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갖고 가가 안주 삼아 술 먹으면 안 돼요! 지금 절대로 안 돼요!”
김소미(가명, 57) 씨가 도시락을 나눠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몇 번이나 반복하며 “절대로 술 먹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 씨는 코로나19 여파로 무료급식이 끊긴 후, 한 달째 노숙인들에게 도시락 나눔 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 12일 대구시 중구 반월당역 14번 출구 앞, 해가 지기 시작한 오후 6시 10분께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저마다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커다란 짐 가방을 메고 있는 사람도 있다.
김 씨는 이곳에서 2년 반 노숙 생활을 했다. 노숙인 자립과 일자리를 지원하는 다울건설협동조합을 만나 현재는 일자리를 찾아 자립했다. 코로나19로 대구 모든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자 김 씨는 가장 먼저 함께 지냈던 노숙인들의 끼니가 걱정됐다.
김 씨는 “제가 배고픈 걸 알잖아요. 이 사람들도 배고프거든요. 지금 밥 먹을 데가 없어요. 그래서 여기서 (도시락 나눔을)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봉사만 하는 거고, 여기 선생님들이 다 해줘요”라고 말했다.
다울건설협동조합은 김 씨의 제안으로 지난달 12일부터 반월당에서 도시락 나눔을 시작했다. 김 씨는 다울건설협동조합 내 소모임인 ‘나눔과 베풂’ 회원이다. 첫 나눔을 시작할 때 30여 명이 찾아왔는데, 최근 50여 명까지 늘어났다. 대구역, 동대구역 인근에 있던 노숙인에게도 도시락을 나눠준다는 소문이 퍼졌다. 많은 사람이 모여 감염 우려가 생길까 봐 도시락 수량을 늘리지도 못한다.
김 씨는 “절대 술 먹지 마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늦게 와 도시락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내일은 좀 일찍 와서 줄 서 있으라”며 샌드위치와 주스를 들려 보냈다.
다울건설협동조합인 속한 대구마을기업연합회도 지원에 나섰다. 마을기업들이 도시락을 기부하고, 매일 돌아가면서 도시락 나눔에도 함께한다. 도시락은 쌀밥을 기본으로, 떡, 주스, 샌드위치 등도 기부로 들어온다.
서영희 대구마을기업연합회 대표는 “다울 대표님을 통해서 상황을 알게 됐다. 저희 마을기업들도 코로나19로 대부분 가게를 닫고 집에만 있었는데, 이렇게 나와서 도시락을 나눠주는 일을 하니까 오히려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진다”며 “이분들이 따뜻하게 밥을 먹어야 감염을 막을 수 있다. 지금은 전국에 있는 마을기업 연합에서도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 내 노숙인은 모두 1,024명이다. 쪽방에 거주하거나 일시보호시설 등에 거주하지 않는 거리 노숙인은 156명이다.
코로나 확산이 장기화하자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도 지난 2일부터 월~금 저녁 도시락 나눔을 시작했다. 대구시 북구에 있는 센터 1층에서 도시락 60인분을 먼저 배부하고, 도시락 여유가 있으면 두류역 인근 노숙인들도 찾아간다. 도시락과 함께 마스크, 손 세정제, 비타민을 나눠주기도 한다.
권용현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지금 도시락을 나눠주는 곳이 저희 말고도 몇 곳 더 있다. 저희한테 오시는 분들도 점심에는 어느 교회에서 받았다는 분들도 계시고, 처음 무료급식이 중단됐을 때보다는 안정을 찾았다”며 “문제는 이 상황이 장기화했을 때다. 아무래도 이분들 건강이 가장 큰 문제다. 하루 세끼를 다 주는 게 아니라서 고정적으로 식사를 할 수도 없고, 식사하는 양도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다울건설협동조합,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 대구쪽방상담소 등이 노숙인 도시락 나눔을 하고 있다. 노숙인 생활 시설 5곳은 코로나 사태 후 무료급식 중단과 함께 신규 입소자도 받지 않는다. 거리 노숙인들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스스로 버텨야 하는 수밖에 없다.
다울건설협동조합은 끼니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말에는 반월당역, 대구역, 동대구역, 대구복합환승센터 등 4곳에서 도시락을 나눈다. 조기현 다울건설협동조합 대표는 “이분들이 지금 하루 한 끼로 버티고 있다. 주말에는 센터에서 도시락을 주지 않아 저희가 4곳을 다 가고 있다”며 “노숙 생활을 오래 하시던 분들은 자기 불안감, 두려움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 나서서 거리 노숙인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