정이라 전해 듣기도 한바, 창작욕이 (여건만 받쳐준다면) 근래에 퍽 왕성한 감독이기에, 감독의 장기인 (서브 컬쳐까지 포괄하는) 사회적 소재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극단적이지 않으면서도 사실적인 조화를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가 (감독의 야심대로) 좀 더 다양한 장르적 접근과 보편적 세계관으로 관객에게 받아들여지는 ‘작가’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최창환 감독

제주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대구경북 독립영화인들의 ‘큰형님’ 혹은 ‘큰누나’ 뻘로 후배 동료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담히 수행하고 있는 최창환 감독이 10년 후에도 본인 이름을 건 신작에 대한 기대감과 동료 독립영화인들에게 자극을 주는 경쟁자로 위치해 있다면, 대구경북의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는 바뀌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작품정보>

파도를 걷는 소년 The Boy From Nowhere
한국|드라마|2019
2020.05.14 개봉|97분|15세관람가
(감독) 최창환
(주연) 곽민규, 김현목, 민동호, 김해나

20회 전주국제영화제(2019) 한국경쟁 특별언급상, 한국경쟁 배우상
7회 무주산골영화제(2019) 경쟁(영화 창(窓)
21회 정동진독립영화제(2019) 초청
20회 대구단편영화제(2019) 초청
2회 제주혼듸독립영화제(2019) 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