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back(아윌비백).” 터미네이터가 또 돌아왔다. 35년 전 시리즈 1편인 <터미네이터(1984년)>가 개봉한 이후 5편의 영화가 나왔다. 이 중 1편과 2편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1991년)>을 제외한 나머지 3편은 졸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2015년 <터미네이터5: 제니시스> 이후 4년 만에 개봉한 <터미네이터6: 다크 페이트>의 얼개는 기존 시리즈와 다르지 않다. 미래 사회를 지배하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류의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보낸다. 쫓기던 인류는 터미네이터에 맞서 싸운다.
다만 6편은 인물의 역할이 달라졌다. 인류의 희망은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가 아니라 대니 라모스(나탈리아 레예스)다. 인류를 위협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스카이넷은 전쟁용 인공지능 ‘리전’으로, 인류 지도자를 보호하던 카일 리스는 기계로 강화된 인간 그레이스(매켄지 데이비스)로 바뀌었다. 하지만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와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이 그대로 등장한다. 이는 1, 2편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자로 돌아와 2편의 타임라인을 잇기 때문이다. 감독은 <데드풀1(2016년)>을 연출한 팀 밀러가 맡았다.
영화는 실망스러웠던 3~5편의 패착을 극복하기 위해 1, 2편을 리부트(Reboot‧캐릭터와 이야기의 재해석)했다. 이 덕분에 3~5편에서 만들어진 설정을 지웠다. 존 코너의 결혼과 그의 아내, 존 코너의 아버지 카일 리스에 대한 이야기,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라 코너를 삭제했다. 그러면서 기존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아놀드 슈워제네거(72)와 린다 해밀턴(63) 등 노장들을 조력자로 복귀시켰다.
기시감을 떨쳐내기 위해 도입한 설정도 있다. 영화는 등장인물 가운데 그레이스·대니·사라 3명의 여성 서사를 강화했다. 단순히 남성의 역할을 여성이 대신하는 건 아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명대사 “돌아올게(I will be back)”를 린다 해밀턴이 날린다. T-800은 영화 중반에 들어서야 나온다. 인류 지도자가 될 운명인 대니의 정체성은 1, 2편의 사라 코너와 다르다. 운전도 못 하고 총 잡는 것도 두려워하던 대니가 여전사로 각성하는 것은 물론, 운명을 수용한 사라 코너와 달리 운명을 개척하려고 한다.
1편의 사라 코너는 미래 인류 지도자를 낳을 어머니인 탓에 터미네이터에게 쫓겼지만, 6편의 대니는 스스로 인류 저항군 사령관이 된다. 대니가 Rev-9(가브리엘 루나)에게 쫓기는 이유가 그녀의 자궁 때문일 것이라는 사라 코너의 예상이 빗겨나간 것이다. 심지어 대니는 Rev-9에 맞서 “도망가지 않겠다. 이 자리에서 맞서 싸우겠다”고도 한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과거 여성의 역할을 상상한 최대치가 지금에 와선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하지만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 Rev-9가 평범한 ‘미래의 희망’을 쫓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전사가 터미네이터와 싸운다는 기본 골격이 동일한 탓에 참신한 면은 없다. 왕년의 추억과 성공 포인트에 기대려는 노력에만 치중해 온 3, 5편의 패착을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카체이싱과 추락, 탈출 등으로 버무려진 전개, 터미네이터와 막판 대결로 꾸며진 결말은 굳이 알리지 않아도 스포일러가 불가피하다. 이는 지금까지 터미네이터 시리즈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문제점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근본이 바뀌지 않는 한 세월의 침식은 막을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