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서 귀화한 김상우(43, 애나물 호크) 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대구에 거주하는 동향 사람들에게 현황과 대응 요령을 알려주느라 바빠졌다. 대구시는 날마다 최신 현황을 발표하지만, 한글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인 정보도 알기 어렵다. 동향 이주노동자 중에는 감염병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소식에 집 밖을 나서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에 떠는 경우도 있었다. 상우 씨는 최신 정보를 확인하고 매일같이 단체 채팅방에 방글라데시 말로 번역해 전달했다.
2월, 대구에서 본격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던 시기 상우 씨도 공포를 느꼈다.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통해 중국 우한 소식을 들으면 코로나19가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치명적 바이러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뉴스를 분석해보면서, 한국은 비교적 상황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고 건강하다면 감염되더라도 관리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한글을 모르는 이주노동자의 사정은 달랐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한 명은 20일 동안 성서공단 회사 기숙사 바깥을 나가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기숙사 밖으로 나가면 코로나에 걸린다고 겁을 주면서, CCTV로 기숙사 안에 있는지 두 시간마다 확인하겠다고 했다.
8일 일요일, 상우 씨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5명을 데리고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받으러 성서공단노동조합 사무실에 방문했다. 20일 만의 외출인 사람도 있다. 이주노동자에게 마스크를 챙겨주는 곳이 없었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마스크를 구해야 했다.
“회사에서는 혹시라도 공장 안에 전파될까 봐 나가지 말라고 겁주는 거죠. 안심을 시키는 게 아니고요. 자기들은 요즘에도 낚시 다녀요. 불안한 상태에서 업무가 더 많아진 곳도 있어요. 중국에서 자동차 부품 수입이 안 되니까 한국에서 부품 생산량이 증가한 거죠. 시간을 내서 상황도 알아보고, 마스크도 사고 싶은데 시간도 없어요.”(김상우 씨)
스리랑카에서 온 성서공단노조 부위원장 차민다 씨는 최근 성주, 고령 등 대구 인근 지역을 다니며 이주노동자 마스크 보급에 나섰다. 코로나19에 대한 이주노동자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정보 부족 문제점을 느꼈다. 고령의 한 공장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는 작업용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느라 얼굴에 자국이 깊게 팬 상태였다. 그들은 공장 밖을 나가지 못했고, 마트나 약국에서도 마스크를 구하지 못했다.
언론은 공포를 더욱 부채질했다. 출생국에 있는 가족들은 대구에 있는 이주노동자가 감염돼 죽을 것처럼 생각했고, 하는 일을 그만두고 당장 돌아오라고 했다. 일부 이주노동자는 공포와 극성에 못 이겨 돌아가는 경우도 생겼다. 몽골인이 국내에서 사망했다는 뉴스, 대구를 봉쇄한다는 뉴스, 마트에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뉴스도 공포심을 자극했다.
급히 출국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급여와 퇴직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주노동자에게는 불법적으로 급여를 한 달 뒤에 지급하는 공장이 다수 있다. 1월 급여를 3월 말에 받는 식이다. 급여 정산 전에 출생국으로 간다면, 2개월 치 급여,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차민다 씨는 “출생국에 있는 가족들이 무서워서 돌아오라고 재촉한다. 한국의 몽골사람도 걸렸다고 하고 우한처럼 폐쇄한다는 보도를 보고 더 무서워한다. 기사가 문제를 키우는 경우다. 공포가 코로나보다 더 위험하다”라며 “국가의 관리가 미치지는 않는다. 회사라도 마스크를 챙겨주거나 정보를 줘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포 때문에 돌아가는 경우, 회사에서 월급과 퇴직금을 안 주는 경우가 있다. 이 문제로 상담이 많이 들어왔다”라며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임금 문제는 물론 병원을 찾기도 어려운 점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마스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구할 길이 없다
노조가 민간단체에서 모집해 충당
마스크 5부제 시행으로 외국인은 건강보험증과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농협이나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기 쉽지 않다. 공장 일과가 끝나기 전에 마스크는 다 떨어진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구매 자체가 불가능하다.
민간단체가 마스크 보급에 나설 수밖에 없다. 성서공단노동조합은 최근 전국 여러 단체로부터 마스크 약 1만 장과 손 소독제를 지원받아 나눠주고 있다. 수요일 저녁, 일요일 사무실에서 나누고, 평소에는 대구 인근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에도 직접 방문해 전달하고 있다. 조만간 거리 배부도 계획 중이다.
상우 씨는 “성서공단의 경우 섬유 공장이 많은데, 작업할 때 먼지가 많이 난다. 이런 점은 코로나 감염 시 위험할 수 있는 요소”라며 “한국 방역망은 신뢰하고 있지만, 마스크나 손 소독제를 구하기 어려워 힘든 상황은 있다”라고 설명했다.
차민다 씨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라며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신국을 따지면서 감염시키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에게도 최소한 그들의 언어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용철 성서공단노조 상담소장은 “예방 수칙이나 최신 소식이 다국어로 통역되지 않는다. 정보 부재로 인한 과잉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이주노동자는 상담소에 올 때 마스크와 장갑을 두 겹씩 끼고 온다”라며 “정보에서 배제된 사람이 감염되면 확산이 더 될 수 있다. 방역 차원에서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마스크 공적 보급 등 정책은 지지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소외되는 사람이 있다. 의료보험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만 마스크를 살 수 있다. 미등록은 당연히 없고, 미등록이 아니라도 한국에서 6개월 이상 지나야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라며 “노조는 이런 부분을 지적하는 활동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마스크를 후원받고 배급하는 데에 모든 역량을 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