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노란리본공방 대학생을 만나다 “와서 얘기합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이야기 (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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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600일이 지났다.

한일극장 앞에서, 동네에서 서명을 받고 리본을 나눠줘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묻는 말이 ‘아직도’이다. 어떤 사람은 ‘특별법도 만들어졌고 정부가 인양도 한다고 했으니 다 된 거 아니냐’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지긋지긋하다’며, 숨져간 아이들이 아니라 ‘대통령이 불쌍하다’고, ‘효녀 대통령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에 대한 나의 아니,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

“네, ‘아직도’가 맞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생명이 숨지고 600일이 지났는데도 가족들이 여전히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은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고, 팽목항 맹골 수도에는 아직도 9명의 사람이, 우리의 가족이 차디찬 바다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직도 우리가 거리에 있습니다!”라고.

슬픔을 이기는 힘, 우리를 만나다.

이렇게 슬픔이 강물처럼 흐를 때는 좋은 사람 얼굴을,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이 상책이라. 세월호 참사 600일 대구시민대회를 앞두고 만났던 대학생 세월호공방 ‘더 리본’ 구성원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려 본다.

이수림(24세/대학생), 정해인(22세/대학생), 조상준(20세/대학생).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이며 시험에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살아간다는데, 이 친구들은 일주일에 1번씩 꼬박꼬박 모여 세월호 기억리본을 만들고, 팔찌를 만들고 있다.

이런 대학생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한 번은 꼭 만나고 싶었는데, 드디어 지난 11월 20일 경산시내 식당에서 세 학생을 만났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리본공방을 만들자고 제안도 하고 매주 목요일 활동을 함께 하는 선배들 길정혜(34세), 민소현(36세) 씨도 함께 만났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인사를 하고는 바로 어떤 심정과 계기로 세월호리본공방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누군가 일부러 찢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세월호리본공방 포스터를 보는 순간 막 화가 나서 오히려 더 가입해서 활동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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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 소식에 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팠던 정해인 학생은 사건이 잠잠해진 이후에도 JTBC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걸린 세월호리본공방 포스터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가입을 했다.

세 명의 학생 중 제일 언니인 이수림 학생의 경우는 “솔직히 힘들고 아픈 이야기를 대면하는 게 힘들기도 하고, 1주일에 1번이 쉽지는 않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누군가 일부러 찢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세월호리본공방 포스터를 보게 되었는데, 순간 막 화가 나서 오히려 더 가입해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냥 보면 순하게만 보이는 얼굴의 학생에게서 이 말을 듣고 보니, 작은 입매가 당차 보인다. 그리고 정말 누구였을까, 그 세월호리본 포스터를 보고 일부러 찢고 싶었던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하는 우리 사회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상준 학생은 지난 12월 4일 세월호참사 600일 대구시민대회 때 추모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쓸데없는 정의감’을 가진 청년이다. 이 쓸데없다는 정의감이 나는 무조건 고마운데, 본인은 정작 이로 인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라 관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봉사활동도 가고 공연도 많이 하는데, 한 번은 공연하면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가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일이 이후 예정 되었던 행사가 취소되고, 관의 지원금도 딱 끊겨버렸다는 것.

듣고 있는 내 입에서 ‘헐~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김제동이나 김장훈 같은 유명한 연예인만 수모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방과 동네에서조차, 이제 막 문화예술활동을 하려고 하는 젊은이들까지도 대통령을 반대하면 배제하고 불이익을 주는 참으로 철저한 나라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나 국민들은 모두 참사의 진상을 알고 싶어 하는데, 우리사회는 오히려 국가가 사실을 숨기고, 진실을 밝히는 걸 방해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의 지도층이라면 평범한 국민들과 함께 가야 하는데, 자기 가까운 사람들만 챙기는 경향이 너무 강해요. 주변에 큰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나요? 이런 나라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회는 정말 탁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깨끗한 사회에서 살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깨끗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조상준 학생의 바람. 참 단순하고 좋다. 어쩌면 나는 하도 오래, 참말로 많이 우리 사회의 불의와 부정만 보며 살아온 것일까? 그저 비판하고 싸우는 데 골몰해 정작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그려보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조상준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떠올랐다. 그래, 세월호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도, 우리도 모두 큰 욕심 없는 사람들이다. 그저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고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사회면 충분하다.

