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기대주로 꼽힌다. 그의 장편 데뷔작 <파수꾼(2010년)>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을 통해 얻은 제작비 5,000만 원으로 제작됐다. 누적 관객 수는 2만 6,000명에 불과하지만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이 쏟아졌다. 흔한 주제인 학교폭력을 성장물이나 학원물이 아닌 ‘관계의 문제’로 차별성 있게 풀어낸 덕분이다. 연출도 뛰어나다. 특별한 장치나 효과 없이 세 청년의 대사와 감정처리만으로 관계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사냥의 시간>은 한국 영화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윤 감독이 9년 만에 각본과 감독, 기획, 공동제작한 영화다. 총제작비는 110억 여원으로, <파수꾼>에 비해 2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런 이유로 윤 감독의 차기작 <사냥의 시간>은 2020년 상반기 가장 기대되는 영화로 주목받았다. 지난달 23일 온라인 영상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동시 공개된 이후, 다양한 평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호평보다는 혹평에 공감된다.
영화의 배경은 경제가 파탄 난 가상의 한국이다. 도시는 스모그가 자욱해 잿빛을 띤다. 건물들은 부서지고 녹슬어 빈민가를 이룬다. 낮에는 시위대가 거리를 메우고, 밤에는 총성이 울려 퍼진다. 암울한 시대에 희망 없는 청년들은 지하클럽에서 모여 술에 취한다.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은 불법 도박장에 몰려든다. 통용되는 화폐는 달러다. 한화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무국적 공간의 인상을 주기 위해서일 테지만, 이런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어딘가 어색하다. 폐허로 변한 도시와 그래피티로 칠해진 벽,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유행한 유럽의 파쿠르 액션영화에서 등장하던 빈민가와 흡사하다. 한국만의 미래 풍경이 아니라 유럽 빈민가를 옮겨놓은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134분의 러닝타임 내내 윤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준 스토리텔링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준석(이제훈)이 절도죄로 수감됐다가 3년 만에 출소하면서 시작된다. 친구 장호(안재홍)와 기훈(최우식), 상수(박정민)와 만난 준석은 폭력조직이 소유한 불법도박장을 털 계획을 세운다. 금융위기로 몰락한 한국을 떠나 대만의 바다 한복판 섬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다. 범행을 모의하는 도입부는 길지 않다. 주연들이 쉬지 않고 욕설을 내뱉으며 범행을 모의하고, 총기를 챙겨 도박장을 습격하는 과정은 간결하다.
허점은 준석 패거리를 인간 사냥꾼 한(박해수)이 추격하면서 발생한다. 경쾌한 범죄 오락 액션의 형태를 띠던 영화의 리듬이 갑자기 더디게 흐른다. 속도는 늦추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검붉은 색감이 가득한 배경과 불안감을 높이는 음악으로 긴장감을 한껏 높인다. 하지만 이때부터 비약이 심해진다. 한은 준석 패거리를 잡아놓고 다시 놔준다. 삶에 체념한 준석의 반응에 호기심이 일어 사냥의 쾌감을 즐기기 위해서다. 이때부터 영화가 페이스를 잃고 휘청거린다. 헛된 꿈에 사로잡힌 네 청년에서 추격자 한으로 무게 중심이 갑작스레 옮겨지기 때문이다.
추격전의 기본 얼개는 뒤쫓는 자가 추격당하는 대상의 정체와 동선을 파악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거나, 도주하는 자가 한 끗 차이로 쫓아오는 대상을 피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준석 패거리는 피와 땀으로 범벅돼 실체를 모르는 인물로부터 도망친다. 한은 다시 준석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한이 왜 이렇게 준석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8년)>에서는 추격의 이유가 분명하다. 그래서 관객은 추격전에만 몰두할 수 있지만, <사냥의 시간>은 그렇지 않다.
한의 사냥 배경 외에도 장호가 불법도박장에서 훔쳐 온 외장하드에 든 거래내역의 실체, 상수, 기훈의 최후, 총포상 형제 봉식, 봉수(조성하)의 이야기, 준석의 자전거숍 의미 등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는 의문점도 해소 못 한 상황에서 후속편을 암시하는 결말에 과욕을 부리는 지경에 이른다. 개연성이 상실되는 부작용 말고도 단점이 많다. 수많은 단점들 가운데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파수꾼>에서 극찬을 받은 미묘한 감정선이 <사냥의 시간>에 없다는 것이다. <파수꾼>은 야구공이 이후에 과연 어디로 던져지는지 우리는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아야만 했었는데, <사냥의 시간>은 준석의 총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