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3동 뉴타운 재개발지역에서 41년째 살고 있는 백승학(61) 씨는 31일이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나야 한다. 재개발 지역에 포함됐고, 명도소송에서도 패소했기 때문이다. 재개발 추진 당시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재개발에 찬성한 것이 잘못이었다. 백 씨가 제안받은 보상금으로는 새로 들어설 아파트는커녕, 새로운 집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백 씨의 집은 상가주택이다. 41년 동안 그곳에서 세탁소를 운영 했다. 주민들에게는 세탁소 백 사장으로 통한다. 백 씨처럼 고령의 주민들은 보상금 문제를 떠나 당장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곳을 떠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새해가 되면 추운 겨울 강제 철거를 당할 수 있다니, 연말에도 당장 받게 될 철거 계고장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용산참사 이후 2010년, 도시개발법 시행령 개정으로 동절기 강제철거는 불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도시개발법은 도시개발법상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이뤄지는 지역에 한정된다. 대명3동을 포함해 11월 기준으로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 정비사업이 실시되는 227곳은 이와 무관하다. 도시개발법이 아닌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상 주택재개발 사업에 속하기 때문이다.
동절기 강제 퇴거를 제한하고, 보상 관련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도록 하는 도정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서울, 광주는 자체 조례를 통해 동절기 철거를 제한하고, 분쟁 조정을 위한 협의체 구성 설립 근거도 마련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별도 조례가 없다.
30일 오전 11시, 백 씨와 같은 사정의 철거민들이 대구시청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을 하며 동절기 강제 철거와 협의체 구성 마련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은 반빈곤네트워크 등 10개 단체가 함께했다.
이들은 “한겨울에 강제 철거를 통한 철거가 대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강제 퇴거를 당한 고통을 대구시는 알고 있는가”라며 “퇴거를 원하지 않는 주민도 철거 용역의 위협으로 쫓기듯 강제로 이주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기관의 개입과 중재는 전무한 실정이다. 대구시는 폭력적 강제 철거를 규제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협의체 구성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구시는 근거 법령이 없어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협의체를 전혀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근거 법령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서 지금은 협의체 구성보다는 분쟁조정위원회를 강화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동절기 퇴거 제한도 누군가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