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는 않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 그리고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는 이들. ‘고독사(孤獨死)’, ‘무연사(無緣死)’. 대구반빈곤네트워크에 따르면 2015년 대구지역에서만 62명의 무연고 및 노숙인이 생을 마감했다. 이들의 시신을 당연히 해부용 시체로 쓰이던 관행에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걸자, 일부 의원들이 개정안을 발의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무연고자 시신을 생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해부용 시체로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시체해부법)’에 대한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시신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그러자 11월 30일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 포함 10명의 국회의원은 시체해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체 본인의 생전 반대 의사가 없는 한’이라는 제한규정을 추가한 것이다.
동지를 맞아 ‘2015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가 대구반빈곤네트워크 주최로 12월 22일 저녁 대구 2.28공원에서 열렸다. 시민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을 맞이한 노숙인을 기리며 빈곤층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2.28공원에서 팥죽을 나눠 먹으며 온기를 나눴다. 2.28공원 무대에는 62명의 무연고 및 노숙인 사망자 위패와 분향소가 마련됐다.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 소장은 “올 한 해 대구에서만 62명의 무연고, 노숙인이 사망했다”며 “동절기에 노숙인과 쪽방거주민들의 삶은 더 어렵고,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들의 넋을 위로하며 빈곤층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쪽방을 거쳐 희망주택에서 사는 변영호(51) 씨는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제발 돌아가지 말고 내년에도 보면 좋겠다”며 “공공근로를 하루 6시간으로 제한해서 달서구 모 의원에게 전화했더니 공공근로가 무엇인지 모른다. 방산비리, 4대강 예산만 해도 복지예산은 충분한데 돈이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지적했다.
가수 박성운 씨와 신경현 시인은 노래와 시낭송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넋을 위로했다.
신경현 시인은 “연말연시 들뜬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삶을 더 잊혀져 간다”며 “한 사람 인생과 죽어간 자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우 주거권실현대구연합 사무국장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이가 사는 집을 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이라며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6백만 가구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거빈곤층이다. 오는 24일부터 주거기본법이 시행되는데, 좀 더 나은 삶을 보장하도록 요구를 하자”고 말했다.
박남건 대구희망진료소 의료팀장은 “진료소를 찾는 쪽방거주민들에게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하면 내가 큰 병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며 10명 중 4명은 마다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책이 있지만, 문턱 높은 3차병원에 가면 비급여, 선택진료, 보호자, 간병인 문제에 늘 부디친다”라며 “거리에 있다고 쪽방에 있다고 이 나라 국민이 아닌 건 아니다.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조금 더 촘촘히 마련한다면 덜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제는 극단 함께사는세상 배우 조인재 씨의 공연과 분향소 헌화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올해로 대구에서 7회째인 추모제가 더는 열리지 않는 봄은 언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