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된 박제범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주연은 연기파 배우 이유영(은서)과 강신일(진철)이 맡았다.
이유영은 최근 4년간 7개 상을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이던 2014년 조근현 감독의 저예산 예술영화 <봄>에 출연해 제14회 밀라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제6회 올해의 영화상, 제24회 부일영화상, 제5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각종 신인상을 받았다. <간신>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제36회 청룡영화제, 대한민국 톱스타 시상식에서 각각 신인여우상, 한국영화 인기스타상을 받았다.
강신일은 출연작만 110여 편에 달하는 베테랑 배우다. 주로 묵직한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극단 연우무대에서 활동하고, 1986년 서울에서만 5만 명 관객을 동원한 연극 <칠수와 만수>로 대학로 스타로 떠올랐다. 배우 문성근이 칠수, 강신일이 만수 역을 맡았다. 대중에 얼굴을 알린 영화는 <공공의 적>과 <실미도>다. 배신하지 않고 친근하고 강직한 인물을 도맡았다. 2007년 간암 투병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집 이야기>는 사회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족관계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그린다. 신문사 편집기자 은서는 살던 집의 계약이 끝나 새집을 구하고 있지만, 마음에 드는 집이 없다. 결국 임시거처가 필요해지자 아버지 진철이 홀로 살고 있는 인천의 고향집에 잠시 머물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재혼 후 제주도에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는 엄마(서영화)와 아버지 진철과 소원해진지 오래된 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내와 이혼하고 큰딸과 연락이 끊긴 아버지 진철이 사는 집은 어두컴컴한 창고 같다. 진철의 집에는 세월의 흔적이 먼지처럼 쌓여 있다. 손때가 잔뜩 묻은 벽지와 보리차가 끓는 난로, 낡은 필름 사진, 구식 컴퓨터, 빛바랜 종이 달력이 군데군데 보인다. 나무로 된 미닫이문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리고, 방안은 창문이 없어 빛이 들지 않는다. 어두운 방에서 전화를 기다리며 낡은 휴대폰을 쥔 채 꾸벅꾸벅 존다.
그런 그의 마음이 설렌다. 서울살이를 하는 막내딸 은서가 찾아와 함께 지내게 돼서다. 정적이 가득하던 집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진철은 무뚝뚝한 모습으로 은서를 챙긴다. 잠깐 머무는 은서를 위해 복숭아 김치를 담그고, 무좀 옮는다는 이유로 슬리퍼를 따로 사 신으라며 퉁명한 말을 건넨다. 새집을 구할 때까지 잠시 머물겠다는 딸의 이삿짐을 알뜰살뜰 옮기고, 딸 마음에 들 만한 새 수건을 산다. 주말에 약속 없이 집에 있는 딸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단골 숯불구이 가게로 데려간다.
영화는 낡고 오래된 집에 함께 살게 된 다 큰 딸과 나이 든 아버지 사이를 들여다본다. 어색한 두 사람 사이는 이내 따뜻해진다. 다만 가족 간의 극적인 사랑이나 화해를 말하지는 않는다. 썩 살갑지 않은 딸과 무뚝뚝한 아버지 사이에서 실제 있을 법한 소소한 모습을 비춘다. 가식 없는 일상사가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딸이 집에 온 날, 딸과 먹을 식사를 차리려다가 짜장면을 먹자는 딸의 말에 밥솥에 다시 덜어 넣는다. 짜장면을 비벼주려던 그는 은서가 그릇을 흔들어 짜장면을 비벼 먹는 모습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진다. 진철은 주변 사람들에게 은서를 소개할 때면 은근히 신바람이 나 있다. 이런 평범하고 일반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강신일은 잘 묘사한다.
가족의 재회는 새로운 장르가 아니다. 한국영화에서 수도 없이 영화로 제작돼 왔다. <집 이야기>는 조밀한 플롯을 통해 인물의 특징을 쌓아올리고, 신파가 부각될 수 있는 후반부를 잔잔하게 다뤄 감동을 이끌어낸다. 인물과 인물이 만나 변화하는 관계를 섬세하게 표현해 92분짜리 담백한 이야기의 울림이 크다.
열쇠공 진철은 디지털 도어락이 아닌 구식 열쇠를 다루는 일만 한다. 평생 못 여는 문이 없었지만 정작 가족의 닫힌 마음은 열지 못한다. 진철은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가족이 모두 떠난 집에서 홀로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온 가족이 함께 살 아파트 장만을 일생의 목표로 살았지만 정작 목표를 잃어 그리움에 묻혀 산다. 낡은 집에 창문 하나 못 낸 것도 그 창문을 내고 나면 아파트에 못 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박제범 감독은 아버지 진철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돌 같은 사람. 담대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구상했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은서는 아버지의 방에 걸려있던 철 지난 달력을 떼어낸다. 빛 바란 주위 벽과 달리 밝은 달력 자국이 마치 동굴 같던 방에 새로 낸 창문 같다. 한국의 아빠를 빼다 박은 진철과 자녀들의 마음을 빼다 박은 은서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