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청소년 드라마는 199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1993년부터 3년간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사춘기>가 인기를 얻자, 지상파 3사는 앞다퉈 청소년 드라마를 제작했다. 단골 주제는 학교생활이나 진로 고민, 이성 문제, 가족 갈등과 이해 등이었다. 학교폭력과 집단 괴롭힘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이후로는 학교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다뤄졌다. 어른의 눈높이에서 청소년 드라마가 제작되어 수위는 건전한 편이었다. 대부분 반항기 어린 청소년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성장하는 교훈적 이야기로 전개됐다.
이런 측면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은 파격적이다. 이 드라마는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청소년 드라마에 범죄 장르가 결합된 탓이다. 미성년자 성매매라는 민감한 소재를 비롯해 욕설과 폭력, 선정적 표현은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 채널에서도 다루기 어렵다. 넷플릭스는 선정성과 폭력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인간수업>을 향한 반응은 엇갈린다. 10대 범죄를 미화한다는 비판과 한국 드라마의 금기를 깨고 현실을 직시한다는 호평이 부딪힌다. <인간수업>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나뉘지만, 의견이 갈림 없이 모이는 건 드라마의 소재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해 텔레그램에 유포한 ‘n번방’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특성상 ‘n번방’ 사건이 터지기 전에 드라마 제작이 완료됐지만, 공교롭게도 n번방 사건과 맞물리게 됐다.
n번방 사건과 별개로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다. 사실적인 묘사와 촘촘한 사건 전개가 긴장감과 공포감을 높인다. 주인공 지수(김동희)는 학교에서 모범생이지만, 실상은 조건만남을 알선하는 포주 ‘삼촌’이다. 이유는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환경 때문이다. ‘남들처럼 대학에 가고, 남들처럼 살기 위해’ 범죄로 돈을 번다. “클라이언트들 의뢰받고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지, 고객관리 대리해 주지, 픽업 중개하지. 이게 어떻게 포주야?” 자기 연민으로 똘똘 뭉친 지수는 자신을 포주라고 말하는 규리(박주현)에게 경호업자라고 변명한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우등생 규리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척’하며 억압된 삶을 산다. 지수와 동업으로 돈을 벌어 부모로부터 독립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수의 범죄에 거리낌 없이 참여한다. 규리는 지수보다 한술 더 떠 자신과 친한 유도부 남자 선배들과 부모의 연예기획사 아이돌 연습생이 몸을 팔면 안 되냐는 제안을 한다.
<인간수업>의 서사를 관통하는 메타포는 지수의 ‘소라게’다. 모범생이라는 껍데기에 가려진 지수의 실체는 조건만남의 포주다. 조건만남 앱과 목소리 변조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껍데기로 활용된다. 부모를 경멸하는 규리에게 벗어나고 싶은 껍데기는 부모다. 학교에서 이상적인 학생인 둘은 학교 밖을 나서면 비정상이 되는 것을 비유한다.
지수와 규리의 겉모습은 한국의 청소년에게 요구되는 이상향이다. 우수한 학업성취도, 원만한 교우관계, 단정한 품행, 명확한 진로 설정, 강한 자립감과 자존감···.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청소년에게 거는 기대는 정상적이지 않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조건을 갖춘 지수와 규리는 사회가 원하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 애초 틀린 답이 명시된 문제를 풀게 한 것이다. 사회가 청소년에게 비정상적인 삶을 요구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수, 규리와 같은 반인 민희(정다빈)는 조건만남으로 돈을 번다. 지수가 관리하는 조건만남 여성 중 한 명으로, 남자친구와 데이트 비용을 벌기 위해 조건만남을 시작했다. 지수의 사정으로 일이 끊겼을 때부터 성매매를 그만두라는 조건만남의 바지사장 왕철(최민수)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왕철과 민희의 관계는 <레옹(1994년)>의 레옹과 마틸다를 흉내 낸 것으로 보인다.
민희는 “조건(만남)도 안 하면 나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왕철을 의지한다. 왕철은 민희의 애틋한 보호자로 변한다. 급기야 왕철은 교사도, 경찰도 구하지 못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비장미 넘치는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한다. 민희의 남자친구 기태(남윤수)는 학교폭력을 주도하는 일진이다. 민희의 조건만남을 눈치챘지만 묵인해왔다. 그는 죄책감이 아니라 자존심이 상해, 조직폭력배의 소굴로 쳐들어가 싸움을 벌인다.
<인간수업>에 등장하는 10대 주인공들은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 공통점은 범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범죄는 선악의 여부를 떠나 삶을 지탱해주는 수단이다. 하지만 불우한 가정환경 등의 이유로 비뚤어진 길을 걷는다는 서사는 소재에 대한 거부감을 비껴가기에 빈약하다. 주연들에게 부여된 과도한 서사 때문에 범죄를 미화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드라마는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게 면죄부를 주는 식의 계도로 결말을 이끌어가지 않는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더 깊은 범죄의 수렁에 빠트리고, 벼랑 끝에 내몰아 범죄자의 추악한 속내를 털어놓게 만든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설정과 전개가 심화된다는 점이다. 학교 안과 밖의 경계를 지워 범죄에 연루된 10대들이 과연 기성세대가 만든 뒤틀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던 의도는 옅어진다.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중반부터는 드라마의 장르가 심리스릴러와 누아르의 혼종으로 변형된다.
<인간수업>은 자극적인 파국을 통해 청소년의 일탈과 방황, 범죄를 부추기고 방관하는 사회의 음울한 현주소를 그려낸다. 그렇다면 사회에 의해 대학입시가 최상위 가치가 되어버린 10대가 어른들이 만든 모순적 가치와 질서에서 낙오되거나, 소외되면 어떻게 살아가는지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만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말았어야 했다. 이런 청소년에게 형성된 정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집요하게 묻고 답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제작의도인 죄의 본질은 무엇인지, 죄가 왜 나쁜 건지 다뤄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른들이 모르는 10대의 불안정한 내면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도 됐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