한 명이라도 오면 그 사람과 함께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 세월호리본 공방을 해 보자는 포스터를 붙인 언니들이야말로 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 이런 생각을 하고 제안한 이유를 물었다.

포스터를 직접 그리고 대학교마다 다니며 직접 붙이고 다닌 민소현 씨는 “세월호참사는 국민들이 모두 가슴 아파하는 일이잖아요. 대학생 중에도 관심을 갖고 뭐라도 해보고 싶은 친구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집회에 나가거나 직접적인 행동을 하는 건 쉬운 일도 아니고, 부담되는 일이지만 리본을 만들고 주변 사람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같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명이라도 오면 좋겠다, 그 한 명과 함께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포스터를 붙였어요”라고 말한다.

또, 실제로 서명전을 하면서부터는 리본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 세 명의 후배들이 더욱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세월호 활동을 하면서 대구시민들이 모두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꾸준히 리본공방에 참여해 온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지가 궁금했다. 또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도 물었다.

이수림 학생은 리본을 아는 사람에게 나누어줬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왼쪽부터 조상준, 이수림, 정해인 학생, 11월 20일, 경산
▲왼쪽부터 조상준, 이수림, 정해인 학생, 11월 20일, 경산

“길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리본을 나눠줄 때 안 받는 사람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 받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가 생길 것 같았어요. 친하게 지낸 과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일베라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컸었어요. 그런데 제가 리본공방 하는 걸 알고 리본을 나눠달라는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덕분에 용기를 내서 모임 사람들에게 리본을 나눠줬는데, 다들 고마워하면서 받아갔어요.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정해인 학생은 인천이 고향이라 고등학교까지 인천에서 지내다가 대학진학을 대구로 했다며 대구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이 가장 인상적인 일이라고 한다.

“인천에서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정부에 대한 비판도 편하게 하고 지냈어요. 그런데 막상 보수적인 도시 대학에 입학한다고 하니 친구들이 ‘너 대구 가서 세뇌돼서 오는 거 아니냐?’고 많이 놀리기도 했고, 저도 좀 긴장했었어요. 또 대구 와서는 세월호공방 하는 사실을 아는 선배들이 걱정과 반대하는 마음으로 그만두라는 조언을 하기도 해서 정말 대구가 보수적인 도시라는 걸 실감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세월호 활동을 하면서 대구시민들이 모두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시내 나가 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이 세월호 서명을 받고 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보여요. 세월호 참사가 1년 반을 지나고 600일이 되어가는데도 계속 활동하고 있는 분들, 여기 있는 소현이 언니, 정혜 언니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 이 대목에서는 좀 뿌듯해진다.^^

작년 여름부터 해서 수차례 대구에 오셔서 함께 세월호 활동을 하셨던 단원고 2학년 3반 유가족 부모님들도 이제는 처음 대구에 올 때 걱정이 컸다는 말씀을 편히 하신다. 10개 반 중에 대구에 오는 걸 결정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다는 소문 아닌 사실을 전해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가 대구에 태어난 것을. 대구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갈 길을 가다 보면 어떤 길이든 보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해인 학생처럼, 단원고 부모님들처럼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늘고 있으니 참 기쁘고 좋은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서명대를 지금까지 쉬지 않고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노란 리본을 받아가고 서명을 꾸준히 해 준 고마운 대구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상준 학생은 뭐니뭐니해도 앞에서 이야기한 관에서 의뢰했던 행사가 취소되고 지원금도 끊긴 일이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한다.

“말 한마디 했다고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사람으로서 잘살고 싶은 바람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인데 말조차 못하게 하는구나. 나도 사람인데, 내 머리가 있고 내 생각이 있는 사람인데, 말도 하면 안 되는 사회구나라는 걸 정말 실감했다”고.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이없는 일이라 조상준 학생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럽고 민망했다.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언제라도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우리 사회잖아요, 세월호 참사를 자기 일이라는 마음으로, 꼭 기억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학생과 언니들에게 세월호참사 부모님들도 좋고, 대구시민이나 주변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포함한 마무리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께는 무슨 위로를 드려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조상준 학생은 주변의 친구들에게 ‘우리 사회가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언제라도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사회이니만큼 세월호 참사의 일을 자신의 일이라는 마음으로 생각해 달라.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사회라면 우리끼리 돕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수림 학생은 ‘부모님들을 동정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일반인 희생자들에게도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고, 세월호 참사를 정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시스템도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해인 학생은 ‘600일이 되어가는 데도 똑같은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이 나도 정말 답답한데, 유가족분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분들에게 빨리 그만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신 애기들이 차가운 바다에 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진짜 묻고 싶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우리 모임이 큰 힘은 못되지만 그래도 아직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부모님들이 아시면 힘이 될 거라는 마음으로.

