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장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로 여전히 대한민국이 떠들썩하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과도한 수사에 분개한 국민들은 서초동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검찰개혁을 염원하는 촛불을 밝혔다. 이번 시위는 과거 촛불시위와 달랐다. 과거 시위에 흔하게 보였던 민주노총·전교조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서초동 촛불은 조직적 참여가 많은 과거 집회 보다 개별 시민 참여가 더 많은 셈이다. 서초동 집회와 이에 대항한 맞불 집회의 성격으로 발생한 광화문 집회. 이는 검찰개혁과 조국이란 키워드로 정확하게 양분된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문제는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별개로 볼 것을 주장하며 서초동 집회에 참여한 일부 집회참가자의 민주노총·전교조에 대한 시각이다. ‘검찰개혁이란 순수한 목표로 참여했다’, ‘정치적 집회로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세력화 된 민주노총·전교조 깃발이 보이지 않아 후련하다’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일부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 역시 노조는 세력을 위시해 과도한 요구를 주장하는 무리처럼 보는 것 같다.
광화문 집회 역시 두말할 것 없다. 그들 시각에서 노조는 적폐 중의 적폐다. 검찰개혁이라는 목적하에 양분된 대한민국에서 대법원의 복직 판결을 받은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수납원’이 낄 자리는 없어 보인다. 사실 검찰개혁이란 대의와 정규직 전환 사이의 관련 없음을 주장하는 의견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정말 노동자들은 검찰개혁이란 대의 하에 집행되는 집회에 참여할 명분을 가질 수 없는가. 수납원들이 해고되는 과정에 검찰의 잘못은 없었는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최근 10년간 부당노동행위 사건 처리 현황’ 등의 자료는 검찰이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2018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용노동부가 처리한 고소·고발 사건은 993건이다. 이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237건이다. 문제는 노동부가 처리한 고소·고발 사건 중 부당노동행위가 명백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 중 절반 가량이 법의 심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 송치된 사건 237건 중 현재 수사 중인 사건 94건 모두를 기소한다 해도 실제 기소한 사건은 123건(52%)에 그친다. 노동부가 부당노동행위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의 절반 가량이 불기소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검찰이 노동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이 과거와 큰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다.
이는 검찰 내부에 팽배한 노조에 대한 공안적 시각에서 비롯된다. 과거 산업화 시절, 물적 토대를 기업에 집중하던 시기, 노동쟁의는 기업의 생산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그래서 권위주의 정부 시절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노동문제를 북한과 연관시켜 공안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검찰은 과거 공안부에서 담당한 노동 관련 부서를 공공수사부로 개칭했다.
하지만 조직에 팽배한 노동에 대한 공안적 시각과 그것이 초래한 낮은 기소율은 조직 이름을 고친다고 바뀌지 않는다. 일례로 지난 8월 해고된 수납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와 이강래 사장을 불법 파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 이후, 대법원은 해고 노동자들을 직고용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즉 대법원의 판결로 도로공사의 불법파견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성립된 셈이다. 하지만 조국 장관 관련 수사가 고소·고발 직후 이뤄진 것과 달리, 도로공사에 대한 수사는 2달 가까이 소식이 없다.
검찰개혁 요구 시위에서 해고 노동자들의 목소리 생략은 단순히 검찰이 개혁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의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가 전제될 때 현실화 될 수 있다. 시급히 개선할 점은 사람들이 가진 노동문제에 관한 편견이다. 한국 사회는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기업 이익과 상충된 것으로 흔히 바라본다. 이는 기업 이윤 창출은 노동비용 감소에서 비롯된다고 바라보는 협소한 사고에서 기인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국내 총부가가치 유발비중 통계는 주목할 만하다. 같은 비용을 투입했을 때, 얼마나 더 큰 부가가치를 산출하는지 의미하는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소비(49.7%), 수출(27.1%), 투자(23.2%) 순이다. 즉 개개인들의 소비에 의한 수요가 기업의 수출, 투자에 의한 수요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기업의 판매부진보다, 노동자 임금 감소에 의한 소비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다. 국내 임금은 해외에 비해 높은 편도 아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양극화 해소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연구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8.2%로 일본(10.7%) 보다 낮다.
촛불집회를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균등하며,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입니다”라고 했다. 대법원 판단이 내려졌음에도,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쟁의하고 있는 수납원 노동자들이 있는 현실은 과연 정의로운가. 촛불을 통해 새로운 정권을 염원했던 시민의 바램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유연화 정책하에서 정규직이었던 그들은 파견직으로 바뀌었다. 원래 정규직이었던 그들의 고용 안정 요구가 과연 반칙과 특권인가. 검찰 권력의 비대화에서 오는 폐해를 막기 위한 촛불 역시 유의미하다. 하지만 그들만의 검찰개혁을 위한 촛불을 통해 균등, 공정, 정의를 추구할 수 있을까? 이젠 법의 테두리에 있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위한 촛불을 들 때다.