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 박정희 찬양대회로 끝난 지구촌 새마을지도자 대회

[2015 지구촌 새마을지도자 대회] 성과는 '박정희 덕', 외신 기자 우려엔 '하면 된다'

18:34

온 동네 새마을 깃발이 나부낀다. 마을 청소하라는 동장 전화가 걸려올 것만 같다. (물론 동장이 누군지는 모른다.) 아마 공무원에게 교육받은 새마을지도자일 것이다.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덕에 “하면 된다”는 그런 마음으로 마을 청소를 하고, 길을 닦고, 통일벼를 모조리 심었더니 농가 부채는 좀 생겼지만, 국가 생산력은 높아졌다.

우리는 “하면 된다” 그런 믿음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대통령을 역사상 두 번이나 경험하는 아주 운 좋은 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5년 “하면 된다고 믿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주문이 대구에서부터 온 세계로 퍼진다. ‘2015 지구촌 새마을지도자 대회’가 지난 24일부터 나흘 동안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렸다.

행정자치부가 주최하고, 새마을운동중앙회와 대구시가 주관한 이번 대회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57개국이 참석했다. 각국 새마을지도자들이 대구에 모여 자국의 새마을운동 성공 사례를 발표했고, 한국 정부는 새마을운동의 ‘자조’ 정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경북 구미 새마을테마공원, 박정희 대통령 생가 방문 현장답사도 진행했다.

카욘고
▲카욘고(KAYONGO Busuulwa) 씨

아프리카 우간다 카테레케 마을 새마을지도자 카욘고(KAYONGO Busuulwa) 씨는 우간다에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마을이 40개가 넘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카욘고 씨는 새마을운동을 위해 교사라는 직업도 버렸다.

처음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때 주민들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왜 우리가 해야 하느냐며 반발이 많았다. 또 공동을 위한 일인데도 일을 하면 무조건 돈을 받아야 한다는 주민들도 많았다.

카욘고 씨는 “교사로 일할 때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아 밥을 굶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우리가 너무 부끄러웠다. 마을에서 왜 교사를 그만두냐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새마을운동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었다”며 “새마을운동 덕분에 나의 삶은 정신적, 경제적으로 모두 달라졌다.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엔 박정희…너희 나라에는 그런 사람 있니?”
“박정희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세계 빈곤 퇴치를 빙자한 박정희 자랑 대회?

한국 정부는 새마을운동 성과에 주목하면서 세계 빈곤 퇴치를 위해 지속가능한 새마을운동 모델 확산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도 그런 취지다.

24일 오후 1시 30분, 고위급 라운드 테이블에서 ‘새마을운동 활성화를 위한 중앙·지방정부의 역할’에 대한 토론이 열렸다. 70년대 한국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대통령이 진두지휘했다. 18년 동안 민주주의의 시계를 되감았던 독재자의 리더십을 설명하고 싶었을까?

정종섭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새마을운동 성공 요인으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전략적 지원 △주민의 자발적 참여 △마을지도자의 열정을 들었다.

첫 번째 요인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전략적 지원’입니다. 정부는 획일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성과 있는 마을에 보다 많은 지원을 함으로써 경쟁을 촉발시켰고, 이는 마을 주민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단합하기 시작하면서 농촌 근대화의 큰 물결을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내무부 산하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시·도에 새마을협의회, 읍·면에 새마을추진위원회, 마을단위에 리·동 개발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마을 국무회의, 새마을 비서관 제도 등에서 보듯이 그야말로 ‘강력한’ 정부의 의지였다.

정 장관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주민과 마을지도자 참여도 곁들였다. 정 장관은 “초기에 나타난 주민들의 불응과 비협조는 새마을 지도자의 헌신적 역할, 교육과 계몽활동, 성공사례 공유 등으로 점차 조직화되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냈다”며 “정부 주도로 촉발되었음에도 상향적 지역사회 개발 모델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자찬했다.

그러면서 “새마을운동의 상당 부분은 박정희 대통령의 머릿속에 있었다. 새마을운동 노래까지 직접 작사·작곡하실 정도로. 여러 메모에서도 그런 열정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누가 주도적으로 새마을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묻기도 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관용 경북도지사 역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노력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관용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 도지사는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새마을운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정부, 현장 지도자 등이 함께 통합적인 모습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시대별로 볼 때 처음부터 성공하지는 않았다”며 “그것은 박정희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직접 현장에 다니면서 농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농민들이 그런 것에 감동받아 하부조직이 움직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마을운동은 마을 청소, 부엌 개조부터 출발했다. 특히 새마을정신과 하부조직이 잘 정비되어 위로는 대통령부터 지방정부에까지 실천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단순한 가난 극복을 넘어 공동체 번영을 꿈꿨다”며 “이런 새마을 운동은 밑으로부터 실천 운동이다. 주인공은 정부가 아니라 주민이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구체적 사례 설명이 없다.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있었다고 강조하고 싶지만, 대회 주최 측은 추상적인 설명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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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2시 30분 열린 본대회 종합세션에서 조명수 새마을운동중앙회 사무총장은 각국 사례공유 워크숍에서 토론한 내용을 발표했다.

