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정을 못 했어요”
“뭐 때문에 망설이세요?”
“미래를 볼 것인가, 현재를 볼 것인가죠, 결국. 대구도 인물을 키워야 할지. 원래 가던 대로 가야 할지”
11일 낮 2시께, 고산1동 사전투표소로 지정된 고산건강생활지원센터 주차장 앞에서 이곳 주민 최모(56)씨를 만났다. 사전투표를 하러 부인과 함께 센터를 찾은 그는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참이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나오려구요”라는 그에게 지지할 후보는 선택했느냐고 물었다. “아직 결정 못 했어요” 그는 망설이듯 말했다.
최 씨는 2016년 20대 총선거에선 김부겸 의원에게 표를 줬다. 그의 부인 역시 마찬가지다. 최 씨가 망설이는 이유는 현재와 미래의 다툼이었다. 김부겸은 ‘미래’이지만, 미래를 기다리기엔 현재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 씨는 “대구에도 인물이 있어야 하지만, 서민들은 결국 경제다. 내 뒤주가 넉넉해야 다른 사람도 생각하는데, 정말로 (여권에) 정권을 맡겨도 되겠는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망설임을 남기고 떠난 그의 뒤로 끊이지 않고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곳에서 주차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50대 남성은 “아침엔 별로 없었는데 점심 이후로 늘어나네요. 나는 참, ‘대단하다. 이게 선진국이 아닌가’ 생각해요”라고 직접 느낀 투표 열기를 전했다. 10, 11일 이틀간 진행된 사전투표에서 수성구는 투표율 29.08%를 기록했다. 전국 투표율 26.69%보다 2.39%p 높고, 대구 구·군 중에선 가장 높다.
특히, <한겨레>와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가 2012년 이후 6차례 전국 단위 선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고산1동은 대구 다른 지역처럼 미래통합당 우세 지역이지만,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 간 격차가 가장 적은 동네다. 고산건강생활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좌우에 자리잡은 아파트 단지가 6차례 선거에서 민주당이 우세한 결과를 보였다.
실제로 2012년, 2016년 총선 결과만 놓고 보면, 김부겸 후보는 선거구 내 행정동 중 고산1동에서 가장 높은 득표를 했다. 김 후보가 처음 대구에 도전한 2012년 총선에서 김 후보는 40.4%를 득표해 낙선했다. 고산1동에선 선거구 전체 득표율보다 5%p 가량 높은 45.3%를 얻었다. 2016년엔 62.3%를 얻어 당선했고, 고산1동에선 63.9%를 얻었다.
신매동에 사는 오모(64, 남) 씨도 김 후보를 지지했고, 현재도 지지하는 시민 중 1명이다. 그도 최 씨처럼 늘어선 줄 때문에 투표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참이었다. 오 씨는 “줄이 길어서 운동 한 바퀴하고 와서 투표를 할 생각”이라며 “개인적으론 김부겸이 됐으면 한다. 여론을 보니 박빙이더라”고 말했다.
오 씨는 2012년 대선까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보수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만 진보이고 그런 건 아니”라며 “나이 많은 사람도 학력이 높은 사람은 진보로 치우친다. 박근혜 정부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미래통합당 때문이다. 최근에 말실수도 두 건 나왔다. 그런 걸 보면 아직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에서 이번에 과반이 되면 탄핵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희한하게 대통령을 뽑아놓으면 뽑을 땐 좋아하고 2, 3년 지나면 어쨌든 끌어내리려고 한다. 그러면 누가 대통령을 옳게 할 수 있나”며 “코로나 때문에 경기도 안 좋고, 모든 국민이 어려워한다. 모두가 ‘으샤으샤’해서 가야 하는 시국”이라고 여권에 대한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경태(21, 남) 씨 같은 젊은 층은 ‘최선 보다는 차악’을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김부겸 후보에게 표를 줬다고 한다. 생애 첫 투표에 참여한 김 씨는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후보자들보다 나은 것 같아서 김부겸 씨를 지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 후보가 내건 ‘대권 도전’이나 주호영 후보가 내건 ‘정권 심판’ 슬로건에 모두 공감하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이 내건 메시지에는 전혀 공감이 안 된다, 제 신념이 좀 더 가까운 곳이어서 김 후보를 선택했다”며 “차별 문제에서 진보 진영이 조금 더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지역구 후보 선택과 비례대표 선택을 달리했다. 다만 또래 친구들 사이에선 김 후보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다고 귀띔했다.
물론 이모(47, 남) 씨처럼 적극적인 민주당 지지층도 있다. 그는 지지한 후보를 명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조국 사태에 대해서 적극적인 민주당 지지층과 의견을 같이했고, 주 후보의 ‘정권 심판’을 비판했다.
그는 “조국 씨 문제는 아직 판결이 안 났다. 그 시대 부모님들이 다들 애들 스펙을 만들어줬고, 그것과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과거에 야당이 한 잘못에 비하면 이런 건,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주 후보의 ‘정권 심판’ 슬로건에 대해선 “왜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는 건지 동의하지 않는다. 더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서광수(62, 남) 씨처럼 분명한 보수 성향 유권자도 만날 수 있었다. 서 씨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표를 준 적이 있지만, “국정 운영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사회주의 성향의 사람들은 국가 경제를 파탄하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더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안 하는 사람이나 똑같이 해주면 누가 열심히 하겠나?”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나, 북한에는 쩔쩔매고, 그걸 비판하는 사람은 탄압하는 걸 보면 그 방향(사회주의)으로 간다고 본다”며 “우리나라를 사회주의에서 방지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애초 고산1동 지역도 보수적 성향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2016년 총선에서 김 후보가 가장 높은 득표를 하긴 했지만, 민주당 정당 득표율은 22%에 그쳤다. 상대였던 김문수 후보는 고산1동에서 36.1%를 얻었지만 새누리당(옛 미래통합당)은 46.8%를 얻은 것과 대조된다. 정당은 새누리당을 지지해도 김문수 후보를 선택하는 대신 김부겸 후보를 선택하는 유권자가 다수 있었다는 의미다.
여모(63, 여) 씨가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선거에선 김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배신감이 큰 듯, 이야길 나누는 도중에 두 눈이 붉게 충혈됐다. 여 씨는 “박근혜 정부가 잘못했으니까 당연히 사과를 했으면 좋았을 거다. 하지만 그걸 지겹도록 적폐청산이라고 물고 늘어진다”며 “적폐청산이 아니라 정치적 보복이다. 무슨 적폐청산인가. 그 사이에서 김부겸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