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랬어요. 코로나 환자들이랑 있을게. 나가도 우리 엄마는 죽는 거고, 있어도 죽는 거면 우리 엄마랑 여기 있을게 라고 버텼거든요”
21일 저녁 7시 10분께 찾은 대구의료원 라파엘병동은 고요했다. 이미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을 나선 후였다. 환자들이 모두 빠져나간 병동에선 병실 정리를 위한 용역업체가 일을 서둘렀다. 거기서 눈이 붉게 충혈된 A 씨를 만났다.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그는 말을 이었다. “저희 엄마는 요양병원에서도 저 기계가 없어서 안 받아요. 다른 분들도 요양병원에 전화하니까, 코로나 때문에 신규 환자를 안 받는다고 하고 끊더래요”
이날 오전 대구시는 대구의료원 일반병실에도 코로나19 확진자를 입원시키기로 했다. 음압병상 수용이 지침이었지만, 대구시 관내 음압병상 수용 규모를 이미 넘어선 상황이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오전 브리핑에서 정확한 음압병상 수치를 묻는 물음에 “이제는 음압병상 수치가 의미가 없다”며 “이젠 일반병실도 열어서 병동을 코호트 격리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시는 확진자 발생 사흘차인 20일부터 일반병실에도 경증 확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지침 변경을 정부에 요청했다. 권 시장은 20일 오전 브리핑에서 “지역사회 전파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확진환자도 대폭 증가할 거라고 예상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확진환자 음압병실 격리 치료 방식으론 대구뿐 아니라 전국 보건체계를 동원해도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구시 건의대로 21일부터 일반병실에도 확진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일반환자들을 이동시켜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권 시장은 21일 오전 브리핑에서 이들을 ‘전원’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자 상태에 따라 퇴원할 수 있는 사람은 퇴원 조치하고 그렇지 못한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권 시장은 “성서 동산의료원에 129개 실이 있다. 코로나19 환자는 옮길 수 없다. 일반환자는 옮길 수 있을 것 같다”며 “상당 부분 환자들은 퇴원이 임박했거나 또 자가에서 치료가 가능한 환자는 퇴원 조치하는 방향으로 전원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대구의료원에서 이뤄진 조치들은 ‘퇴원’ 우선이었다. 의료원 측이 증상을 구분하고 전원할 병원을 마련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저녁 7시 20분께, 6층 정신병동 앞에는 10여 명의 보호자가 서거나 앉아서 퇴원할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C 씨는 치매를 앓는 동생이 3년 동안 이곳에서 입원 생활을 했다. 그는 이날 오전 의료원으로부터 퇴원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오후 2시께 의료원에 도착했다.
C 씨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건 아니냐는 물음에 “전화번호만 받았어요. 이것도 조금 있으면 자리 없을 거라고 하던데요”라며 “몇 사람은 물어보니까. 다른 병원에서 안 받는다고 하고, 여기서(대구의료원) 이야길 했는지 10명 정도는 다른 병원에 가긴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5시간을 넘게 동생의 퇴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병원 대신 집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D 씨도 비슷한 시간에 의료원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 역시 환자와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는 다른 병원으로 가지 않느냐고 하자 “갈때가 없지 않느냐”며 “이렇게 하는 건 아니지 않아요? 내일 보내든지 해야지, 오늘 오전에 전화해서 나가라고 하루종일 세워놓고, 몇 시간 째고”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C, D 씨와 이야길 나누는 사이 다른 환자 2명이 보호자와 함께 의료원을 나섰다. 한 보호자는 덜 치른 병원비를 치르기도 했다.
어머니가 담낭암으로 입원해 있는 A, B 씨는 더 상황이 어려웠다. 그들 어머니 장모(83) 씨는 병증이 깊어 기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기계를 연결하고 고통을 호소했다. A 씨는 이날 오전 간호사들로부터 의료원을 나가야 한다는 이야길 들었다. 이들의 어머니는 대구의료원 3층 호스피스센터 입원 예약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약일 아직 남았고, 병동에 빈 곳도 없어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 씨는 “여기 직원분들도 황당한 건 맞아요. 갑자기 아침에 그러니까, 자기들도 방법이 없는 거예요. 미안하다는 말씀 밖에 안 해요”라며 “시장이나 위에 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책상 정치예요. 저거는 던지면 끝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동생인 B 씨도 “브리핑만 하면 끝나는 거예요. 현장은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날 오전부터 하루 종일 자체적으로 어머니를 입원시킬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어머니를 받아주겠다고 말한 병원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호스피스 병동 입원도 고려하며 예약해뒀던 외래진료가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이날 오전 8시 34분께 예약한 대형병원에선 ‘정부 방침으로 긴급 외래 진료가 폐쇄되었으니 병원 방문을 하지 말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이들이 병원을 찾아 헤맬 때, 대형병원장들이 이사로 있는 메디시티 대구협의회 임원들은 대구시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오후 4시께 호소문을 통해 이들은 “이번 사태는 우리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의로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메디시티대구 의료진을 믿으시고 시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B 씨는 “이 병원 저 병원 다 전화를 하고요. 요양원에도 연락을 했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신규는 외래로 안 받는다는거예요”라며 “요양원은 어머니가 하는 기계가 없어서 받을 수 없다고 하구요”라고 설명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날 저녁 7시 50분경 <뉴스민>과 통화에서 장 씨 이야길 전하자 “30명 정도 반드시 전원 조치를 해야 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셔야 하는데, 안 받아주는 문제가 있어서 조금 전 대학병원장들과 회의를 했다”며 “각자 병원에서 전원 조치를 받아주는 거로 회의하고 나왔다. 그런 분들은 챙기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시장과 통화를 마친 후 B 씨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해결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하려 전화를 했다. 다행히 B 씨에겐 이미 해결책이 마련됐다고 했다. B 씨는 “호스피스 센터에 자리가 생겨서 그리로 옮겼다. 병동에 다른 분도 본인이 병원 찾아 간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뒤늦게 권 시장과 통화 내용을 전달하자 그는 “이제서야, 다 나가버렸는데요 뭐. 여긴 지금 2명인가, 1명 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