조 사무총장은 “모두 다 동의한 새마을운동 성공 이유는 한국 정부의 하향식 리더십과 공동체 마을 단위 상향식 리더십이 훌륭히 결합했다는 점이다. 이런 하향식 방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 부족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새마을운동 연구가 박정희 대통령 성과에 맞춰 이뤄졌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외신 기자들 질문에 “하면 된다”, “주민 자발적 참여”로 일관
농촌 감소 문제, 획일적 사고 강요 등 문제점에 대한 고민 없어

이번 대회에는 제프리삭스(Jeffrey Sachs)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기조 강연을 맡았다. 제프리삭스 교수는 UN의 지속가능한목표(SDGs)를 달성하는데 새마을운동의 동력을 주목했다.

새마을운동은 지속가능한 개발목표를 위한 강력한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을에 중점을 두고, 공동체 기반 개발을 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공동체 정신이나 사회적 자본을 이용하고, 공동체 기반 투자·발전을 통해 성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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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행정자치부는 “이번 대회의 성과”라는 종합 브리핑 자료에서 “제프리삭스 교수가 국제사회 빈곤을 퇴치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이해서는 한국의 ‘Can do’ 정신과 ‘새마을운동’을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해 향후 국제 사회에서 새마을운동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지역별, 국가별 다양한 개발환경에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실천 전략으로서 새마을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을 기초로 다양한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새마을운동을 시도하려는 개발도상국은 이러한 기대 속에서도 걱정이 뒤따랐다. 25일 오후 4시 30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외신 기자들의 우려 섞인 질문이 쇄도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한 기자는 “개발도상국에 이런 개발이 이루어질 때 농촌이 감소하는 문제 등이 있다. 농촌 지역에서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조명수 새마을운동중앙회 사무총장은 “지속가능한 개발”에 초점을 두어 답변했다. 조 사무총장은 “누군가 돈 있고 능력 있는 외부인이 도와주는 것과 우리가 뜻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온다. 새마을운동 지원 사업이 종료돼도 스스로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1968년 남한 인구의 51.6%를 차지했던 농촌 인구는 1979년 전체 인구의 31.1%로 줄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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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수 새마을운동중앙회 사무총장

르완다의 한 기자는 “어떻게 성공적으로 같은 정신을 실행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획일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은 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 사무총장은 “빈곤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는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며 “새마을운동을 하고자 하는 모든 마을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있고, 긍정적으로 미래에 대해 사고를 하신다면 좋은 사례들과 같이 성공적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렬 행정자치부 지방행장실장도 거들었다. 김 실장은 “초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주창하면서 그야말로 대통령의 리더십이었다. 훌륭한 새마을 지도자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정부가 교육하고, 잘하는 마을에 더 많은 혜택을 줬다”며 “정부가 준 돈과 물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쓸지 스스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근면, 자조, 협동의 가치는 시대와 나라를 떠나 반드시 작동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간다에서 온 한 기자는 “새마을운동에서 협동이 하나의 중요한 요소다.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정신적으로 협동이 각인되어 있지만,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 부족끼리 경쟁하는 전통적인 관계가 있는데 어떻게 협동 정신을 키울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조 사무총장은 “문화적 차이는 분명 있을 수 있다. 새마을운동 주요 원칙이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자는 게 아니”라며 “서로 잘 살기 위해서는 협력밖에 살길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성공사례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답했다.

외신 기자들의 우려에 한국 주최 측의 답변은 ‘지도자 리더십’, ‘할 수 있다’ 외에는 없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논리의 근거는 없다. 각국 빈곤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 없이 오로지 ‘정신승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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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장에 전시된 대형농기구로 만든 로봇

한 르완다 기자는 “여기 전시된 농기구 비용을 문의해봤는데 비싸더라. 우리는 재정적 한계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한국 새마을운동에서도 르완다 기자가 우려한 문제가 발생했었다. 농촌 환경 개선 사업은 눈에 띄게 성과가 있었지만, 농민들의 경제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970~80년 사이 농가 호당 소득은 26만 원에서 270만 원으로 10.5배 증가했지만, 농가 부채는 1만6천 원에서 34만 원으로 21배나 증가했다. ‘농촌 근대화’를 위해 농기구, 농약, 비료 등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 성과는 과시하면서 그 문제점에 대한 분석은 이번 대회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성과만 보고 새마을운동을 따라 한 개도국에서는 한국에서 있었던 문제점을 똑같이 반복할 수밖에 없다. 진정 세계 빈곤 퇴치를 위한 대회인지, 박정희 대통령 찬양 대회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마을운동, 자조(self-help)하는 국민 만들기
‘온 우주론’의 시초는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의 공과는 이미 무수히 많은 연구와 논쟁이 있었다. 그럼에도 ‘과’에 대한 평가 없이 ‘공’만 조명하는 이번 대회는 다시 한 번 그 문제점을 짚어보게 한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새마을운동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하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의 일환이었다.

우리 농민들이 잘 살므로 소위 농촌의 구매력이 그만큼 더 커져서 공업이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농촌의 구매력을 높여 공업 발전을 시키는 한편, 점점 벌어지는 도농 간 소득 격차로 인한 농민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대회에도 여러 번 강조됐듯이 새마을운동이 강요한 핵심은 ‘하면 된다’, 즉 ‘자조’ 정신이다. 당시 매달 발행되던 잡지 <월간 새마을>은 온갖 성공사례를 실어 이를 부각했다.

새마을운동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국민에 떠넘기는 것은 물론 그 책임까지 떠넘기고 있다. 우간다에서 온 카욘고(KAYONGO Busuulwa) 씨가 이야기한 주민들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반발이 누그러들었지만, 그 성과는 결국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국민에 떠넘긴 결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