600일 대구시민대회를 준비 중이기도 한 길정혜 씨는 ‘주변에 세월호 참사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분들 마음에도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분들도 함께 마음을 열 수 있는 600일 대구시민대회를 잘 준비하고 싶다’는 마음과 ‘우리 모임이 이렇게 시작을 했으니 동아리로 발전해서 세월호를 잊지 않는 대학생들이 더 많아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광화문 가서 투쟁하는 건 못하더라도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고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젊은 사람들의 모임이 많이 생기는 건 우리 사회가 더 좋은 사회로 나가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는 바램도 밝혔다.

▲왼쪽 두 번째부터 길정혜, 이수림, 정해인 학생, 제일 오른쪽 민소현, 그 외 역사동아리 대학생과 함께, 11월 28일, 진도 팽목항
▲왼쪽 두 번째부터 길정혜, 이수림, 정해인 학생, 제일 오른쪽 민소현, 그 외 역사동아리 대학생과 함께, 11월 28일, 진도 팽목항

포스터를 그릴 때 돌아보는 학생의 표정을 어떻게 그릴까 한참 고민했다는 민소현 씨는 ‘어쩌면 정치적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는 세월호 이야기조차 대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스펙을 쌓고 스터디를 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현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때에 마음을 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에 오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 있는 후배들이 정말 고맙다. 우리 모임이 큰 힘은 못되지만 그래도 아직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부모님들이 아시면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후배들에게 11월 28일 팽목항에 꼭 가보자는 권유를 잊지 않았다.

그날 인터뷰 이후 학생들은 정말 언니들과 함께 진도 팽목항을 다녀왔다. 미수습자 허다윤, 조은화 학생의 부모님과 권혁규 어린이의 큰아버님도 직접 만나서 말씀을 듣고 함께 울었다. 정말 고마운 학생들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데 수림 학생이, 사람들에게 우리 모임 홍보를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 좋아서 박수를 치고, 말 한 사람이 홍보를 해보라고 하니, 씩씩하고 야무지게 말한다.

“세월호 하면 아직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얘기를 하고 싶은 대학생들 부담 갖지 말고 오세요. 와서 얘기합시다!”라고.

세월호참사 부모님들의 슬픔이 끝날 때, 그때가 우리 싸움의 기한.

세월호 참사 600일을 보내며 나는 개인적으로 힘이 좀 들었다.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서 유가족들을 모시고 간담회를 하고, 팽목항에서 미수습자 부모님들을 만나고, 세월호 다큐 <나쁜 나라>를 보았다. 그 와중에 쌀값 보장해달라고 서울 대회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비극이 또 일어났다.

나는 가난하게 자랐고 살면서 더러 억울한 일도 겪었다. 그러나 ‘원통’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나 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500일, 600일이 지나도록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 나라에서 사는 유가족들의 피눈물을 겪으면서 이제야 정말 원통하다는 말뜻을 알 것 같다. 정말 억울하고 분하다. 이 아픔을 어찌할 것인가, 신이나 절대자가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 달라고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다.

‘언제까지 할 거냐, 기한이 있는 일이냐?’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연예인 김제동 씨는 ‘부모님들의 슬픔이 끝나는 때, 그때가 나의 기한’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대구에는 김제동씨와 같은 답을 자기 가슴에 간직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누군가는 매일 아침 피켓 시위를 하고, 매주 서명에 참가하고, 어떤 사람은 이 세 명의 대학생처럼 모여서 리본과 팔찌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돈을 내고, 꼬박꼬박 서명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한다. 잊지 않기 위해 아픔과 직면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내 작은 일이 세월호참사 가족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며,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세월호노란리본 대학생공방 ‘더 리본’의 대학생과 선배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우리 함께 잊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자고 오늘도 따뜻한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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