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예비후보로 나선 대구 정치인들이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대구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봉준호 영화박물관’, ‘봉준호 동상’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구 영화·문화계 일각에서는 “열악한 대구 영화 환경에 대한 고민이 없다. 기생충스러운 반응”이라며 쓴소리가 나왔다.
대구 달서구병 지역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59, 비례대표)은 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대구와 봉 감독의 인연을 강조했다. 강 의원은 “그(봉준호)는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나 저의 이웃 동네에서 학교를 다녔다”며 “같은 250만 대구시민들과 함께 봉 감독에게 축하를 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의원은 “대구가 봉준호 감독의 고향인 만큼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영화박물관을 설립, 영화를 문화예술 도시 대구의 아이콘으로 살려야 한다”며 봉준호 영화박물관 건립을 제안했다.
대구 중남구 지역에 출마한 한국당 예비후보들도 11일 봉준호 관련 공약을 쏟아냈다. 배영식(71) 예비후보는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봉 감독의 위대한 업적을 영구보존·계승시키기 위해 그가 태어나 성장한 남구 생가터 주변 지역을 ‘봉준호 영화·문화의 거리’로 지정하고 인접 지역을 카페의 거리로 조성함으로써 중구 ‘김광석’ 거리와 연계시켜 관광 불모지인 중·남구에 관광 시너지를 극대화시키겠다”며 ‘봉준호 생가터 복원’, ‘봉준호 동상’, ‘영화 기생충 조형물’ 건립을 약속했다.
장원용(53) 예비후보도 “봉준호 감독이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대명 5동에 있는 남도초등학교를 다녔다”며 “봉 감독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을 대구 남구 대명동에 건립하여 대구에서 제2, 제3의 봉 감독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도건우(48) 예비후보도 “아카데미상 4관왕의 쾌거를 달성한 봉준호 감독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대구에 ‘봉준호 명예의 전당’을 건립하겠다”면서 “영화박물관, 독립영화 멀티 상영관, 가상현실(VR) 체험관, 봉준호 아카데미 등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예비후보들의 이같은 제안에 영화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독립영화감독인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은 “봉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대구는 대학에 영화 학과도 없고, 교육받을 수 있는 민간 기관도 없다”며 “봉준호의 과거에 투자하는 게 영화의 미래다”라고 말했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지난해 대구에서 처음으로 영화학교를 열었다. 예산 5천만 원은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받았고, 대구시 등 지역 지자체 지원은 없었다. 권 사무국장은 “봉 감독의 성과는 대구 영화의 성과도 아니다. 그걸 기념하는데 몰두하지 말고, 대구 영화 저변 확대에 대해 정치인들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은 “영화는 보셨는지 모르겠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탄 것은 보편성도 있지만, 개성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정치인들이 기생충스럽게 반응하고 있다”며 “봉준호에 기생할 생각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사무처장은 “가능성을 발전시킬 심미안을 가지는 게 정치인의 소명”이라며 “대구에서 비수도권 영화제 나가서 상을 탄 분들이 많았지만, 조명하지 않았다. 그분들이 빛을 낼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정치인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1969년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대구를 떠났다. 이후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한 영화전문 교육기관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를 통해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