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10시 대구지방법원 제2형사단독(판사 김태규)은 박근혜 대통령 비판 내용의 전단지를 제작 및 배포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성수(42) 씨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박 씨는 오전 11시 40분경 석방됐다. 또, 법원은 박 씨가 제작한 전단지를 배포한 혐의로 기소된 변홍철 씨와 신 모 씨에 대해서는 각각 벌금 500만 원과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박근혜 대통령 정윤회 염문은 허위 사실…
피고인 박성수 사실 확인 않고, 박근혜 대통령 개인 비방
공직자 개인 비방 목적이라면 표현의 자유 적용 안 돼”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배포한 유인물과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한 내용을 종합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와 불륜관계에 있고, 세월호 사건 당시 애정행각을 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에 합치하지 않아 허위사실이며 이 내용의 전단지를 제작해 배포하고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포했다”며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가 모두 인정돼 유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기관이나 정부는 형법상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고, 국가에 대한 비판이 담당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없지만, 기본권의 주체인 공직자 개인의 인격도 헌법 제 10조 등에 근거하여 일정한 범위에서 보호받아야 하므로 악의적이거나 공직자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되는 경우 그 표현 행위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며 “피고인 박성수는 저속하고 음란한 표현으로 대통령 박근혜 개인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사실 확인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을 보면 대통령 박근혜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고 경솔한 공격으로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 박성수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가 불륜관계에 있다는 허위 사실을 적시했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의 불륜으로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채동욱 검찰총장 낙마 등이 대통령 불륜관계를 감추기 위한 것처럼 표현하고, 개와 닭이 교미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두는 등 건전한 비판이나 풍자를 찾아보기 어렵고, 저속하고 음란한 표현으로 여성대통령을 조롱하여 성적수치심을 유발함으로써 비방하고자 하는 목적만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국가정책 또는 공직자 직무수행 등에 대한 비판은 자유민주주의의 요체이고,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방편이므로 충분히 보장되고 권장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빙자하여 공무원의 직무수행에 대하여 상식적인 비판이나 국가정책에 대한 건전한 문제 제기 없이 음란하고 저속한 사진이나 글, 그림 등을 통하여 공직자 개인을 비방하는 데만 치중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벗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8개월 만에 풀려난 박성수
“산케이신문 지국장도 무죄인데…유죄 인정할 수 없다”
“사실 적시 아닌 의견을 공직자 개인 비방으로 볼 수 없어”
이번 판결로 박성수 씨는 4월 28일에 체포돼 5월 6일 대구구치소에 갇힌 이후 8개월여 만에 풀려났다.
재판에서 모두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박 씨 등은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할 예정이다. 대통령 비판을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판단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다.
박 씨는 “정윤회 염문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느냐는 내용에서 염문이라는 표현은 남녀관계에 대한 소문이라는 뜻이며 이는 <조선일보>와 <산케이신문> 보도에 이미 나왔다”며 “산케이신문 지국장이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내가 유죄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재판부가 지적한 개와 닭 교미 사진과 관련한 음란성에 대해서도 박 씨는 “11월 28일 정윤회 비선 실세론 논란이 나온 뒤 이를 패러디하려고 12월 13일에 사진을 올리고 덧붙여 ‘다음 세대에 어떤 괴물이 나올지…’라는 표현을 적었는데, 이는 권력 다툼 속에서 다음 세대 어떤 권력이 나올지에 대한 비판이었다”며 “맥락을 보면 이를 성관계로 전제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타츠야 전 서울지국장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박 씨의 변호를 맡은 류제모 변호사는 “재판부가 지적한 염문, 7시간에 대한 내용을 보면 사실적시로 볼 수 없으며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온 산케이 지국장 사건에서도 명예훼손으로 보지 않았다”며 “비방의 목적이 없는 공직자에 대한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류 변호사는 “음란하고 저속한 인신공격이라고 판단했는데, 풍자와 패러디는 의견 표명이지 사실 표명이 아니”라며 “패러디와 은유는 사실 적시로 볼 수 없으므로 명예훼손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성수 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제작·배포했다. 전단지에는 “자기들이 하면 평화활동 남이 하면 종북, 반국가행위”, “박근혜도 국가보안법으로 철저히 수사하라”, “정모씨 염문 덮으려 공안정국 조성하는가”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전단지를 변홍철 씨와 신 씨가 지난 2월 16일 새누리당 대구시·경북도당 앞에서 배포 후 거두기도 했다.
이후 대구수성경찰서가 수사를 벌였다. 그러자 박 씨는 지난 4월 21일 수성경찰서에 앞에서 과잉수사를 규탄하며 개사료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후 박 씨는 4월 28일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같은 퍼포먼스를 벌이다 집회시위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5월 11일 검찰은 박 씨를 명예훼손으로 구속기소했고, 변 씨와 신 씨도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재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