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저널리즘의 해체에 대하여 / 이택광

11:35

지난 9월 27일과 11월 15일 두 번에 걸쳐 서대문구(구청장 문석진) 신촌 바람산 중턱에 위치한 신촌문화발전소에서 “포스트미디어”라는 제목을 붙인 낯선 워크숍이 개최되었다. 지난해 “청년문화예술인의 커뮤니티 공간”을 표방하면서 개관한 신촌문화발전소가 주최하고 포스트미디어연구 글로벌네트워크가 주관한 자리였다. 일본과 호주, 그리고 인도의 학자들이 모여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디어 상황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부족한 능력이지만, 나는 사회자로 열띤 토론에 참가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렇고 그런 평범한 워크숍으로 보일 수도 있는 행사였지만, 참여한 학자들의 발언과 관객의 호응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한 프랑스 사상가가 70년대에 예견한 “포스트미디어”라는 주제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내용임에도, 모두들 이 개념이 건드리는 현재의 문제에서 강렬한 시의성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어로 ‘탈미디어’라고 번역할 수 있을 법한 이 용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을 이해하기에 적절한 기준점을 제공한다는 생각이다.

한 마디로 이 개념을 정의하자면, 미디어를 중앙 집중적인 정보유통 방식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포스트미디어의 상황은 탈중심화한 미디어들이 개체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미디어의 다변화는 이런 개체화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팟캐스트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를 거쳐서 도달한 유튜브라는 신천지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극단을 한국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보자면, 이런 “포스트미디어”의 상황은 정치적으로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들에게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초기에 목격했던 다양한 미디어의 출현은 권위주의 권력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시민 사회의 언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인터넷의 출현은 정보독점을 기반으로 우위를 누렸던 기성 언론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기존 저널리즘의 구도를 해체했던 것이다. 이 과정을 ‘민주화’라고 지칭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용어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이 ‘민주화’가 만들어놓은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구 미디어’처럼 느껴지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그렇다고 쳐도, 유튜브는 ‘진보’보다도 ‘보수’를 자처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기성 언론과 방송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가 부상하고, 이를 중심으로 이른바 통제받지 않는 날것의 표현들이 마구 분출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유튜브 측이 혐오표현을 비롯해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발언을 일삼는 채널에 ‘노란 딱지’를 붙이는 정책을 채택했지만, 제재를 당한 이들의 방송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게 되었다. 기술의 발달을 사회 규범이 따라가지 못하는 사태가 반복되는 지체 현상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 신촌문화발전소의 포스트미디어 워크숍들은 해외 학자들과 함께 국내 8명의 미디어학자들이 둘러앉아 이런 문제들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 물론 워크숍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맞춤형 대안을 도출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워크숍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기존의 프레임으로 읽어낼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계속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파악하고자 할 경우에 오류인식에 도달할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을 과장해서 포스트미디어를 ‘새로운 것’으로 규정하는 것도 또 다른 편향이다. 이미 이 현상의 일단들은 60년대 미디어학자들이 제기했고, 그 ‘예언들’이 현실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 상황은 기성 저널리즘의 지형도를 바꾸는 작용에 그치지 않고, 아예 저널리즘의 기능 자체를 해체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저널리즘의 붕괴가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버나드 스티글레는 이 상황에 빗대어 세상에 민주주의라고 알려진 것은 사실상 시장주의일 뿐이라고 일갈했지만, 이 또한 극단적인 진단이라고 본다. 상황은 암울하지만, 민주주의의 이념은 분명히 포스트미디어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요하다는 생각이다. 두 번의 워크숍을 주관한 입장에서 앞으로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저널리즘의 관계에 대해 향후 논의해야 할 숙제들이 산적했음을 느꼈다. 관련 논의들이 더 많이 공론화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