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쿠폰으로 임금을 지급한 사건으로 수천만 원 이상의 고액 임금체불이 발생했는데도 피해 이주노동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나 일할 수 없는 초청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 등 현행법상 한국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이들의 경우, 조사 과정에서 출입국의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노동청의 영천 인력중개업자 압수수색 이후 피해자 수, 피해액 규모가 최초 고발 당시보다 늘어났다. 노동청은 압수한 장부를 분석해 피해자 파악에 나섰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 수는 20여 명, 피해액 규모는 1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체불 1억 원 이상이면 올해부터 시행되는 신고 감독제에 따라 고용노동부의 즉시 근로감독 대상이다.
영천 쿠폰 임금 사건을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고발한 대경이주연대회의(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연대회의)는 현실과 맞지 않는 비자 제도를 지적한다. 이 때문에 임금체불이나 사업주의 부당한 지시에 이주노동자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쿠폰 임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임금체불 피해자가 미등록 상태이거나 초청비자를 받아 일한 경우,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개선2과 관계자는 “노동청이 나서서 불법체류 등을 수사의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만약 경찰이나 출입국에서 협조 요청을 한다면 당연히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경이주연대회의에 따르면, 주로 결혼이주여성이 자기 가족을 단기간 초청하는 초청비자(C-3)로 이주민이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 국내에서 취업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체 수입 없이 육아만 돕기는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력이 부족한 농촌의 일당제 형식 일자리를 찾게 된다.
취업 활동이 가능한 단기비자(C-4)는 일할 수 있는 기간이 3개월(올해 신설된 E-8비자는 5개월)에 불과하다. 또한, 비자 발급 조건도 ▲나이(30~55세) ▲외국 지자체와 한국 지자체의 MOU 체결 등 조건도 까다롭다.
최선희 대경이주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단기 비자 취득은 까다롭기 때문에 중간에 브로커가 개입할 수 있다. 취득 비용이 증가하면 임금으로 비행깃값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도 생기고, 그래서 미등록 상태가 될 가능성도 있다”며 “초청비자로 체류하는 결혼이주민 가족은 현실적으로 일을 전혀 안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영덕 오징어 가공업체에서 사망한 베트남 이주노동자도 초청비자를 받았다. 정부가 제도 개선 없이 단속하고 추방하고 있다”며 “농촌에는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초청비자도 어느 정도의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이주노동자 급여 수천만 원 쿠폰으로 준 영천 인력소개꾼(‘19.12.10))
앞서 중개업자 윤 모 씨는 영천에서 2018년부터 이주노동자에게 현금 대신 쿠폰으로 임금을 주기 시작했다. 초청비자로 한국에 와 일 했던 한 부부의 체불 임금이 2019년 한해 1,500만 원에 달하자, 이 부부의 사위가 대경이주연대회의에 제보했다. 대경이주연대회의는 피해자가 수십 명, 피해액은 수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중개업자 윤 씨는 흉작으로 사전에 동의한 이주노동자에게 쿠폰을 지급했으며, 수확 철 이후 급여를 변제할 계획이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언론 등에서 피해액이 수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도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영천 임금 체불 사건을 2월 중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