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사라졌다. 놀이터에서, 공원에서 깔깔거리던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 1주일 전, 2월 18일. 친한 기자들과 삼겹살 집에서 소주를 나눠 마셨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는 곧 잡힐 것처럼 보였다. 태평스럽게 선거와 정치 이야기나 좀 나누다가 삼겹살 잘 구우라고 타박을 주다가 기분 좋게 2차로 이동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좋지 않기는 했지만 1차 삼겹살집이나, 2차 곰장어 포장마차는 여느때처럼 사람들이 붐볐다. 거리 간판도 불을 밝히고, 자정 가까이에도 사람들은 늘어진 간판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3차를 가자고 했지만, 다음날 권영진 시장 기자회견을 가야 한다며 기자들은 일찍 집으로 귀가해버렸다.
단 이틀만이다.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 다음날인 2월 19일. 같이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던 언론사 편집장이 점심이 어려울 것 같다고 취소를 해왔다. 권영진 대구 시장이 중국인 유학생 특별 대책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그 전날이었는데, 기자회견의 주제 자체가 바뀌었다. 대구지역 확진자가 하루새 10명이 늘어나면서 신천지 대구교회가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만 하루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당장 성가대 연습 모임부터 취소되었다. 전날, 31번째 확진자가 나오자마자 아이들을 시댁이 있는 경북 고령으로 보내라는 어른들 말씀에 뭐 그리 유난을 떠나 하고 출근을 했는데, 오전부터 난리가 났다. 아이들을 당장 보내라는 전화에 결국 조퇴를 하고 아이들을 급하게 챙겨 데려다주고 오기까지 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모든 행사가 취소됐다. 예정되었던 강의, 교육, 회의가 줄줄이 취소되기 시작했다. 목요일 저녁에 예정된 스터디 모임, 금요일 저녁의 동문 모임, 토요일 오전의 독서 모임에, 저녁을 먹기로 했던 시어머니 생신 모임까지 취소되었다.
천주교대구대교구는 설립 이래 처음으로 모든 종교활동과 미사를 2주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요일 성당 미사 일정도 모두 취소되었다. 거기에 모든 초·중·고 개학이 일주일 연기가 된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자체 자가격리된 우리 아이들은 지금 상황의 심각성과는 별도로 유례없는 1주일간의 방학 연장으로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날부터 대구는 고립되기 시작했다. 언론과 SNS를 통해서 봉쇄니, 폐쇄니 하는 말이 떠돌았지만, 실질적인 두려움은 그게 아니었다. 대구사람들의 심리는 이미 고립이었다. 지역과 지역의 물리적 고립을 넘어 같은 생활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고립’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며, 같은 공간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 않음에 불편해하며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도 만나자고 말하는 게 죄송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불금이라는 금요일이 시작된 2월 21일. 저녁 대구 시내는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날씨조차 바람이 불어 지난해 다 정리되지 못한 마른 낙엽까지 뒹굴어 다니니 스산하고 적막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동성로의 가게들은 불은 켜 놓았으나 자리가 차 있는 테이블은 1~2개에 불과했다. 평소 12시 전후로 시끌벅적하기 시작하는 클럽 골목의 금요일도 조용했다.
그렇게 주말을 맞은 대구는 불안감이 더욱 엄습해 있었다. 길거리에 말 그대로 사람도 차도 없었다. 가게들은 한 집 건너 한 집씩 문을 닫았다. 그나마 마트에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생필품 사재기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한다 하더라도 물량이 부족해 진열대가 한산할 만큼은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 유통구조가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다. 단지 마스크와 소독제는 어딜가나 부족했다. 아니 없었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은 손님이 없어서, 감염될까 두려워서 가게 문을 하나, 둘 닫고 있다. 주말의 번화함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확진자가 600명을 넘고 난 후부터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확진이다. 접촉했다. 자가격리가 되었다라는 이야기가 일상이 되었다. 이미 나도 자가격리가 이루어진 사람과 수십 번은 접촉했을 것 같고 확진자가 지나간 곳은 몇 번이고 다녀왔을 걸로 예측됐다. 답답한 마음에 운동을 하려고 해도 다중이용시설은 대부분 폐쇄됐다. 하다못해 운동장이라도 돌려고 갔더니 학교도 폐쇄다. 숨을 헐떡이며 동네를 뛰는 것도 민폐인 것 같아 조용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주말은 지나갔다.
다시 맞은 월요일, 별다른 전달사항이 없어 출근을 했다. 대구 도심을 통과하는 월요일 출근길이 너무나 한산하다. 대중교통을 제외하고는 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에 가득한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대구 도심에서 꽤 규모가 있는 건물임에도 주차장은 한산하고 엘리베이터도 조용했다. 같은 층의 여행사 사무실은 불이 꺼져있다.
지금 대구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조용히 바닥에 내려앉아 있는 무거운 액체 가스 같다. 언제 터져 나올지는 모르는. 사실, 언론에서 전문가다 논객들이다 하는 사람들이 혐오와 차별에 대해 거창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구에 현재 살고 있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일상으로의 복귀이다. 아이들이 다시 길에서 재잘재잘하고 투닥투닥하는 즐거운 소요가 이어지는 일상을 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