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영화’에만 있다

20대 여성 4명이 말하는 여성 독립운동
20대 여성이 보는 ‘허은의 전통성’-‘정칠성의 급진성’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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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들은 여성 독립운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뉴스민>은 지난 4월부터 ‘이것은 독립운동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물음을 들고 취재를 시작했다. 물음 안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여성의 삶에 대한 고민도 포함됐다. 그 시절 평범한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얼마나 알려져 있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뉴스민>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7월 20대 여성 4명과 함께 집담회를 진행했다.

집담회에는 박하경(28), 이기쁨(27), 최지혜(27), 현유림(23) 씨가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언론인을 준비하거나(박하경, 이기쁨), 여성단체 활동가(현유림)로 일하거나,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업무에선 여성 관련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는(최지혜) 이들이다. 기본적으로 여성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역사 지식이 적지 않은 이들이다.

▲뉴스민은 7월 18일 저녁 대구 중구 동성로 모처에서 20대 여성 4명과 집담회를 열었다.

이들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지금 떠오르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무작위로 말해보자는 거였다. 한 명씩 돌아가며 이름을 말해서 몇 명까지 나올지 보자는 취지였다. 지혜 씨가 우선 대답하도록 했다. 그는 “본명은 잘 모르겠어요. 최근에 ‘밀정’에 나온 연계순 그분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현유림, 이기쁨, 박하경 순으로 이어진 답변도 영화에 기반했다.

“저는 최근에 본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인상 깊어서 유관순 열사” (현유림)
“저도 본명은 모르겠고, 영화 ‘암살’에 안옥윤 모델이 된 남···” (이기쁨)
“영화 ‘박열’에 나왔던 후미코” (박하경)

“더 있을까요?” 물음에 “이름은 모르겠고, 권···. 성만 아는데, 여성 파일럿이셨던 분이요”라고 기쁨 씨만 답했다. 다른 3명은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생각나는 남성 독립운동가를 말해달라는 물음에도 이들은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여성독립운동가보다 배가 많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말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선 ‘영화’를 언급하지도 않았고, 때문에 각색된 이름이 아니라 잘 알려진 실명으로 말했다.

“남성 독립운동가를 키워낸 여성 희생, 독립운동으로 생각 안 해”
“내조한 여성도 여성도 하나의 독립운동···서훈받는 사람은 남자뿐”
“남성 중심 역사, 여성 독립운동가 이름은 지워진 거 아닐까”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로 기억돼···이름으로 기억되지 않아”

▲박하경, “남성 독립운동가를 키워낸 여성 희생, 독립운동으로 생각 안 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차이에 대해 이들은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방식부터 남성 중심으로 선정된 독립운동 서훈자, 남성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까지 다양한 이유를 찾았다. 하경 씨는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방향은 여러 가지지만, 이때까지 조명한 게 적극적이고 폭탄을 터뜨리는 쪽으로 너무 치우쳐서 해석한 게 아닌가 생각든다”며 “남성 독립운동가를 키워내기 위해 어떤 여성의 희생이 분명히 따랐을 텐데 그건 독립운동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혜, “내조한 여성도 여성도 하나의 독립운동···서훈받는 사람은 남자뿐”

지혜 씨는 “남자가 독립운동을 하면 여자도 같이 내조를 하게 된다”며 “그럼 여성도 하나의 독립운동에 일조했다고 생각하는데 결론적으로 서훈을 받는 사람은 남자밖에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2019년 현재 독립유공 포상자 1만 5,689명 중 여성은 444명(2.8%)에 불과하다.

▲현유림, “남성 중심 역사, 여성 독립운동가 이름은 지워진 거 아닐까”

유림 씨는 “남성 중심으로 역사가 쓰여 있다 보니, 여성 독립운동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곳곳에 있지만 많았는데 그 이름이 지워진 것 아닐까”라고 말했고, 기쁨 씨도 “독립운동가 어머니라고 기억되고 그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는다”며 “지워졌다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기쁨,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로 기억돼···이름으로 기억되지 않아”

이들은 지난 2018년 광복절을 기념해 국가가 허은(1907~1997) 지사에게 독립운동 훈장을 수여 한 것을 반기면서도 동시에 우려와 과제도 함께 짚었다. 하경 씨는 “돌봄노동 측면에서도 독립운동으로 인정을 해준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라면서도 “여성의 역할이 이런 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고, 남성들도 얼마든지 조력자로 바뀔 수 있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했을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을 동시에 드러내야 온전히 개인으로서 인정받으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쁨 씨도 “돌봄노동이라는 자체가 지금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라며 “점점 바뀌고 있지만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이 문제에 대해 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혜 씨와 유림 씨는 허은 지사가 갖는 전통성에 주목했다. 지혜 씨는 “한국 전통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이어서 그렇지 않을까?(훈장을 수여한 게 아닐까?)”라고 말했고, 유림 씨는 “돌봄노동을 하고 가정을 잘 이끌어 나가는 여성을 유명하게 해서, 나라가 여성들에게 ‘너희들도 이렇게 살 거라’라고 공표하게 되는 거 아닐까”라고 의문을 더했다.

두 사람이 의문을 품은 데는 독립운동에 투신했지만 현재까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정칠성(1897~?)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칠성은 한남권번에 적을 둔 기생으로 살다가 1919년 3.1운동을 전후해 다른 삶을 살 게 된다. 그는 1925년 일본으로 유학해 동경여자학교를 다녔고, 각종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여성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전국을 돌며 여성의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강연을 했다. 1930년에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돼 체포됐고 1946년 북으로 넘어갔다.

집담회 참석자들은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일제강점기에 정칠성이 보인 행보에 큰 매력을 느꼈다.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주장한 것이 인상 깊다는 것이다. 정칠성과 비교하면 허은은 전통적인 우리 가치에 충실한 인물이다.

지혜 씨는 “지금 저희가 최근에야 느꼈는데 1920년대에 생각할 수 있는 사고가 너무 궁금하고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정칠성을 평했고, 유림 씨는 “갑자기 어느 순간 여성들이 공부를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정칠성을 보면) 갑자기 여성들이 이렇게 된 게 아니라 여성들은 언제나, 예전에도 그 자리에서 존재 자체로 분투해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