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도덕적인 인간과 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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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도덕은 무의미하다. 뱃속에 알을 낳는 거미는 어미를 파먹고 자란다. 사마귀 암컷은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을 잡아먹는다. 북극곰은 생존이 위험할 정도로 굶주리면 자기 새끼까지 잡아먹는다. 본성 때문이다. 도덕을 따지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하지만 곤경에 처하거나,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오면 인간은 도덕의 잣대에서 벗어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일본의 소설가 소네 게이스케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는 소설의 설정을 거의 그대로 따왔다. 소설에서는 치매 노모를 돌보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환갑의 남성과 사라진 애인 때문에 폭력조직에 상시로 위협받는 형사, 거액의 빚을 진 뒤 출장 매춘업소에서 일하게 된 주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주부는 투자한 돈이 잘못되면서 남편에게 경멸과 폭행을 당하는 나날을 보낸다. 아르바이트 출장 매춘에서 만난 연하의 남자는 그녀의 사정을 알고 남편을 죽여주겠다고 하는데 그 밀회가 들켜 남편이 분노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 없이 뒤섞여 진행되다가 거액이 든 돈 가방이 등장하면서 하나로 꿰어진다.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하는 세 사람의 타임라인을 절묘하게 뒤섞는다.

영화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팔자를 바꿔보려는 인간이 눈앞에 나타난 거액 때문에 추악한 본성을 드러낸다는 이야기다. 감쪽같이 사라진 연인 연희(전도연)의 보증을 선 항 출입국관리사무소 행정관 태영(정우성)은 사채에 시달린다. 독촉하는 사채업자 박 사장(정만식)이 두려워 한탕을 하는데 몰두한다. 잘나가던 횟집이 망하고 사우나 아르바이트로 가족 생계를 잇고 있는 중만(배성우)은 부인 영선(진경)과 딸의 눈치를 보며 치매에 걸린 노모 순자(윤여정)를 부양하고 있다.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오른 미란(신현빈)은 몰래 주점에서 돈을 벌고 있지만, 남편(김준한)에게 늘 폭행을 당하고 멸시를 받는다.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를 통해 남편을 살해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이들 사이의 연결고리는 돈 가방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 앞에 돈 가방이 나타나고, 이들은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돈 가방은 계속해서 떠돈다. 절박한 이들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위해 모든 걸 내걸고 돈 가방을 손에 넣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인다.

영화는 책을 보는 것처럼 장(Chapter)을 나눠 각 인물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형식이다. 극이 시간 순서대로 흐르지 않지만 그다지 혼란스럽지는 않다. 각 인물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돈을 향한 아귀다툼을 경쾌하고 세련되게 담아냈다. 누구나 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악한 본성을 드러낸다는 설정은 친숙하다. 다만 이야기 전개방식은 익숙한 듯 새로운 재미를 안겨준다. 특히 흩어진 퍼즐을 맞춰가듯 진행되는 서사는 몰입도를 높인다. 19세 이상 관람가치고 표현 수위가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인물들이 입체적이지 않다. 방대한 인물들을 108분 러닝타임 속에 욱여넣기 위해 특징은 강하게 담고 각자의 이야기를 잘라낸 탓이다. 먼저 조선족 불법체류자 진태와 미란의 캐릭터가 급격하게 바뀌는 게 흠이다. 영화 초반 장난삼아 살인을 운운하던 진태는 난데없이 미란을 연모해 살인을 저지른 뒤에는 유약한 인물로 변한다.

진태를 연기한 배우 정가람은 연변 사투리가 어색하다. 미란은 극중 가장 감정선이 복잡한 인물인데, 변모하는 캐릭터의 입체성을 잘 나타낼 정도로 비중이 높지 않다. 화면에 짧게 비추는 탓에 배우 신현빈의 호연이 묻힌다. 숱하게 사채업자를 맡아 사채업자 전문배우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배우 정만식은 등장만으로 위화감을 조성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전도연보다 살벌하지는 않다.

러닝타임을 늘리고 서사에 방해되지 않는 인물을 줄여 주요 인물의 비중을 높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욕망과 동시에 재앙을 상징한다. 돈 때문에 믿음을 져버리고, 돈 때문에 하지도 않을 짓을 한다. 돈 앞에서 휘둘리는 인간은 한낱 짐승이 되기 십상이다. 도저히 감당 안 되는 빚에 시달릴 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지만 일자리를 찾기도 만만치 않을 때, 암울한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고 싶을 때, 절박한 상황에 거액이 든 돈 가방을 마주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