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Black Money)>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사건’을 다룬 영화다. 감독은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정지영이다. 고(故) 김근태 의원 고문 사건이 바탕이 된 <남영동 1985(2012)>나 김명호 교수의 석궁테러 사건을 극화한 <부러진 화살(2011)>이 그의 대표작이다.
영화 소재인 ‘외환은행 인수·매각 사건’은 다소 복잡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외국 은행들이 국내 은행을 헐값에 인수하기 시작했다.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이유는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돼 부실 금융기관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서다. 정부는 매각을 통해 신규 자본을 투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조작돼 론스타에 넘겨졌다.
그 결과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 3,800억 원에 매입했다. 2011년 김승유 회장이 이끄는 하나은행은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론스타는 9년간 최소 4조 원 이상의 차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론스타가 부동산을 보유한 산업자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은산분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부각됐다. 외환은행 해직자로 론스타 사건을 계속 추적하던 사람은 뒷돈을 받은 탓에 감옥에 갔고, 당사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론스타의 비극을 주도한 것은 은행 고위층과 ‘모피아’라고 부르는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등 일부 경제 관료들로 추정됐다. 이들은 BIS를 조작해 외환은행을 부실 은행으로 만들고 자격이 되지 않는 론스타에 팔았다. 이것이 문제가 된 뒤에도 단순 매각을 허가해 론스타가 떼돈을 벌게 해줬다. 이들을 검은 머리의 외국인으로 부르는 이유다. 론스타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의 계보와 역할을 알아야 한다.
<블랙머니>는 한국 사회에서 실제 일어났던 굵직한 경제·금융 사건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는 구조를 띤다. 1997년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닮았다. 자살 사건의 가해자로 누명을 쓰게 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양민혁(조진웅)이 스타펀드(론스타)의 대한은행(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이라는 거대 금융 비리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매각, BIS 비율과 같은 전문 금융용어에 대한 설명은 경제를 잘 알지 못하는 양민혁의 수사에 맞춰 관객들에게 쉽게 설명한다. 양민혁을 비롯한 검찰 조직은 스타펀드의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고 우여곡절을 걸쳐 진실을 마주한다. 전직 총리로 CK로펌 고문을 맡고 있는 이광주(이경영)는 대한은행 매각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정계 커넥션을 통해 검찰 고위직 인사에 영향력을 미쳐 수사를 방해한다.
주인공 양민혁은 검사동일체라는 미명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검찰조직에서 돌연변이로 통한다. 그는 상부 명령이나 지시에 불복하고 독단적으로 활동한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검사의 지위를 활용하거나, 불법도청으로 정보를 얻어내는 불법까지 서슴지 않는다.
김나리(이하늬)는 엘리트 교육을 받은 국제통상가로, 양민혁과 만나면서 대한은행 매각과정에 석연치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 둘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깊은 국민이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다. 비록 김나리는 뒤늦게 실익을 챙기기 위한 선택을 하지만, 이전까지는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복잡하게 얽혀 있던 문제의 핵심을 선악 이분법적 구도로 풀어낸다. 정관계 고위직, 금융위원회, 다국적 펀드기업, 검찰 등 권력집단은 악으로 분류된다.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면서 거대한 권력에 맞선 소수 선의 악전고투를 과장해 보여준다. 마치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것처럼 희망을 준 뒤 그 희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의 변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된다. 이는 관객의 감정구조와 어긋난다. ‘만약 누구 한 명이라도 진실을 밝혔다면?’이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대중의 감정을 무시하고 검사 한 명이 세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해결책이 설득력 있게 전달될지, 진실한 검사의 영웅적 활약이 가능하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대중의 감정구조 속에서 소수의 선이 다수의 악에 맞서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순진한 판타지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론스타는 한국 정부에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한 상태다. 패할 경우 국민 혈세로 내야 할 금액은 약 5조 3천억 원이다. 판결은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