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총선에서 유일하게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내걸고 당선된 김부겸 국회의원은 4년 만에 다시 견고한 보수층의 벽에 고배를 마셨다. 21대 총선 수성구갑 선거구 득표 현황을 살펴보면 김 의원의 패배는 선거 당일인 15일 보수층 결집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은 코로나19 라는 유례 없는 감염병 위기 속에 치러졌음에도 20대 총선보다 8.2%p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이제는 완전히 자리 잡은 사전투표의 영향도 있지만, 양 진영으로 나뉜 지지층의 적극적인 투표 열기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대구는 20대 총선과 비교해서 12.2%p나 투표율이 올랐다. 20대 총선에선 54.8%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67%로 전북과 함께 일곱 번째로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대구의 높아진 투표율은 선거 막판 미래통합당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보수층이 결집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국적으로 20대 총선 대비 10%p 이상 투표율이 증가한 곳이 대구를 비롯해 부산(12.3%p), 경남(10.8%p) 같은 통합당 우세 지역이라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더불어민주당은 20대 총선과 비교해 부산에선 2개 의석을 잃었고, 경남에선 정의당이 1개 의석을 잃은 것도 보수층 결집을 보여주는 다른 근거다.
부산·경남 민주당 당선자들도 민홍철, 김정호 당선자를 제외하면 1~2%p 차이 신승을 거뒀다. 민홍철(경남 김해시갑), 김정호(경남 김해시을) 당선자도 20대 총선이나 2018년 보궐선거 대비 통합당 후보와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대구, 부산, 경남 다음으로 투표율이 많이 오른 곳도 경북(9.7%p), 울산(9.4%p)이다. 투표율이 올라간 광역시·도 상위 다섯 곳 모두 통합당이 우세한 영남권이다.
선거 초반 정권심판론을 들고나온 미래통합당은 차명진, 김대호 후보의 막말 파동 등 전국적 위기감이 고조되자, 개헌 저지선도 어렵다며 읍소 전략을 펼쳤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범여권 180석도 가능하다고 한 발언도 보수층 위기감에 기름을 부었다. 그 결과가 영남권 보수층 결집으로 드러난 것이다.
수성구갑의 경우 10, 11일 이틀 동안 진행된 사전투표만 놓고 보면 김부겸 의원이 주호영 의원에게 뒤지긴 했지만, 당선가능성이 아주 없지 않았다. 관외·관내 사전투표와 거소·선상 투표, 국외 부재자 투표에서 김 의원은 2만 8,389표를 얻어서 3만 3,596표를 얻은 주 의원에게 8.3%p 뒤졌다.
격차는 본 투표를 거치면서 20.5%p까지 늘어났다. 사전투표까지 45.5%였던 김 의원 득표율은 39.3%까지 떨어졌고, 53.8%였던 주 의원은 59.8%까지 올라갔다. 상대적으로 김 의원의 지지층은 사전투표에 많이 나왔고, 주 의원의 지지층이 본 투표에 쏟아졌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두 의원이 최종적으로 얻은 득표수에서 사전투표 등 투표 당일 외 투표에서 얻은 비중을 살펴봐도 투표 당일 보수층의 결집이 드러난다. 김 의원은 전체 득표 6만 462표 중 47%를 사전투표 등에서 얻었고, 주 의원은 9만 2,018표 중 36.5%만 사전투표 등 당일 외 투표에서 얻었다.
보수결집은 김 의원이 대권 도전을 선언하며 주안점을 뒀던 ‘인물’ 선거 전략도 반감시켰다. 대구에서 출마한 다른 후보들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정도만큼 득표하는 반면 지난 총선에서 김 의원이 민주당 지지율을 넘어서는 지지를 얻어 당선된 건 인물론이 먹혔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관외사전 투표 등 행정동을 구분할 수 없는 표를 제외하고 민주당이 올린 비례득표 2만 4,096표 보다 약 6만 표 더 많은 득표를 해서 당선했다. 국민의당 지지표 2만 2,118표나 정의당을 지지한 8,405표를 더해도 김 의원이 얻은 8만 4,911표에 약 3만 표 부족하다. 정당은 자유한국당을 지지해도 지역구 후보는 김 의원을 지지한 유권자가 상당수 있었다는 의미다.
21대 총선에서도 김 의원은 관외사전 투표 등 행정동을 구분할 수 없는 표를 제외하고 더불어시민당이 올린 비례득표 2만 1,992표 보다 약 4만 표 많은 득표를 했다. 열린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 등이 득표한 2만 7,367표를 더해도 1만 표를 더 얻었다. 하지만 보수층 위기론이 높아지면서 통합당 지지층의 이탈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김 의원은 15일 지지자들에게 “농부는 자기가 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는 패배했지만 계속해서 수성구와 대구를 지켜나가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전했고, 16일 페이스북에 “대구에 바쳤던 제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다. 지역주의 극복과 통합의 정치를 향한 제 발걸음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낙선 인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